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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찾은 빛나는 이름,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2019-04-12 22:36

글 : 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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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이름을 알게 됐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 1873~1954)’. 20세기 전반을 통틀어 가장 독보적이었던 프랑스 작가라는데, 과문하기 이를 데 없는 나로서는 금시초문의 이름이었다. 그나마 소설 『파리의 클로딘』 정도는 읽어줬어야 하는데, 그를 처음 접한 곳은 조그만 영화관이었다.
 
2018년 영화 <콜레트>는 지난 3월 말쯤 국내에 소개됐다. 최애 여배우를 꼽으라 하면 툭 튀어나오는 나의 3종 세트, 그 이름도 거룩한 애슐리 주드와 나오미 왓츠 그리고 아네트 베닝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매력 있는 그녀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이다.
 
이 영화 좋다. 그녀에게 배역이 잘 어울렸고 연기가 출중했다. 하긴 배우가 누구였더라도 그러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영화 내내 보이고 들리는 건 오직 ‘콜레트’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시종 영화를 끌고 가려면 웬만한 연기력 아니고선 턱없을 듯하다. 함께 기억하기 좋은(?) 이름 하나 더 대라면 ‘윌리(Willy)’정도나 되지 않을까싶은데, 이 남자 멋있고 똑똑하고 호탕해 보이지만 사실은 찌질하고 비루한, 콜레트의 바깥양반이시다.
 
작가 콜레트 이야기를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이니, 줄거리 좀 읊어댄들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겠다. 그녀의 실제 인생은 영화보다 엄청나게 더 큰 스케일로 파란만장했을 터, 영화는 그 인생의 축약판이다. 콜레트는 브루고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자연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출판업자 윌리를 만나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윌리는 말하자면 책공장, 글공장 사장이다. 소속 작가들을 독려하고 채찍질해 많이 팔릴 책을 만드는 일에 여념이 없는 기획자이자 사업가다. 게다가 파리 사교계에도 익숙한 그를 콜레트는 존경하고 흠모하는 기색이다.
 
출판사가 적자를 향해 달리고 작가 관리도 힘겹기만 하던 어느날, 윌리는 콜레트의 섬세한 감각과 글재주에 주목하게 된다. 이날부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줘가며 마누라 글쓰게 하기에 주력하는 윌리. 콜레트의 성장기를 풀어낸 자전적 소설 『클로딘』을 시리즈로 발간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소설 연작의 주인공 ‘클로딘’은 바로 콜레트다. 그야말로 불이 붙는다. 책은 물론 영화, 연극, 모든 생활필수품까지 ‘클로딘’ 브랜드가 찍혀 하나의 트렌드가 돼버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글쓴이는 콜레트인데 출간된 소설의 저자는 윌리다. 문득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긴 했지만 콜레트는 끝내 대중 앞에 나서길 주저한다. 남편 윌리가 전혀 바라지 않았고 그 진실을 가리려 무던히 애쓴 건 물론이다. 생계 위기가 온 가정을 구하고 남편을 돕기 위한 그녀의 희생타를, 윌리는 매번 위선을 떨며 이용해먹는 듯하다. 더 이상 유령작가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콜레트에게, 남편은 감언이설과 위협을 섞어가며 후속 작 출간을 종용한다. 불화는 깊어가고 결국 이혼하는 그들.
 
끝내 ‘클로딘’ 연작 판권도 팔아먹은 윌리는 여전히 얄팍한 핑계를 대며 그녀 주위를 기웃거린다. 그러나 독립된 한 인간으로 선 그녀는 이제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탈출구는 글쓰기는 물론 동성연애와 연극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자아였다. 시대의 편견이 강했던 터라 팔매질을 당하고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강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콜레트는 우여곡절 끝에 작가적 성취를 인정받고 문화적 아이콘으로도 성공하게 된다. 윌리가 아닌 콜레트(Colette)의 이름으로.
 
영화 속에 표현은 안 됐지만, 작가 콜레트는 이후 『지지』, 『암고양이』, 『셰리』 등 거의 모든 작품을 성공시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특유의 감각적 표현과 탁월한 심리적 묘사로 독자층을 흡인했다. 1945년 콩쿠르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되는가 하면 결국 회장까지 역임하고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국내외에서 프랑스 문학계의 영웅이라는 평을 들었다.
 
과거의 콜레트는 윌리의 아내로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돕는 일이 사랑이고 행복의 전부라 여긴 탓이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이런 사랑은 물론 숭고하다. 그러나 완고한 사회적 굴레에 갇혀 속박을 속박이라 여기지 못했던 시대의 그 사랑은, 우울하다. 희생과 헌신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과 동등한 자아를 발현하지 못 하는, 게다가 인정받지도 못 하는 사랑은, 비루하다. '함께'하는 사랑이 '혼자'일 때의 자존만도 못 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골집에 엄마를 보러 갔을 때 친정엄마도 끝내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자신이 행복한 길을 택하라고. 
 
뜻하지 않은 기회에 세 여자를 만났다. 영화 속 ‘콜레트’와 소설로 부활한 ‘클로딘’, 그리고 실제 인물인 작가 콜레트. 각자 활약한 시간과 공간이 달랐을 뿐, 그녀들은 한 사람이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학적 성(gender)의 굴레 모두에 도전한 여성, 콜레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훌륭하냐고? 아니, 시시비비나 찬반은 남녀노소불문 각자의 몫이다.
 
이 여인에 대한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날 아침, 마침인지 하필인지 조간신문 한 구석엔 이런 제목이 인쇄돼 있다.
 
“자기 영토 없는 새, 이 땅의 여성을 보는 듯”
 
등단 40년인 시인이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는 내 삶의 조건이자 존재의 전부라고 일갈하며 덧붙인 말이다. 시인은 말했다. 새의 움직임이 여성을 닮았고. 새가 날갯짓을 하는 행위가 주는 이미지가 여성의 동작을 닮았으며, 새는 이 땅에 자신의 영토가 없다는 점도 여성을 닮았다고.
   
나는, 이 땅의 여성 태반이 ‘자기 영토 없는 새’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땅의 시민들 태반이 자기 땅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콜레트에 이어 시인의 말을 접하고 나니 그저 찝찝하고 무상한 느낌이 들 뿐이다. 자기 영토가 없거나, 있었다가 뺏겼거나, 또는 자기 영토에 몽매하게 갇히고 매몰됐거나... 어쨌거나 인간의 삶은 행과 불행의 교차반복 아니겠냐는 푸념이 떠올라서다.
 
문득, 나의 영혼은 어느 영토에 있는가를 되물어본다. 어차피 없는 그 땅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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