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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29]강변 소도시 보스니아 트레비네는 치유의 보고

2020-06-30 11:22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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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트레비네는 조용한 강변 마을이다. 레오타르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트레비슈니차 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소도시. 오스만 시대의 아치형 다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마을을 잇는다. 고요한 소읍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든다. 강물 속으로 마을 풍치가 풍덩 빠져 반영되어 흔들거리면 긴 여행자의 묶은 시름까지도 사르르 치유된다.
트레비네의 가옥들.JPG
트레비네의 가옥들

 *모스타르에서 트레비네까지 첩첩 산중 길고 긴 여행
한 여름, 크로아티아는 지긋지긋 했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Mostar)로 도망쳤고 이내 트레비네(Trebinje)로 떠난다. 필자가 예약한 숙소는 개울 옆, 아름다운 전원 카페 분위기가 나는 그런 곳이다. 새로 신축한 듯 모텔은 깔끔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촉수 낮은 불빛의 어둠침침한 야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는다. 숙소 사람들일까?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다. 맑은 개울물을 담아 낸, 작은 연못 속에는 송어가 살아 움직인다. 모텔 직원은 자기네 음식이 최고라고 했지만 모험은 하기 싫어 야채 샐러드와 바다 생물인 오징어 요리를 시킨다.

 

샐러드를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마시는 동안에도 메인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질 좋은 지역 와인 한 잔을 더 시키고 홀짝홀짝 마실 즈음에야 요리가 상차림 된다. 삶은 작은 오징어와 삶은 감자, 삶은 근대가 얹어 있다. ‘음식을 참 맛있게 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준급이다. 어디를 가든 ‘음식 잘하는 곳엔 손님이 많구나’를 생각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다가 한 아주머니랑 스치듯 대화를 나누게 된다. 스위스에서 살다가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그러면서 ‘내일 올드타운을 가려면 자기 남편이 안내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낯선 누군가에게 여행 안내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냥 지나치는 말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습관처럼 ‘고마워’라는 말을 한다. 그녀는 가족이 있는 테이블로 날 끌어 당긴다. 그녀가 이끈 테이블에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쓴, 무척 깐깐해 보이는 남편 말고도 여러 명이 함께 앉아 있다. 남편은 내일 집으로 찾아오라면서 아주 꼼꼼하게 이름, 주소, 전화번호, 약도를 그려준다. 낯설은 곳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웬지 진심이 느껴진다.

트레비슈니차 강 풍경.JPG
트레비슈니차 강 풍경

*트레비슈니차 강과 아르슬라나기치 다리의 환상적 조화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다음날, 내 몸은 죽을 만큼 아프기 시작한다. 침 한 방울도 삼킬 수 없이 목구멍은 찢어들 듯 아프고 온 몸은 천근이다. 일단 메인 타운에 가서 약국부터 찾아야 한다. 거기에 전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말도 해줘야 할 것 같다. 타운까지 5km. 택시를 부르면 간단할 일을 또 걷고 있다. 땡볕은 강렬하고 발걸음은 무겁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내든다. 나무가 거의 없어 흰 빛을 띄는 카르스트 지형의 레오타르(Leotar) 고산과 트레비슈니차(Trebišnjica) 강이 휘도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트레비네의 대표 명소인 ‘아르슬라나기치(Arslanagić) 다리(길이 80m 높이 6m)'는 무심한 시민들 때문에 위치를 놓치고 만다.

트레비슈니차 강과 올드 타운.JPG
트레비슈니차 강과 올드 타운

 한참을 더 걸어서 메인 타운에 거의 다 다달았을 때에야 먼 발치의 다리를 보게 된다. 아치형의 다리와 트레비슈니차 강이 한데 어우러진 풍치가 멋지다. 트레비슈니차 강에 이 다리가 만들어진 것은 15세기(1574년) 오스만 제국 시대다. 오스만 제국 때의 트레비네는 두브로니크와 이스탄불을 잇는 중요한 무역로였다. 다리 이름은 당시 다리의 통행료 징수권을 갖고 있던 '아르슬란 아가(Arslan-aga)'라는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당시 지도자인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Mehmed-pasa Sokolovic 1506~1579) 명에 의해 유명한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8 혹은 1490~1588)이 건설을 맡았다. 그는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Visegrad)의 다리를 만든 장본인인 것 빼고도 대단한 작품이 아주 많은 건축가다. 원래는 훨씬 더 북쪽에 있었는데, 트레비슈니차 강에 수력발전소가 생기면서 1972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이 다리는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 건축된 다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주 잠깐은 아픔도 잊는다.

드라간 부부.JPG
드라간 부부

 *보스니아의 가장 오래된 도시에서 만난 따뜻한 ‘드라간’ 부부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약국으로 들어간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이든 약사에게 어렵사리 인후염과 콧물 약을 산다. 도심 구경 대신 전날 밤, 식당에서 약속한 집을 찾아 나선다. ‘몸 아파 죽겠는데 뭐 그리 예의롭다고’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약속을 어긴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도 나쁠 것이다. 긴가민가 하면서 어느 한 집을 기웃거리다가 전날 만난 남편 드라간(DRAGAN PROVIDŽALO)을 만난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주머니 외에도 아들도 있다. 키가 2m나 되는 아들은 화가란다. 그는 트레비네 근처의 더 작은 마을에 작업실이 있고 가을에는 스위스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말한다. 작품을 팔아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쓸 정도라면 나름 유명한 화가일 것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주인 아주머니는 소시지와 동유럽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고급 산양 치즈까지 내어준다. 이 집에는 송로버섯을 찾는 강아지도 있다. 이내 부부와 함께 시내로 나섰고 ‘드라간’은 본인이 태어난 이 도시에 대해 많이 알려 주려 애쓰고 있다.


트레비네는 보스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스릅스카(Srpska) 공화국에 속해 있다. "태양과 플라타너스 나무들의 도시"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1355년까지 세르비아 왕국에 속해 있다가 이후 보스니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 오스만제국의 지배(1463~1878)를 받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권(1878년~1918년) 아래로 들어갔다. 합스부르크 지배 시절, 도시 방어를 위한 요새가 건축되고 광장, 공원, 학교, 공장 등이 들어서는 등 규모가 확대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던 1945년~1990년에 걸쳐 수력 발전소와 댐, 인공 호수,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급격히 발전했지만 보스니아 내전은 이 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트레비네 메인 타운엔 남아 있는 오래된 유적지가 없고 묘지만 많다.

드라간의 화가 아들.JPG
드라간의 화가 아들

드라간 부부와 함께 1908년에 설립된 세르비아 정교회를 찾는다.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보스니아지만 그들은 그리스 정교회다. 트레비네는 10세기부터 카톨릭 교구가 생겼고 ‘카톨릭 1000주년'을 기념행사를 열었던 도시다. 또 중심 광장인 '자유광장(Trg Slobode)'으로 가는 길목에도 19세기 말에 세워진 자그마한 성모탄생 교회가 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유 공원 앞의 카페는 유명한 배우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라고 드라간은 말한다.

세르비아 정교회 입구.JPG
세르비아 정교회 입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공원 한 켠에 마련된 청과물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면서 요반 두치치(Jovan Ducic, 1871~1943) 동상을 발견한다. 요반 두치치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트레비네 도서관에는 두치치가 기증한 장서 수천 권이 전시되어 있다. 또 이 도시 언덕 위에는 2000년, 그를 기리기 위해 코소보의 그라차니차 수도원을 본 떠 완공한 헤르체고바카 그라차니차 수도원이 있다. 드라간 부부와 함께 체바피(Cevapi, 혹은 체바치치Cevapcici)'도 먹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어릴 적 추억을 듣는다.

 

약 덕분에 목 아픔은 줄었고 여러 가지를 보여주려는 현지민에게 감동 받아 한국식으로 몰래 밥값을 낸다. 그들은 한국식의 ‘밥값 계산’에 감동했는지, 기필코 차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까지 안내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면서 고향 떠나 스위스에서 살다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드라간.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고 말이다. 어쩌면 나이든 그가 여행객과 대화를 할 정도의 영어구사를 하는 것도, 외국인을 안내해주겠다는 마인드도 스위스에서 얻은 지식일 것이다.

 

그는 내게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그리고 트레비네에 오면 ‘내 집’에서 언제든 ‘공짜’로 묵으라는 말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집에 다시 가서 정담을 실컷 나누고 싶다.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하지만 가는 곳마다 스토리는 달라진다. 매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들. 묘한 인연의 발자취를 트레비네에 남겼다. 인터넷을 못하는 드라간과 지속적인 연결은 못하지만, 내 가슴 속에 영원한 추억을 남긴 사람. 동양인이 그곳에 여행 온다면, 나와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분명히 반길 것이다.

*Travel data
가는 방법:한국에서 직항은 없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수도인 사라예보 국제공항이 있다. 

현지교통:사라예보를 기점으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가 운행된다고 하나 실제로는 택시 뿐이었다. 필자처럼 모스타르에서 접근하거나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에서 이용하는 편이 낫다.

음식과 숙박:올드타운에 체바치를 잘하는 집이 있다. 또 모텔 스튜데낙(Motel Studenac)은 음식과 숙박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먹은 생선스프는 최고였다. 또 트레비네는 질 좋은 와인 산지다. 브라나츠 와인은 발칸의 희귀 품종으로 타닌과 산도가 높아 명성이 높다. 포드루미 부코예1982(Podrumi Vukoje 1982) 와이너리가 유명하다. 시내에서는 택시를 타야 한다.

 

글, 사진:이신화(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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