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ISSUE
  1. HOME
  2. ISSUE
  3. people&

뇌과학 공부하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음식보다 인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2016-01-08 09:55

진행 : 김민지 기자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유난히 춥던 12월의 어느 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현재 그는 TV조선에서 푸드 다큐멘터리 <황교익의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음식 101>을 진행하고 있다.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지고 몇십 년간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던 사람. 누구보다 맛집에 관해 잘 알 거라 생각했다. 1월에 먹기 좋은 제철 해산물 이야기와 그가 추천하는 맛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겨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차 싶었다.

01.jpg


고등학생 시절 그는 자신이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쟁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명한 문학작품들을 읽다가 현실을 직시했다. 문학적 감수성을 타고난 사람은 못 따라갈 것 같았다. 작문을 쓰면 되겠지. 기자 노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했다. 이왕 하는 거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음악, 영화에는 이미 누군가가 있었다. 음식 평론을 하면 어떨까. 블루오션이었다. 1962년생인 그가 어렸을 때에는 맛보다 배부르게 먹는 것이, 삼시 세끼 ‘끼니’를 잘 때우는 일이 중요했다. 다행히 그는 일본과의 무역으로 호황을 누리던 마산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덕에 어릴 적부터 먹는 건 넉넉했다. 그렇게 그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만의 음식‘관’을 세우기 위해 인문학, 역사, 인류학, 진화론, 심리학, 발달행동학 등 수많은 분야를 공부했다. ‘맛있다’와 ‘맛없다’를 느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닌 인간이니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배가 없어 힘들고 외로웠다. 그렇게 20년이 흐르자 그는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책을 쓰는가 하면 방송에도 출연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집중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음식에 대해 품평만 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음식은 하나의 통로다. 음식이라는 창을 통해 그가 살아가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보고 한국인의 삶을 본다. 과거 기차 속 홍익회 구루마에서는 왜 삶은 달걀을 팔았는지 궁금해하고, 60~70년대 역사와 문학을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삶은 달걀은 옥희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에게 마음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쓸 만큼, 집안의 어른만 먹을 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다. 먼 길을 떠나는 가족에게 싸주던 따뜻한 정이 여행을 떠나는 기차 속 구루마에까지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온 가족이 함께 놀 수 있는 찜질방에서 그 삶은 달걀의 흔적을 찾는다. 맛 칼럼니스트가 왜 정치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스스로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 지금은 뇌 과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고작 맛집 추천을 받으려고 했다니.


02.jpg


어제 부산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부산 어묵 촬영 때문에 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어묵만 먹은 것 같아.(웃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몇 번 먹으면 아무런 맛을 못 느끼니까 계속 최면을 걸었죠. 아, 나는 오늘 어묵을 처음 먹는 거다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드시니까 평소에도 맛있는 것만 찾아서 드실 것 같은데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미식가가 아니고 악식가죠. 아무거나 먹어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는 건데,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왜 이 재료를 썼고 왜 이런 식으로 요리를 했나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단 말이죠. 나도 모르게…. 그러니 즐길 수가 있나. 음악평론가도 영화평론가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맛이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이잖아요. 어떤 음식이 맛있는 걸까요.

그냥 여러 사람이 같이 먹으면 맛있는 거예요. 인간은 그렇게 진화했거든요. 뭐든지 먹어내기 위한 전략이죠. 혼자 먹으려면 거칠고 먹기 힘든 것도 상대가 맛있다고 하면 같이 먹게 되어 있어요. 음식이 바뀐 것도 아니고 내 감각이 바뀐 것도 아닌데, 음식을 같이 먹는 누군가에 의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사람이 먹는 음식에 대한 즐거움과 쾌락을 내 것으로도 만들고 싶다는 심리죠. 그래서 글 쓸 때 말고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고 해요.(웃음)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는 순간 이 음식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될 수도 있고 정말 맛없는 음식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맛집 추천을 잘 안 해주는 것도 같은 이치고요.

곧 이 노량진 시장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쉽네요.(현대화사업 때문에 1월에 새로운 건물로 이주 예정이지만 상인 측과 수협이 갈등 중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온 게 1980년인데, 그때 당시만 해도 돈암동, 평창동같이 잘사는 강북 몇 곳을 제외하고 서울은 그냥 난민촌이었어요. 강남, 잠실은 이제 갓 개발이 되는 상황이었고 그 외에는 어딜 가나 무질서하게 작은 집들이 덕지덕지 있었죠. 논현동에 미나리꽝이 있었다니까.(웃음) 여기 노량진수산시장도 당시에는 살짝 ‘맛탱이’ 간 생선을 죽 늘어놓고 팔던 그런 곳이에요. 70~80년대에 서울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거든요.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는데 그걸 받쳐줄 만한 시장 형성이 안 돼 있던 거죠. 그래서 지방 소도시보다 열악한 곳이 서울이었어요. 그땐 맛있는 식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돈 좀 있으면 강남에 있는 ‘가든’ 같은 곳에 가서 달짝지근한 갈비를 구워 먹는 게 최고의 외식이었죠. 음식에 대한 기호를 소비하는 게 아니고 공간에 대한 소비를 했던 거예요. ‘나는 이런 곳도 가봤다.’ 그런 거.

아, 얼마 전에 <응답하라 1988>에서 봤어요. 아직 스테이크라는 말도 생소하고 스파게티도 잘 모르던 그 시대. 

80년대 후반에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적으로 경제 호황이 왔어요. 전두환이 운이 좋았다니까.(웃음) 다 같이 잘살게 된 거라. 매년 임금상승률이 30%가 넘고 보너스는 120~150%가 예사였어요. 너도 나도 아파트를 사고 마이카라는 개념도 생기고. 그때 서구의 외식관이 들어왔죠. 1979년에는 소공동에 롯데리아가 생기고. 그게 한국 최초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었지, 아마. 84년 무렵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게 문을 열었는데, 그때 피자집이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같은 음식점들이 들어서게 된 거죠. 경양식집도 생기고. 그전에는 젊은이들이 빵집에나 가고 그랬지 돈가스집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근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면서 젊은이들도 돈을 쓰기 시작했어요. 명동이랑 종로가 특히 그랬고…. 어마어마한 호황기였죠. 그때는 뭘 해도 다 된다고 그랬거든요. 88년이 넘어가면서 방배동 카페골목이 생기고, 압구정동에 셰프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기 시작했어요. 지중해음식이나 태국음식들도 들어오고요. 근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97년에 다 없어져 버렸죠.

IMF 때문이군요.

맞아요. 그때 한창 한국에 미식문화의 초반 모형이 갖춰지고 있었는데 산산이 무너져버렸어요. 그나마 2000년대 중반쯤부터 조금씩 다시 회복되어서 지금은 그 경계에 있고.

미식문화라는 건 어떻게 생기는 건가요.

주머니 사정이죠.(웃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준으로 미식 열풍이 불어요. 적어도 한 끼에 1인당 3만원 이상, 주말 저녁이면 1인당 10만원 정도를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가. 그걸 기준으로 판단하죠. 일본만 봐도 알 수 있어요. 70~80년대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였는데 그 20년 동안 전 세계의 가장 맛있는 것들을 다 먹고 살았죠. 축제의 장이었어요. 유럽에서 잘나가는 요리사가 어떻게 하면 일본에 레스토랑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으니까요. <미슐랭 가이드>를 보면 별을 가장 많이 단 도시가 도쿄인데, 그 이유가 바로 그 시절 덕분이죠. 미식 수준도 올라가고 음식점 수준이 전체적으로 다 올라갔죠. 결국 다 돈이에요.(웃음)

지금 한국은 어떤 상태인가요.

지금 한국인들의 미식에 대한 관념 수준을 보면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는 욕망은 가득 차 있어요. 미식의 아주 초기단계인데, 해외여행을 다녔기 때문이에요. 유럽, 미국 아니면 가까운 일본에서라도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봤거든요. 이런 것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까 입맛이랑 음식을 보는 수준이 높아진 거죠. 그런데 현실은 좀 달라요. 여건이 안 돼요. 서구에서 2백 년 걸리는 산업화를 30년 만에 해치웠으니 막상 사람들은 그대로인 거죠.

속은 그대로인데 몸만 커진 느낌이네요.

보통 우리가 외식이라고 부르는 대중음식, 노동자들이 사 먹는 음식을 매식이라고 해요. 외국에서는 이 매식의 공간에 대해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공간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을 받거든요. 근데 한국은 그게 없었죠. 그냥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음식점을 열었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음식을 어떻게 서빙할 것인지, 어떤 식기를 사용해 어떤 모양으로 낼 것인지를 교육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그냥 집에서 먹던 그대로 내는 거죠. 그래서 한국과 비슷한 경제수준에 있는 나라의 식당과 한국의 식당 사이에는 꽤 갭이 있죠.

한국도 미식 수준이 올라갈까요?

한국은 빈부격차가 큰 게 문제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놓고 보면 굉장한 부자나라예요. 근데 먹는 수준이 형편없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에요. 집값, 땅값, 사교육비에 돈을 다 박아버리잖아요. 그거 조금만 떼어서 먹는 데 쓴다고 생각해봐요.(웃음) 그러니까 먹는 문제는 개인의 욕구나 욕망보다 그 사회에서 먹을 것에 지불할 수 있는 여윳돈이 충분한가가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도 제 주변을 보면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 먹는 것에서라도 즐거움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즐거움, 행복, 쾌락은 뇌에서 느끼는 거예요. 뇌에는 하루에 받아들여야 하는 행복, 즐거움과 쾌락의 총량이 정해져 있거든요. 하루에 그걸 다 채워야 잠을 잘 잘 수 있어요. 못 채우면? 잠 잘 못 자요. 오늘 연애를 잘해서 행복하면 잘 자고, 맛있는 거 먹어서 행복하면 잘 자는 거죠. 하루에 정해진 양을 매일 채우면 인생이 행복해져요. 근데 한국 사람들은 이 쾌락, 즐거움, 행복을 미뤄요.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내일은 즐거울 거야, 내일은 먹을 수 있어, 내일은 연애할 수 있어…. 뒤로 미루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매일이 행복해야 인생 전체가 행복해지는 거 아닌가요?

행복할 수 없는 현실 탓을 하는 사람도 많던데요.

꼰대 같다고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이 말은 하고 싶어요.(웃음) 지금 20~30대들은 ‘5포세대’라면서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본능적 쾌락을 포기한다고 말해요. 인간은 동물이에요. 동물로서 가진 본능적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말이 되나요. 나는 취직을 못 해서, 나는 비정규직이라서, 집값이 너무 비싸서 등등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서 포기했다고 하는데 그게 문학작품들을 잘 안 읽어서 그래요. 문학작품을 보면 전쟁 통에도, 내일 당장 죽을 걸 알면서도 이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사랑을 해요. 인생이란 그런 거거든요. 내일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거. 그걸 왜 포기하나요. 돈 없어서 만나기 어려우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라도 하세요. 그럼 행복해져요. 근데 그것도 안 하겠대. 왜 안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데.

03.jpg


그래도 노량진까지 왔으니까… 요즘 맛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웃음)

많이 이야기해주면 안 돼요.(웃음) 한국은 겨울이 5개월 정도 되는데 다행히 그동안 바다에서 맛있는 것들이 많이 나와요. 겨울바다가 맛있지 여름바다는 맛이 없어요. 이맘때면 꼬막이랑 대구를 먹어야 하는데. 2월쯤 가면 꼬막이 더 제대로예요. 골이 깊은 걸 골라 살짝만 익혀서 핏물이랑 후루룩 먹으면….(웃음) 대구는 보통 탕을 생각하는데 살을 해풍에 일주일 정도 말리면 꾸덕꾸덕해지거든요. 그걸 살짝 저며서 회로도 먹고 탕을 끓여서 먹기도 하고. 생선은 건조숙성을 어느 정도 해야 더 맛있어져요. 결도 살아 있고 감칠맛도 더해지거든요.

굴도 많이 보이는데요.

자연산 굴은 겨울 한철 언제든 맛있죠. 우리가 흔히 양식 굴이라고 부르는 굴이 자연산 굴보다 맛있는 때가 있는데, 그게 2월 말에서 3월 초예요. 살이 꽉 차거든요. 자연산 굴은 향이 강하지만 양식 굴은 큼직해요. 그건 쪄 먹어야 돼요. 살짝 쪄서 한김 날려보면 살이 아기 볼처럼 탱글탱글해요.(웃음) 그렇게 보면 다들 각자 포인트가 있는 거죠. 어느 하나 맛없는 재료가 없다니까요.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