최근 쇼핑호스트(이하, 쇼호스트)를 지망한 여성이 한 홈쇼핑 회사의 3차 시험에서 채용 불합격 통보를 받고 세상을 등진 사건이 벌어졌다.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취업 비관’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는 왜 쇼호스트를 꿈꿨을까. 그 세계는 어떤 곳인지 짚어봤다.
“1년에 1회 또는 2회 정도 공채가 진행됩니다. 많게는 12회의 공채 기회가 있겠죠. 한 공채당 서너 명이 합격합니다. 그러면 1년에 45명 정도 합격이 된다는 것인데, 지원자는 공채당 2,000명에 달합니다. 700대 1 수준의 합격률입니다. 그래서 저는 쇼호스트를 희망하는 친구들에게 꼭 이렇게 얘기합니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다른 일을 1순위에 두고 쇼호스트 준비는 긴 시간 동안 시간에 쫓기지 말고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온라인 멘토링 서비스 게시판에 올라온 한 현직 쇼호스트의 이야기. 그는 쇼호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너무 답답하다는 구직자의 게시물에 이렇게 답변을 남겼다.
 
약 한 달 전 30대 초반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쇼호스트 지망생인 그는 한 홈쇼핑 회사의 공채 3차 면접까지 올랐으나, 결과적으론 ‘불합격’이었다. 그의 사망은 불합격 통보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다. 지인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2년간 쇼호스트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고 수차례 ‘탈락 소식’을 받아들었다.
어느 직업이든 지나야 할 관문이 있다지만 쇼호스트는 특히 비좁은 문 여러 개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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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뺏고 뺏기는 방송,
연봉은 천지 차이

국내 TV 홈쇼핑 채널은 7개. 1995년 GS홈쇼핑, CJ오쇼핑을 시작으로 2001년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NS홈쇼핑이 차례로 개국했다. 2012년에는 홈앤쇼핑이, 2015년에는 공영홈쇼핑까지 늘었다. 이들 채널을 통해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쇼호스트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은 쇼호스트를 ‘상품 판매 방송을 진행하면서 시청자에게 상품의 기능, 특성 등을 설명하고 상품의 판매를 촉진한다’고 정의한다. 임금은 2019년 7월 기준으로 평균 연봉(중위값) 4,273만 원으로 추산됐다.

어디까지나 ‘평균’ 연봉일 뿐 인지도가 높은 쇼호스트는 억대 연봉을 받는다. 가령 유난희, 동지현, 이민웅, 임세영 등은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쇼호스트다. 이민웅 쇼호스트는 2017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잘 버는 사람들은 1년에 2~3억 정도 번다. 나는 다른 방송 프로도 하니까 잘 벌 때 한 달에 중형차 정도 수입을 올렸다. 완판을 많이 하면 다음 출연료 계약 때 연봉이 오른다”고 밝혔었다. 말 그대로 화려하다. 매번 꾸며진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고 ‘매진’을 외치니 그럴싸한 직업이다. 그만큼 ‘되는 것’도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업계다.

전직 쇼호스트 A씨는 “부풀려진 게 굉장히 많은 직업”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홈쇼핑 채널 초기만 해도 연예인들이 홈쇼핑 출연을 꺼리더니 어느 순간 달려들어요. 소위 ‘미끄러진’ 방송인들이 참여하곤 했는데, ‘쇼호스트가 돈을 많이 번다’고 알려지면서 조명받기 시작했죠. 근데 그거 아세요? 몇몇을 제외하곤 생각만큼 돈 못 벌어요.”

쇼호스트는 정규직이 없다. 회사별로 세부적인 계약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쇼호스트는 프리랜서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다. 대개 1년 또는 2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며 성과에 따라 연장 계약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과거 모 홈쇼핑회사에는 정규직 쇼호스트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프리랜서로 전환됐다.
 
입사와 동시에 프리랜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입사 후 1~2년 동안 3,000만 원 중반에서 4,000만 원 초반 수준의 연봉제가 적용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연봉은 사라지고, 대신 방송 출연 회당 페이가 지급된다. 회당 페이는 연차와 전년도 실적 등에 따라 달라지며 평균 20만~50만 원으로 차등 결정된다.
 
“방송 횟수에 따라 돈을 받잖아요. 누가 못해야 내 기회가 늘어나는 그런 구조가 될 수밖에 없어요. 매년, 길게는 2년마다 계약 갱신을 하니 특히 예민해져요. 많은 쇼호스트들이 명품을 들고 외제차를 타요. 그 정도 수입이 되는 사람은 일부에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버는 거보다 쓰는 게 많은 쇼호스트가 상당해요. 아무래도 외적인 요소가 큰 직업이니까요.”
 
홈쇼핑 PD로 재직했던 B씨는 “방송 없는 쇼호스트는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사가 기본적인 방송 횟수는 보장해준다”고 덧붙였다.
 
“한 달 방송이 200개, 쇼호스트가 40명이라고 가정할게요. 5개씩 방송을 나눠 갖는 셈인데 잘하는 놈이 8개를 하면 누군가는 3개를 뺏겼다는 거죠. 그래도 일주일에 두 개는 꼭 배당한다거나 ‘최저 개수’는 있어요. 간혹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 인센티브만 받는 경우, 출연료만 받는 경우도 있고요. 잘할수록 몸값이 엄청 오르는 거예요. 깊이 들여다보면 쇼호스트는 동료가 아니라 경쟁사 개념이에요.”
 
현직 쇼호스트 C씨는 개인 블로그에 “회사마다 세부 규칙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홈쇼핑은 하루에 4개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되도록, 호스트가 오케이만 한다면 무조건 투입하는 홈쇼핑도 있고 그야말로 잘하는 놈에게 더 퍼주고, 못하면 인정사정없는 구조다. 어떤 홈쇼핑은 연속 방송이나 하루 2개 이상은 못하게 규정해놓은 곳도 있다. 개수를 모든 호스트들이 아주 많지도 적지도 않게 일주일에 4~5개로 맞추는 곳도 있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프리랜서 생리에 맞지 않는 구조”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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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 쇼호스트 유난희, 동지현, 이민웅.

판매 업체가 쇼호스트 특정하기도,
연예인 홈쇼핑 진출은 독?

방송 내용은 제품 판매 업체와 담당 PD, MD의 미팅을 거쳐 정해진다. 이때 업체 측이 특정 쇼호스트 섭외를 요청할 수도 있다. 전직 쇼호스트 D씨는 “어느 정도 조정은 해도 인지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면서 “쇼호스트 사이에 신경전이 어마어마하다”고 전했다.

통상적으로 메인 호스트와 서브 호스트가 한 방송의 짝을 이루는데, ‘메인’이 되는 시기가 정해져 있진 않다. 이 역시 저변에 경쟁 구도가 깔려 있다는 게 전직 쇼호스트들의 이야기다. 최근에는 연예인, 방송인의 홈쇼핑 진출로 기존 쇼호스트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전직 PD는 ‘인지도’ 때문에 연예인을 기용하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국내 1호 쇼호스트 유난희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었다.
 
“연예인이 나오면 쇼호스트보다 매출이 올라가니 방송사에선 쓸 수밖에요. 후배 쇼호스트들은 이것 하나만 알면 돼요. 상품을 더 열심히 연구하라고요. 예전 홈쇼핑엔 중소기업 제품들만 들어와 쇼호스트들이 상품 공부를 하지 않으면 팔 수 없을 정도였어요. 다들 연구파였죠. 하지만 홈쇼핑이 발전하면서 쇼호스트들이 너무나도 화려해진 것 같아요. 본질을 잊고 연예인처럼 행동한다면 그 자리는 당연히 연예인에게 빼앗기게 될 거예요.”
 
 
채용에 ‘입김’이 통한다?

쇼호스트가 되려면 3~4단계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 서류 및 영상 지원을 통과한 지원자를 대상으로 서너 차례 면접이 진행된다. 지원자들은 현장에서 주어진 제품을 들고 모의 방송을 하거나 카메라 테스트 등에 임한다. 한때 이 과정에서 ‘입김’이 통한다는 풍문도 있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5년 전만 해도 ‘누가 끌어주네’ 하는 이슈들이 많았어요.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팀장, PD, 쇼호스트 실장이 현장에서 바로 채점을 해서 당락을 가려요. 물론 이견은 있을 수 있죠. ‘쟤 너무 잘하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자’ 하는 얘기가 나오면 반영은 해요. 그렇다 해도 외부에서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요.”
 
홈쇼핑 PD나 현직 쇼호스트가 아카데미 강의를 하면서 정보가 유출되지 않겠느냔 우려도 일축했다.
 
“내부 정부가 나올 순 있어요. 모 회사에서 올해는 어떤 기조를 갖고 뽑는다더라, 미용 전문을 많이 뽑는다더라 하는 정도. 그건 피디도 쇼호스트도 쉽게 알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게 당락을 결정할까요? 7~8년 전에 피디가 아카데미 출강을 했다가 걸려서 ‘경고’를 받은 케이스도 있어요. 그 정도로 엄격해요.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잖아요.”
 
취재를 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의 진짜 이야기가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쇼호스트, 홈쇼핑 PD 출신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말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들어준다 한들 이 좁은 바닥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요?”
 
 

 
 
이원석 쇼호스트 아카데미 원장
“승무원 출신 지원자 많아졌다”
 
쇼호스트 지원자 대다수가 전문 학원을 거친다. 1세대 쇼호스트이자 쇼호스트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석 원장에게 쇼호스트 준비생, 업계 상황에 대해 물었다.
 
Q 요즘 학원을 찾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오늘만 15명이 신규 상담을 왔다.

Q 꽤 많은 숫자이지 않나? 글쎄다. (우리 학원의 경우) 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다 합격(수강)시키지도 않는다. 아마 오늘도 세 명 정도만 합격이 될 것 같다. 3주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학생들이 몰려도 많이 안 뽑으려 한다. 내가 그 사람의 (쇼호스트) 가능성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됨됨이가 안 된 친구들이 많다.

Q 됨됨이? 인성을 말하나? 쇼호스트를 너무 쉽게 안다거나 지적을 못 받아들인다거나, 학원비의 소중함을 모르는 친구들이다.

Q 학습 비용은? 400만 원이면 6개월 정도 공부할 수 있다.

Q 지망생 연령대는? 평균 33세다.

Q 생각보다 높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친구들이 연륜이 좋고 말하는 대사가 더 풍부하다. 예전엔 더 어린 친구들을 뽑긴 했지만 지금은 ‘현실주의’라고 해야 하나… 후배로서는 부담스러운 나이이긴 한데 봉준호 감독이 얘기했듯 가장 창조적인 대사는 개인적인 경험인 것 같다.

Q 평균 연령대로 봤을 때 이전에 다른 직종에 종사했던 사람도 있는 거 같다. 요샌 코로나 때문에 (항공업계 상황이 좋지 않아) 승무원 했던 친구들이 많이 온다. 지역 아나운서나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들도 많이 오고, 기상캐스터 출신도 있다. 재연 배우, 개그맨 친구들도 많이 온다.

Q 방송이나 서비스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경력이 있다고 해서 더 잘 되진 않는다. 특유의 ‘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쇼호스트를 뽑을 땐 ‘송가인이어라’를 뽑더라. 딱 한 소절만 들어도 그 사람의 톤, 강약의 표현, 친근감 이런 것들이 파악된다.

Q 수강생들이 쇼호스트를 왜 지망한다고 하나? 대부분 주변에서 “네가 이야기를 하면 진짜 같다”, “말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오는 경우가 많다.

Q 직업 특유의 화려함을 쫓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다. 맞다. 하지만 면접 볼 땐 화려함을 갖고 오는 애들은 뽑지 않고 ‘직원’을 뽑는다. 최종은 흔히들 말하는 ‘꼰대 아저씨’들이 보는데 이 지원자가 회사에 얼마나 애사심을 갖고 있는가를 판가름한다.

Q 일반적으로 채용 규모, 빈도는 어떻게? 적게는 세 명, 많게는 열 명을 1년에 한 번 또는 2년에 한 번 뽑는다.

Q 지원자 수에 비해 합격자 수가 너무 적은 게 아닌가.떨어진 사람들의 이후 진로는? 최근에 새로 떠오르는 쇼호스트 업계가 있다. 일명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모바일 중심 온라인 유통 채널)다. 쉽게 말해서 ‘모바일 쇼호스트’다. 이 시장은 현재 공채가 없고 제품 소개만 하면 될 수 있다. 5년 뒤엔 여기도 TV 쇼호스트처럼 어려운 시장이 될 수 있다.

Q 얼마나 활성화된 곳인지? 벌써 그쪽으로 나간 친구들이 우리 학원에서만 2,000명이 넘는다.

Q 쇼호스트 임금 체계가 방송 횟수를 기반으로 한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입사 후 1~2년은 연봉 4,000만 원대가 보장되고 그 이후로 프리랜서 계약을 하면 방송 회당 금액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일주일에 방송을 한 번만 배당하진 않는다. 기본적인 보장은 된다. ‘연봉이 억대로 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입사하고 3년 내에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10명 중 3명은 억대 연봉이 가능하다. 일반 기업에서 1억 연봉을 받기까지 몇십 년이 걸린다면, 쇼호스트는 3~7년 정도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Q 쇼호스트 왜 프리랜서만 있는 걸까? 음, 회사 입장에서 퇴직금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은 프리랜서인데 다른 채널 방송은 할 수 없다. 그건 프리랜서가 아니지 않나. 때에 따라 아카데미 강의 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강의를 나가면 방송 섭외를 안 한다든지, 굉장히 불합리하다.

Q 최근 쇼호스트 지망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중에 듣고 많이 안타까웠다. 소수의 수강생만 받는 운영 기조로 바뀐 데는 그 일의 영향도 있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 안 되면 더 좌절한다. 좌절 끝에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쇼호스트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과감히 말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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