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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가, 이탈리아 빈치마을

2020-06-09 11:14

글·사진 : 이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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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몰라도 그림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은 한번쯤 봤을 것이다. 불후의 명화를 남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저 세기의 걸작을 남긴 이탈리아의 대표 화가로만 알았던 그는 사생아였고 요리사였으며, 각종 주방용품을 만들어낸 발명가에 채식주의자, 인체를 직접 해부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레오나르도의 삶의 흔적은 빈치(Vinci)마을, 피렌체, 밀라노에 스며 있다.
빈치마을.JPG
빈치마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시골 마을
레오나르도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 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빈치마을 성벽.JPG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피렌체와 피사 중간 즈음이라고 할 수 있는 ‘빈치마을(Citta di Vinci)에서 태어났다. 엠폴리(Empoli)라는 도시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골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빈치 마을은 여느 곳보다 작고 훨씬 시골스럽다. 길을 따로 묻지 않아도 된다. 교회 첨탑을 바라보면서 길을 오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다. 

 

고풍스러운 성곽 안(conti Guidi)에는 다빈치가 그린 그림들,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곳은 레오나르도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아이디어 체험관이다. 그리고 야외로 나가면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가 커다랗게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인체도(3m)는 마리오 체롤리(Mario Ceroli)가 만든 작품. 레오나르도는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일요일 교회 결혼식.JPG
일요일 교회 결혼식

 *아펜니노 산맥에 둘러 쌓인 첩첩 산중 마을
인체도를 비껴 첨탑으로 오르면 빈치마을을 훨씬 쉽게 조망할 수 있다. 눈 방향을 사방팔방으로 돌려보면 아펜니노(Apennino) 산맥의 온 능선을 따라 올리브와 포도나무가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오래된 건물들과 아기자기한 민가가 한데 어우러진, 토스카냐 산간의 빈치마을이 매력적이다. 특히 시골 풍치를 좋아한다면 이 마을을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전시관 옆에는 로마네스크 풍의 오래된 산타크로스 교회(Santa Croce, 1132년)가 있다. 한껏 치장한 하객들에 에워쌓인 한 쌍의 결혼식이 한창이다. 한껏 멋을 낸 들러리들의 행복한 웃음을 함께 느끼면서 생가(1.5km)로 발걸음을 옮긴다. 옹기종기 민가가 모여 있던 마을을 비껴나면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사잇 길이 이어진다. 띄엄띄엄 이어지는 농가 몇 채와 와이너리를 지나쳐 언덕을 넘어서면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초루한 생가를 만난다. 집 내부에는 세 개의 방이 있고 레오나르도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 그리고 벽에 그려진 그림 뿐이다.

 

레오나드로 생가.JPG
레오나드로 생가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레오나르도는 이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인 피에르 다 빈치(Ser Piero da Vinci)였고 어머니는 가난한 농부의 딸인 카타리나(Catarina)였다. 하지만 둘은 결혼하지 못했다. 다빈치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렸다. 거기에 다빈치가 젖먹이 때 어머니는 이웃 농부에게 시집을 가버렸다. 그는 조부모 밑에서 14살까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살았다.


이후 그는 아버지를 따라 당시 수도였던 피렌체로 거처를 옮긴다. 아버지는 능력 있는 공증인이었지만 사생아였기에 직업을 물려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 재능을 발견하고 친구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 보낸다. 베로키오는 청동 주물과 회화, 건축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장인이자 ‘기술 개혁가’였다. 레오나르도는 그곳에서 20대 초반까지 미술 및 기술 공작 수업을 받는다.


자료에는 레오나르도가 스승보다 그림을 잘 그려 더 이상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그 속에는 전혀 생경한 이야기가 숨겨있다. 레오나르도는 바닥청소, 잔심부름과 같은 허드렛일을 하는 견습생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는 그림 연습은 뒷전이었고 늘 먹는 것만 밝히는 제자였다. 스승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베로키오는 일부러 ‘그리스도의 세례’(1472-1475경)‘라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왼쪽 모퉁이에 있는 천사를 그리라고 시킨다. 놀랍게도 레오나르도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천사를 그려냈다. 이후부터는 스승은 그림에는 손대지 않고 조각만 했다는 것이다.

빈치 생가가 있는 방향.JPG
빈치 생가가 있는 방향

 *게으르고 먹기 좋아하는 청년
그가 먹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요리사랑’으로 이어진다. 당시, 레오나르도는 일이 끝나면 피렌체 베키오 다리 옆에 있는 ‘세 마리 달팽이’라는 술집에 가서 주방 일을 했다. 레오나르도가 이 곳의 주방 일을 도맡으면서 쫄딱 망했고 그 자리에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술집을 차렸다. 술집 이름은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레오나르도가 개발한 요리는 지나치게 혁신적이어서 손님들을 떨어뜨렸다. 결국 망했다. 짐작컨대 레오나르도는 그림 그리는 타고난 재주는 있었으나 재미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도 20세(1472년)때, 화가로 인정받아 피렌체 화가 조합에 등록하게 된다. 하지만 스승에게서 독립한 이후 그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전쟁에 시달리던 피렌체의 재정은 파탄나기 시작했고, 교황과의 갈등도 심해져 성당을 신축할 수도 없었으며, 흑사병이 유행하고 있어 아름다운 도시는 혼돈의 장으로 변했다. 보티첼리, 페루지노, 피에로 디 코시모 등은 교황의 부름을 받아 신축 성당의 벽화 작업을 위해 로마로 떠나갔지만 레오나르도는 명단에도 없었다. 그동안 몇몇 작업을 의뢰 받았으나 그의 게으른 성품 탓에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도 못했기에 “재주는 많으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어쨌든 피렌체 시절(1466~1482년) 그린 작품으로는 “석죽의 성모” “수태 고지” “베노바 가의 성모” 등이 있다. 그러다 30세(1482년) 때 밀라노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늦깍이로 밀라노에서 예술 꽃 피워
그는 나이 67세(1519년 5월 2일)때 사망했다.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의 전기에서 레오나르도가 프랑소와 1세의 품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에 그의 유산은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프란세스코 멜지(Francesco Melzi)가 상속받았다. 프랑세스코 멜지의 죽음(1570년)후 엄청난 양의 크로키와 그림이 세상에 나왔다. 레오나르도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그림 말고도 호기심이 너무 많았던 듯하다. 그는 스스로가 완성하는 일보다는 착상하는 일에 더 큰 기쁨을 느꼈다는 해석이다.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을 갖고 있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가르켜 ‘모두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너무 빨리 깨어난 사나이’라고 했다. 유명한 전기작가인 마이클 화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초의 과학자”라는 책을 썼다. 그는 연구와 실험을 반복하며 가설을 확인한 최초의 인류였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피렌체나 피사에 여장을 풀고 엠폴리(Empoli)로 가서 빈치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엠폴리 역 인근에 있는 버스는 원래 배차되는 버스가 많지 않은데다 주말 등에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행여 버스 간격이 길어진다면 천천히 엠폴리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엠폴리 여행정보:아르노 강(江) 하류에 위치한 엠폴리는 로마제국 때부터 있었던 도시. 시내 중심가의 폰타나 나이아디 분수와 오래된 교회(Chiesa della Modonna del pozzo), 유리공장을 박물관(Museo del Vetro di Empoli)이 된 곳은 무료입장, 프레토리오(pretorio) 가의 올드타운 외에는 딱히 볼거리는 없다. 중국인들이 유난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반면 유명 관광지가 없어서 한적하게, 욕심 없이 여행을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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