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덜 미워진다. 이제 아빠도 나를 덜 미워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함께 영화를 보고 책을 읽던, 그 순간만큼은 아빠를 좋아했다고 했다. 딸이 고백한 ‘아빠 이야기’는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다. 사무치게 미웠다가 조금은 그리웠다가 덤덤해졌다. 서동주가 아빠 서세원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서동주가 말하는 자신은 늘 이방인이었다. 미국 유학을 하며 10대를 보냈고, 20대에는 전남편을 따라 도시를, 대륙을 옮겨가며 살았다. 혼자가 된 30대, 의지할 곳도 움켜쥘 만한 것도 없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전히 이방인이다.

마음 깊이 곪아버린 상처를 덜고 싶어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과거의 기록이 켜켜이 쌓였다. 이혼 후 일상, 변호사가 되기까지 과정, 문득 떠올린 어린 시절 등. 서동주는 이들 기록을 모아 에세이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을 출간했다.

“말 그대로 나의 일기이기에 어떤 날에는 한없이 유쾌하다가, 어떤 날에는 한없이 우울하다. 오늘은 자신감이 넘치다가 다음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인 솔직한 모습이 숨김없이 담겨 있다.” 아빠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숨김이 없다. 올해 초 그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내게 ‘기억의 다락방’이 있다면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기에 넣고 꺼내고 싶지 않다. 그걸 여는 순간 내 인생을 집어삼킬 것 같다,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아서”라고 한 적 있다.

그런데 왜일까. 서동주가 ‘기억의 다락방’을 열었다.
 
악몽 속 아빠는 내게 칼을 겨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과 아들. 가족사진 속 네 사람은 항상 행복했다. 싸우다 돌아온 여행길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도 웃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쇼윈도 가족’이었다. 서동주가 기억하는 ‘진짜 모습’은 “슬프고 아픈 일들이 넘쳐흐른다”고 했다.

네다섯 살 됐을 때 일이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아빠는 안방 방문을 걷어찼다. 굉음과 동시에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어른 동주’는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어린 동주’를 잊지 못한다. 또 다른 날 저녁, 어린 동주는 울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아빠가 기절한 듯한 엄마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아빠는 엄마의 얼굴과 몸에 찬물을 뿌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서동주는 그 모습을 보는 외할머니의 표정이 미묘했다고 회상했다.

서동주는 열일곱 살 이후로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쓰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서세원이 일기를 몰래 읽고 그 내용으로 혼을 냈기 때문이다. 한번은 좋아하는 선배와 같이 공부하고 밥을 먹었다는 것을 일기에 적었는데, 서세원이 모질게 야단쳤다.

“이 쓰레기 같은 X아! 돈 들여서 유학 보냈더니 연애 따위를 하고 앉았어?”

서세원은 매니저를 시켜 선배의 주소를 찾아냈고 서정희, 서동주, 매니저와 함께 그 집으로 갔다. 그러고는 그들 앞에 아내와 딸의 무릎을 꿇렸다.

“겁에 질린 엄마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 또라이 같은 매니저 H는 아빠가 우리에게 욕을 하는 동안, 그 선배의 부모님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말했다. ‘한 번만 더 당신네 아들이 동주한테 찝쩍대면 평생 후회하게 해줄 거야, 알았어?’ 나는 아빠와 H가 도대체 왜 욕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와 같이 빌었다. (…) 아픈 배를 움켜쥐고 밤새 앓은 그날, 나는 알았다. 아빠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 가장 슬픈 것은 일기 쓰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던 것이다.”

2014년 서세원이 서정희를 폭행하는 CCTV 장면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서정희가 바닥에 넘어진 채 서세원에게 다리를 붙잡혀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딸이 엄마 편에 서기로 결심한 발단이 됐다.

“아빠는 엄마를 아파트 지하에 있는 요가 룸으로 불렀다. 불륜을 들킨 아빠가 집을 나간 지 두 달 만이었다. 아빠는 ‘이혼을 해줄 바엔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엄마 목을 졸랐다. (…) 엄마는 극심한 공포감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아빠는 엄마의 다리를 질질 잡아끌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아빠의 수족인 두 남자까지 합세해 엄마를 구둣발로 밀었다. 엄마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엄마 편이 된 딸에겐 질타가 쏟아졌다. 친척, 오랜 지인, 일부 외가 식구들까지 서동주를 비난했다. 혹자는 “네가 뭔데 가운데서 부모 사이를 망치는 것이냐”고, 또 혹자는 “엄마 편을 들고 아빠 편을 안 드는 것은 패륜”이라고까지 했다.

“나는 엄마가 홀로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적어도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동주는 엄마의 ‘단 한 사람’이기를 자처했다. 대가는 공포로 돌아왔다. 서세원은 미국에 있는 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한결같이 말했다.

“난 널 죽이러 미국에 갈 거야. 널 보자마자 칼로 찔러 죽여버릴 거야. 그리고 네 피부를 벗겨서 지갑으로 만들어 들고 다닐 거야.”

아빠는 딸의 꿈에까지 찾아들었다. 매번 꿈속에서 아빠는 칼을 들고 있었고 엄마는 울고 있었다. 아빠와 딸은 서로 칼을 휘둘렀다. 둘 중 하나가 칼에 찔려 죽는 결말이 되풀이됐다. 하루는 딸이, 하루는 아빠가.

서동주는 아빠와 연을 끊은 이유가 단순히 엄마 편을 들어서는 아니라고 했다. 숱한 이유가 있었지만 쉽게 털어놓진 않았다. 그나마 밝힌 한 가지 이유는 서세원이 서동주를 놓고 벌인 ‘대출 사기사건’이다.

서동주에 따르면 서세원은 딸 또래의 여직원을 서동주로 속여 대출을 받았다. 서동주가 대출 사기를 입증하려고 분주하던 시기 서세원의 측근 P씨가 등장해 서동주를 옥죄었다. 협박의 요는 ‘부모 이혼시키면 나중에 천벌을 받는다는 것.’ P씨는 대출 사기에 연루된 한 명이었다.

“P 회장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나를 향해 세차게 쏟아 부었다. 나는 지지 않으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P 회장은 한 차례 더 욕을 퍼부었고, 나도 그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더 큰 소리를 냈다. (…) 얼마 후 아빠는 집에 친척들을 불러놓고, 나를 이혼을 종용한 배은망덕한 딸이라고 고래고래 욕을 해댔다고 한다. 서정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 이혼이고 뭐고 혼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인데 악랄한 서동주가 다 조종한 것이라고, 서동주는 더는 내 딸이 아니라고, 그X을 칼로 찔러 죽여버릴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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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그땐 아빠를 좋아했었다

서동주는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에서 아빠에 대해 ‘미움’만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들 사이엔 어릴 적 단둘이 공유한 시간도 존재했다. 부녀는 추리소설과 영화를 좋아했다. 새벽 시간 귀가한 아빠는 잠들지 않은 딸과 책을 읽곤 했다. 밤새 영화와 미드를 보다 라면을 끓여 먹기도 달걀을 삶아 먹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빠를 참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아빠와 나 사이에 부녀지간을 넘은 의리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다. 가족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길 때면 시한폭탄 같은 아빠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 와해된 뒤로 딸은 아빠와 나눈 취미생활을 멀리했다. 취미를 통해 아빠가 생각나는 게 싫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딸은 아빠가 즐겼던 ‘레코드판 수집’을 하고 있다. ‘나는 아빠와 닮은 점이 참 많다.’ 그를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 이 사실을 딸은 결국 받아들였다.

“오래된 레코드판으로 노래를 들으면 시간은 왜인지 모르게 느려지고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아빠가 덜 미워진다. 이제 아빠도 나를 덜 미워했으면 좋겠다.”

여덟 살 무렵 딸이 갖고 싶은 자전거를 아빠가 사온 날이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아빠가 낯설었다. 아빠도 내심 ‘다정한 아빠’를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그러나 불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물질에 대한 상실감보다 아빠와 만들 수 있었던 추억을 잃은 것이 더욱 슬펐다.

“이럴 때 인생의 고비에서 넘어져도 괜찮다며 손을 내밀어줄 한 사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든든한 내 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아빠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존재가 몹시도 그리운 지금, 아빠는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다. 오지랖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만큼은 다정한 손길로 자전거를 잡아주는 든든한 아빠이기를 바란다.”

이제 서동주 모녀는 서세원의 근황을 덤덤히 나눈다. 일부러 피해왔던 ‘그’도 그의 이야기도 더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백발에 깡마른 아빠의 요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여운 마음마저 드는 모양이다. 서동주는 ‘가족’이라는 족쇄를 풀고 ‘나’로 살아간다.

“더는 무섭지 않아 신기해하다가, 측은지심이 들기도 하다가, 결국 감정이 사막의 모래처럼 푸석해진다. (…) 지금껏 가족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애써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 멀어진 가족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물살에 밀리듯 점점 더 먼 곳으로 흘러가고, 어느새 신기루처럼 흐릿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편이 더 자연스럽다.”
 

재혼한 서세원 근황…
다섯 살 딸의 아빠, 수조 원대 사업가
“가장 힘들 때 만난 딸 소중해”
 
서동주가 아빠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을 때마다 서세원의 근황은 덩달아 주목받았다. 서세원이 2015년 전처 서정희와 이혼 소송 후 공식적인 활동을 멈추면서, 대중의 기억 속 그도 멈췄다. 재혼한 김 모 씨, 둘 사이에 낳은 딸과 지낸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그마저 서세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그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전해왔다. 서세원은 캄보디아에서 3조 원대(25억 달러) 복합건설사업체를 주관하는 사업가로 활동 중이다. 서세원은 인터뷰에서 “공개입찰을 거쳐 올해 2월 캄보디아 미디어 사업을 포함한 호텔·레지던스·카지노·종합병원 등 대규모 부동산 건설 사업권을 따냈고 이에 따른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해당 사업은 서세원이 캄보디아 정부와 체결한 계약서를 바탕으로, 그가 현지에 설립한 법인 ‘소스원(CSO DEVLOPMENT)’을 통해 진행된다. 소스원이 방송사 운영과 부동산 개발사업의 주체이고 캄보디아 관방부 장관, 내각회의실 공보부 차관, 캄보디아 올림픽위원(NOCC) 등이 협력 파트너로 나선다.

서세원은 이혼 직후 경기 용인 일대에서 타운하우스 분양사업을 하며, 수십억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에도 경기도 용인 성복동에 100억대 빌라를 지어 분양 중임을 밝혔다. 국내와 캄보디아에서 그가 소유한 건설 관련 법인만 네 개다.

현 부인과 딸에 관한 소회도 짧게 언급했다. 그는 “가장 힘들고 고된 인생의 기로에서 빛을 안겨준 천사”라며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캄보디아 사업을 따낸 것도 어린 딸을 둔 아버지의 절실함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또 그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헤어짐을 피할 수 없듯이 새로운 만남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삶과 인생은 누구한테나 소중하다”고 했다. 서동주나 아들, 서정희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전 가정을 언급해봐야 서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 부인은 서동주 또래로 그녀보다 세 살 더 많다. 서세원과는 서른 살 차이다. 둘은 ‘교회’를 통해 만났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신자인 서정희가 서세원을 전도했고, 서세원은 2012년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됐다. 그 후로 청담동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교회 합창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 부인과 연이 닿았다. 당시 전문 국악 연주자인 부인이 합창단에서 해금 연주를 했었다.

일각에서는 ‘서정희가 2014년 서세원의 내연녀로 지목한 여성과 현재 부인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공식적으론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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