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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

2019-07-01 23:49

글 :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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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그들이 말하지 않는…’이라는 말 한 토막을 썽둥 잘라, 얇고 조막만한 입술로 뇌까렸다. 듣자마자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떠올렸다면 나름 ‘책 좀 읽는’ 독자이실 테고, 이런 분들은 십중팔구 이놈이 경제 얘길 하려나보다 지레짐작하실 테다.

하나 안타깝게도 나는 신자유주의냐 수정자본주의냐 따위의 논쟁을 여 보란 듯이 읊조릴 자격도, 그럴 마음도 없다. 나는 그저, 딱 그놈들일 것 같은 ‘그들’이나, 누구라 특정할 수 없는 ‘그들’이나, 어쩌면 우리 모두일지도 모를 ‘그들’을 향해, 다소 딱딱한 볼멘소리 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래 듣기 거북한 뉴스들에서 비롯됐다. 워낙 시끄러운 세상이라지만 지난 몇 주는 유난히 많은 문제적 뉴스가 흙웅덩이에 빠져 아우성이었다. 인내심은 최저점을 향하고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연예인 강연료, 측근발탁 회전문 인사, 재벌미술관 키워준 문화재청장, 합격(시켜야 할)자 리스트… 소심하고 무지한 평민을 자극한 키워드는 대체로 이랬다.
 
익히 알려진 사건 제목들이라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뜨거운 오후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는 밥벌이 중에 나를 지치게 하는 문제의 알맹이는 이렇다. 불안과 몰염치. 그 둘이 한 통속으로 놀아나는 꼴이 내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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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이 법륜스님과 ‘청춘콘서트’ 강연을 함께 진행하는 모습(좌),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대화하는 모습. 사진=조선DB.
 
김제동. 그가 강연료를 얼마나 받든 내 알 바 아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스타님들 꽁무니 쫓아다니며 몸값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세금이어서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돌아보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 처음 일어난 것은 아닐 터, ‘그들’은 물 만난 듯 쌍방을 공격하기에만 너무 바쁘지 않은가. 일방적인 파상공격엔 수비부터 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살고 봐야 하니까. 그래서일까. 미처 챙기지 못했던 걸 솔직히 인정하거나, 진지하게 반성 비슷한 걸 하거나, 원점부터 머리를 맞대어 대안 같은 걸 합의 도출하는 모양새는 없다.
 
측근발탁 회전문 인사. 너무 염세적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나 내 관심은 이것에도 투미하다. 조만간 조 씨가 장관이 되든 예전엔 권 씨가 장관이 됐든 무심하다는 건, 국민으로서의 권리 포기이자 의무 방치이니 창피한 노릇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때 말’ 다르고 ‘이때 말’ 다른, 아니 말은 같았다. 그때 포지션과 이때 포지션이 다른 기시감 강한 싸움질을 보면 견뎌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그들’에게 쩔었다. 도통 나아질 게 없는 가난한 국민이라 ‘짠내투어’나 해야 하고, 갈수록 까다로워져 ‘짠내정치(참여)’도 해야 하니, 아주 죽을 노릇이다.
 
기자 출신 청장님이 월간 잡지에 ‘계속’ 기고한 게 구설수랬다. 벼슬자리에 오르기 전에 이미 약속된 일이니 끝맺음을 해주는 게 필자로서의 도리다. 하나 공기관장이 민영 미술관 오너 패밀리 이야기를 사제잡지에 기고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에도 날이 서있다. ‘외부기고 금지 규정이 없어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설명은 딱히 꼬집어낼 만한 잘못이 없다. 그래도 ‘그 바닥 인심’을 사려해 합리적인 방도를 사전에 물었다면 피할 수도 있는 해프닝 아니었을까. 한 가지 더. ‘뒷담화’에 가담할 개연성이 있는 분들에겐 ‘예술 작품을 소개한 게 문제요, 재벌 미술관 작품이어서 문제요?’를 허심탄회하게 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구설수 관련 기사는 이른 바 한 ‘좌파언론’에 등장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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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월간미술. 사진=월간미술 홈페이지(좌). 강원래드 카지노 객장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조선DB.
 
대한민국 대표 카지노 회사에선 인사청탁에 의한 부정채용이 논란이다. ‘꼭 합격시켜야 할’ 후보들 명단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준 사람은 안 줬다 하고, 받은 사람은 받긴 받은 듯한데 기억이 흐릿하다고 모르쇠놀이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 피의자 보호를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형사법상 온전한 이 원칙에 ‘양심’이나 ‘염치’ 따위를 기대해볼 여지는 없어 보인다. 폐광지역인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지역민 출신을 우대하는 제도는 알려져 있다. 이것으로 모자라 인사추천이나 청탁이 공공연하다는 건 알만한 이는 다 아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도 법 앞에는 무용지물이니, 현실이 아무리 불합리한 징후를 보여도 합리적 의심을 주장하기 쉽지 않다. 이 지루한 촌극은 지금 법정을 오가는 이들이 퇴장해도 또 반복될 테고, 그러니 언제 끝날지 모른다.
 
머리 아픈 뉴스는 또 쌔고 쌨다. 왜 그럴까. 이 모든 것, 불안해서 그렇다. 다리 걸려 넘어지든 저 혼자 넘어지든 일단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전쟁터 같은 삶이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자니 불안하다. 불안을 숨기기 위해선 적당히 염치없어야 한다. 염치를 꼭꼭 숨겨두고 다니니 매사에 원형과 본질에 당당하게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쌍방이 납득하고 화해하는 해결점이 없다. 누군가는 코피가 터져야 ‘승자의 정의’가 가공품처럼 생산된다.
 
국민 유행어가 된 ‘내로남불’은 이 사회 곳곳에 파고든 진영논리의 속살이 되어간다. 따지고 보면 진영논리 이전에 원래부터 인간 본성의 한 축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정치를 떠나 사회생활 곳곳에서도 흔히 목도하는 현실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좀 어지간했으면 좋겠다. 인간은 홀로 있어도 다함께 있어도 불안을 끼고 사는 존재다. 누구나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수사로 포장한 몰염치로 본질과 정의를 동나게 하는 세상은, 슬프고 위태롭다.
 
인생도처 살얼음이요 때론 함정이다. ‘그들’이 알고도 말하지 않는 엄청난 비밀이다.
얼마나 더 알아야 동요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마음을 얼마나 비워야 걸음이 가벼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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