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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30]‘믿음’이 생기는 규칙

2020-09-14 16:01

글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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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서 태어나
프랑스 왕실의 저명한 재정가가 된 존 로를 기리며.”
_ 사모이세 성당의 묘비 문구, 베네치아

1700년대 초, 프랑스의 재무 장관을 지낸 존 로(John Law)는 종이돈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금세공사인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는 금이 아닌 금 보관증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믿음을 형성하는지 알고 있었다. 종이라는 ‘믿음’이 담긴 상품이 금과 같이 가치 있는 것으로 재탄생 되는지를 말이다. 로는 돈이 생기는 규칙을 알고 있었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 리스크는 사라진다.’

 

로가 지닌 이 문장은 1715년, 프랑스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남긴 엄청난 국가부채로 혼란스러웠다. 유럽의 패권을 호령하던 강한 국가의 면모와는 달랐다. 프랑스의 재무 상태는 잦은 전쟁으로 건실하지 못했다. 로는 프랑스 국왕에게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금이나 은이 아닌 국가가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로는 국가가 보장하는 돈을 찍어내서 통화량을 늘리면, 경제가 살아날 뿐만 아니라 국가 부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1716년, 프랑스에는 최초의 지폐 발행 은행인 ‘뱅크 제너럴’이 세워졌고, 주화(금속화폐)를 국가가 보장하는 지폐인 은행권으로 교환했다.

 

하지만 그 누가 지폐를 교환하겠는가? 프랑스 왕실은 지폐(은행권)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세금을 지폐로 납부하도록 고지했다. 강력한 힘을 부여하자 시중에는 은행에서 발행한 지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사람들은 점차 거래하기 불편한 금보다는 가볍고 간편한 지폐를 선호했다. 프랑스 경제는 존 로의 뜻대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폐가 발행될수록 시민들이 소지한 값비싼 프랑스 국채(정부 부채)와 금, 은은 왕실에서 인정하는 종이 조각으로 교체되었다. 물론 지폐를 가져오면 언제든지 금, 은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애초부터 뱅크 제너럴은 모든 금, 은을 교체해줄 만큼 자금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로는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매년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왕실에서 인정하는 한 지폐의 가치가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는 더 많은 금, 은을 지폐로 교체하기 위해 계획했다. 그는 오늘날 루이지애나로 불리는 미시시피강 유역(당시 프랑스 식민지)의 개발권을 독점하던 미시시피사의 경영권을 획득했다. 막대한 양의 주식을 발행해 시중에 있는 금, 은, 국채를 흡수했다. 사람들이 가진 값비싼 국채, 금, 은은 종이 조각인 지폐로 교체되고, 지폐는 다시 시장으로 유입되어 주가를 끌어올렸다. 사람들은 미시시피사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로가 하는 일은 투자자의 머릿속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심는 것이었다. 루이지애나에 거대한 금광이 있다는 소문 말이다. 프랑스 담배 독점권, 세금 징수권을 홍보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이 살지 않은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광활한 땅, 루이지애나주가 있었다. 로는 모든 사람들을 미시시피사의 주주로 만들고자 했다.

 

로의 마지막 계획은 자신이 설립한 은행과 미시시피 회사의 합병이었다. 국가에서 보증하는 회사 이미지는 주식 수요를 크게 늘렸다. 하지만 그의 빼어난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남발된 종이 화폐로 인해 프랑스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종이에 대한 믿음은 더 큰 리스크로 돌아와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로의 거대한 계획은 프랑스 경제발전의 부흥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금융이라는 단어를 밀어냈다. 미시시피의 풍선이 터지자 프랑스 경제는 추락했고 사람들의 절규는 프랑스를 뒤덮었다.

 

로에게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막대한 프랑스 국채를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 왕실은 로의 계획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권이라는 잉크가 찍힌 종이는 로의 마법이었다. 그에게 믿음이란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갖게 될 것으로 상상하게 만드느냐’에 있다. 그는 대단한 투자자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믿게 하고, 그것을 프랑스 복권으로 바꿔 큰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주가가 상승할수록 왕실은 프랑스 부채를 민간으로 떠넘겨 골치 아픈 채무관계를 해결하고 로는 부와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라고 하면 존 로는 ‘내가 곧 경제’라고 화답할 만했다.

 

우리가 지폐를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이유도 모두가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이 생기는 힘, 왕실과 정부가 부여한 강력한 힘은 존 로가 말하는 위험이 사라지는 마법이다. 1944년 7월, 브레턴우즈 협정을 통해 35달러는 금 1온스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 같이 공유했다. 이 믿음은 1960년대 이르러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비용으로 엄청난 돈을 쓰자 주변국들은 달러를 의심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죄송합니다. 금이 떨어졌어요.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어요”라고 발표하면서 달러와 금의 관계는 무관한 것이 되었다. 달러에는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DOLLAR IN GOLD COIN’이라는 표기가 아닌 ‘DOLLAR’가 적혀있다. 오래전 금과 은이라는 화폐를 얻기 위해 많은 인부들이 금광으로 들어갔지만, 이제는 명분만 있으면 도화지에 숫자를 적고 국가가 보장한다는 도장을 찍으면 된다.

 

우리는 인쇄된 종이의 무한한 힘을 믿고 있다. 돈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강력한 믿음은 종이에 돈이라는 가치를 부여했다. ‘믿음’이 생기는 규칙, 존 로의 마법은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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