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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망상 ‘여행의 해석’

2019-05-08 18:23

글 :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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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어린이날 연휴에 봉착하여 놀라고 주춤했다. 남들은 한두 달 전 또는 연초부터 달력 펼쳐놓고 동그라미 그리며 기다렸을지도 모를 휴일을, 난 늘 그렇듯 닥쳐서 당면하고 봉착한다. 앞에 놓인 일 우선인 고집스런 천성, 한꺼번에 여러 일을 꾀하지 못 하는 장애 탓이겠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내 나름 ‘휴식’의 의미가 공고하기 때문인데, 내게 ‘쉼’이란 말 그대로 ‘그냥 쉼’이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몸을 움직여 무엇을 하는 것이 휴가를 대하는 지극히 당연한 자세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특별히 유난스럽게 계획할 일도 없다.
 
그 태연한 자세로 여지껏 잘 살아왔음에도 ‘놀라고 주춤했다’ 엄살 피우는 것은, 여전히 내 주변에 존재하는 흔한 인식 때문이다. 아드님은 명색이 연휴인데 짧게라도 어디 안 가냐는 눈치다. 명색이 고3인 녀석이 대놓고 할 소린 아니겠지. 말 꺼냈다면 양심과 눈치가 없는 놈이다. 마누라 역시 마음은 이미 하늘에 가있기 쉬웠다. 구름을 가르는 비행기가 꼬드기는 상상은 얼마나 풍만한가. 딱히 꼬집어 말하진 않아도 우리는 상상 속에서 각자의 어떤 여행을 준비했다.
 
이러다 나 역시 유혹에 빠질 듯하여… 아들놈 엉덩이 걷어차 독서실 보내고 간단한 보따리에 마느님까지 구겨 넣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동네 호수공원. 돌돌 만 돗자리를 등짝에 둘러메고, 한 쪽 손에 먹거리 보따리, 다른 한 쪽엔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이레. 2004)을 집어 들었다. 왜 하필 그딴 책이었을까. 내 나름의 휴식관, 나만의 여행관(?)을 확인하고 애써 증명하려는 저의가 있지 않았을까. 며칠 지나 돌아보니 혐의가 상당하다.
 
내게 있어 휴식과 여행은 행위의 양태는 다르지만 동일한 그 어떤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기르는 시간(휴식)과 눈에 보이는 객체를 매개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여행)은, 모두 내적인 사유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 표현하지 못할 뿐 사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어쨌거나 나는 눈에 보이는 객체에 빨려들어 나를 쉬 소비하는 일에 능숙하지도 익숙하지도 못 한 것이다. 거꾸로 그것들이 나의 사유를 보필하게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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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여행, 공원에서 책 읽기. 일산호수공원에서.

계절의 여왕 5월의 화창한 봄날, 호수 옆 잔디에 자빠진 내게 ‘여행’에 대해 말을 건 이들이 있었다. 먼저 이 책을 쓴 보통 형님.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긴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리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물론이다. 여행이 내적 사유와 연관되어 있는 한, 그것은 사소하지 않은 본질적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여행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던 것, 즉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런 멋진 말로, 일상의 권태와 여행의 기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밖으로’ 안내한다.
 
‘…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작은 생각'만 해도 좋으니 '작은 광경'이라도 보러 떠나고 싶어진다. 저자는 여행을 위한 이동수단 중에도 특히 기차를 권한다. 사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적당한 속도와 다양하면서도 안정적인 창가의 풍경이 장점일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1821~1867)도 기억에 남는다. 알랭 드 보통은 그를 내세워 외롭고 괴로워 탈출하듯 떠나려 하는 자들의 고뇌와 습성을 설명했다.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샤를 보들레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염세적 시인이었다. 아버지는 다섯 살에 죽고 어머니는 그가 싫어하는 남자와 재혼했다. 집이 싫었던 그는 짐짓 어릴 때부터 기숙사 학교를 떠돌아 다녔다. 퇴학도 여러 번, 좀처럼 자신의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그는 조국 프랑스와 그곳에서의 ‘일상’을 떠나는 게 잠재적 욕구였다. 그에게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엇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여행이되 즐겁지 않은, 염세적인 내적 사유의 여정은 온전히 보들레르의 것이었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하며,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디론가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마지 않는다….'
 
보들레르뿐 아니다. 플로베르(1821~1880)에게도 여행은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황량한 느낌의 에릭 호퍼(1882~1967. 미국 화가)의 유화도 소개하며, 쓸쓸한 영혼들을 여행에 초대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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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자동 판매식 식당>. 1927

책머리쯤에서 저자는 여행에 대하여 늘 제기되는 한 가지 문제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관계라고 말한다. 어떤 장소를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 우리는 저마다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식구들의 ‘짱구 눈빛’을 감지했을 때 나 역시 어디로라도! 밖으로! 떠나고 싶었다. 화창한 봄날 휴식과 내적 사유를 벗하고 있었지만 내심 니스나 멜버른, 가까이는 도야마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 강렬했다. 그럼에도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주문 외듯 되뇌었음을, 그리하여 갖은 핑계로 연휴계획을 공원 나들이로 퉁치게 된 것임을, 이제쯤은 고백해도 되겠다.
 
현실이 궁핍하면 내적 사유도 비루해지는 것. 알고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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