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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24]모두가 투자하는 유한책임회사

2020-08-04 14:47

글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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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성직자들은 사회의 기본단위를
교부 교회, 장원, 군주제라 했고, 근대에 들어 헤겔은 국가라고 했고,
마르크스는 공동체라고 했고, 레닌과 히틀러는 정당이라고 했지만
그들이 견해는 모두 틀렸다.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_ 존 미클 스웨이트,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업에 유한책임이 스며든 것은 11세기 이탈리아에서였다. 이탈리아의 무역업에서 코멘다(commenda)라는 사업 형태가 등장했다. 코멘다는 일종의 조합 조직이다. 상인과 선장의 동업에서 배가 돌아오지 못하면, 상인은 자신이 투자한 한도에서 책임을 졌다. 책임의 한도가 정해지자 재산을 모두 잃을 위험은 줄어든 대신에 수익에는 제한이 없게 되었다. 배가 돌아오면 상인은 70%를, 나머지는 30%는 선장이 가져갔고 분배가 끝나면 해산했다. 다시 출항하려면 기존의 동업자를 찾거나 새로운 조합원을 모집해야 했다. 수백 년이 흐른 1600년, 영국에서 출범한 동인도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무역 경쟁을 위한 새로운 회사가 출범했지만 수익을 배분하고 해산하기를 반복했다. 해산을 하면 수익을 확정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본의 안정적인 운용이 어렵고, 조합원 모집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구조는 1657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사라진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올리버 크롬웰은 네덜란드 회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동인도 회사를 ‘주식회사’(최초의 주식회사는 1602년에 설립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이다.)로 재편했다. 이와 더불어 현지 세력에 대한 교전, 선전포고, 외교 및 군사상 권리까지 전면적으로 부여했다. 크롬웰의 조치는 투자자를 동인도 회사로 이끌었다. 1659년에 자본금 37만 파운드에서 1685년에는 170만 파운드로 커졌고, 1670년대 배당률은 20%에서 1690년대는 두 배가 넘는 45%를 기록했다.(일본의 서양사학자 아사다 미노루의 『동인도회사』) 무역 규모와 선단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엘리자베스 여왕 1세가 하사한 동아시아와 인도의 무역 독점권 허가가 떨어진 이래로 1874년까지 약 270년간 바다를 누볐다. 독점 무역회사에서 식민지 경영까지 제국주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건설의 주역인 동인도회사는 불과 수십 명의 주주로부터 출발했다.

 

17세기 말, 영국에서 주식을 소유한다는 것은 극소수만 누리던 특권이었다. 동인도 회사의 주주는 얼마 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은 거의 없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는 법, 1711년에 설립된 남해 회사에는 수많은 투자자가 모였다. 이 회사는 영국 정부가 전쟁에서 발생한 부채를 털어내기 위해 설립했다. 남해 회사는 남미와의 노예무역권을 얻는 대가로 영국 정부의 국채를 사들였고, 이 채권을 다시 주식으로 전환해서 대중들에게 팔아 넘겼다. 회사가 부여 받은 특권과 정부와 왕실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문에 주가는 폭등했다. 사람들은 앞다퉈 남해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남해회사는 이제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발행할 수 있었다. 주가가 과열로 치닫자 그 끄트머리에서 주식을 매입한 사람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그 중에는 만유인력 법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도 있었다.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라고 했다. 경제적 피해가 커지자 영국 의회는 거품 법(Bubble Act-주식발행 금지 법안)을 제정했다. 영국 의회의 허가 없이는 주식 발행이 금지되었다.

 

약 100여 년간 침체기를 겪은 주식회사는 산업혁명을 통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규모 자본조달이 필요한 철도 산업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1844년에 주식회사법, 1856년에 유한책임 법을 넘어서 1862년에는 ‘화사 법’을 통과시켰다. 기업을 설립하고 소유하는 것이 소수의 특권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다. 모든 국민이 누리는
권리로 바뀐 것이다. 이제 기업 설립에 더 이상 정부의 허가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현대 기업의 출생증명서에는 이와 같은 문구가 포함돼있다.

 

“주식투자에서의 최대 손실 금액은 투자한 원금으로 제한한다.”

일본의 경제학자 미즈노 가즈오는 ‘닫힌 공간이었던 지중해 자본주의 파트너십이 무한 공간인 근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주식회사로 이동했다’(미즈노 가즈오 지음,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라고 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푸줏간, 양조장, 빵집은 소수이지만, 현대의 빵 공장에는 수 천, 수 만에 달하는 직원이 있다. 유한책임 제도에 부정적이었던 스미스의 주장(애덤 스미스는 유한책임에 대해서 “남의 돈을 관리하는 것은 자기 돈 만큼의 주의력은 기대할 수 없다. 남의 돈을 관리하는 주식회사에서는 낭비가 빈번할 것이다.”고 했다.)을 따랐다면, 지금쯤 대부분의 기업이나 공장의 규모는 중세나 근대 시대에 마물렀을 것이다.

 

미즈노 가즈오는 말한다. “주식회사가 급속히 성장한 이유는 거액의 자본을 조달해야 했던 기업가와 높은 수익을 추구하던 자본가가 주식회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유한책임의 부정적인 요인보다 책임 분산의 장점(제한된 리스크와 무제한의 수익)이 더 부각된 것이다. 독일의 경제, 정치학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유한책임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은 제도적 혁신에 비하면 작은 이벤트’라고 여겼다.(카를 마르크스 혁신의 결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그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자본가를 제거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본가가 제거된 세상, 평등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전환점인 것이다.) 아마도 유한책임은 우리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한 제도가 아닐까. 필요에 의한 자생적 질서, 유한책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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