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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의 <자본의 방식> 19]중앙은행의 탄생

2020-06-29 17:45

글 : 유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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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걷는 것보다 쉬운 것이 지폐를 찍어내는 일이다. 지급이 보장되지 않는 통화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는 정부를 통제하는 방법은 새로운 은행이 민간의 지시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
_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금융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재무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0년 12월 의회에 『국가은행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a National Bank)』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는 중앙은행을 설립하고자 하는 해밀턴의 강력한 의지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은행이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은행’이라는 점이다. 그는 지분의 대부분(80%)을 자본가가 소유하고, 20%만을 정부가 소유한다고 적었다. 그에 따라 은행 이사들도 외부인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해밀턴은 영국의 농업과 상업, 제조업에서 은행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영국의 영란은행처럼 민간은행을 고집한 이유는 미국이라는 넓은 영토에 자리 잡은 자본가들의 힘을 미국의 성장을 위해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해밀턴과 정치적 대립 각을 세웠던 토머스 제퍼슨은 작은 중앙정부를 원했다. 소수의 자본가가 세운 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영국에서 벗어난 미국인의 자유를 또다시 옥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퍼슨은 “민간은행에게 화폐 발행의 권한을 맡기면, 이들은 통화팽창을 우선하고 통화 긴축으로 국민의 재산을 가로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종이 화폐는 돈이 아니라 돈의 유령이었다. 프랑스 대사 시절 종이돈으로 프랑스를 경제 파탄으로 몰고간 존 로(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였다. 지폐의 남발과 투기확대의 결과 경제공황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때문에 사직하여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가난하게 죽었다.)가 미국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혹자는 해밀턴과 제퍼슨의 대립을 두고 상공업 위주의 북부 자본주의 세력과 남부의 농장주 출신의 싸움이라고 부른다. 조지 워싱턴은 영국처럼 부강해지려면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해밀턴의 주장에 마음이 끌렸다. 1791년, 중앙은행 설립 초기 자본금 규모는 1천만 달러였다. 당시 미국 전체 은행의 자본금(약 200만 달러)의 5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수명은 아쉽게도 20년이었다. 20년이라는 기한 만료가 다가오자 제퍼슨의 정치적 후계자 제임스 매디슨(미국의 4대 대통령)은 연장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정을 곧 후회한다. 미·영 전쟁이 한창이던 1814년에는 영국군에게 워싱턴 D.C를 점령당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중앙은행이 없는 불편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전쟁 비용을 조달하는 것과 전쟁으로 늘어난 빚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필요했다. 전쟁이 끝나자 매디슨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중앙은행을 설립(두번째 중앙은행은 자본금은 1차 때보다 크게 확대된 3,500만 달러였다.)하는 것이었다.

 

해밀턴과 제퍼슨의 대립은 1828년에 당선된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을 기점으로 다시 부활했다. 잭슨은 부자와 중앙은행을 대변하는 모두를 대중의 적으로 간주했다. 재선에 성공한 잭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다행히도 은행이 문 닫는 시점은 4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이후 중앙은행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고금을 모조리 인출해서 23개의 주 은행으로 옮겨버렸다. 돈이 빠져나가자 껍데기만 남은 중앙은행의 수장 니콜라스 비들은 빌려 간 돈을 모두 갚을 것을 요구했다. 비들 입장에서는 은행 영업이 축소되자 대출금 회수가 불가피했다. 미국 최대 은행이 시중에 풀린 대출금을 회수되자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의 요구에 잭슨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지금 물러나면 앞으로는 은행에 무릎 꿇지 않고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결국 그는 중앙은행의 연장을 막았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한동안 미국에서 사라졌던 중앙은행은 1907년 공황을 거치면서 다시 설립되었다. 공황의 원인(지나친 통화긴축,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등)은 다양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투기 사건이었다. 당시 투기꾼들은 유나이티드 구리회사 주가조작을 하려다가 실패했는데, 이들은 니커보커사(뉴욕의 주요 신탁회사)의 총재 찰스 바니와 긴밀한 관계였다. 그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불안해진 미국은행들은 니커보커 수표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맡긴 돈을 인출하려는 예금자가 줄을 잇고, 예금인출 사태가 미국 경제를 패닉으로 이끌었다. 도미노 파장 속에 농민은 농작물을 팔지 못했고, 노동자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뉴욕 신탁회사에 있던 예치금의 절반가량은 각 가정의 옷장 속으로 숨어버렸고, 약 9개월 동안 미대륙 전역에서는 8천여 개의 기업이 도산했다.

 

이때 J. P. 모건이 나섰다. 그는 뉴욕 금융계의 거물들을 자신의 도서관에 가둬놓고 신탁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당시 2,500만 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6.8억 달러)가 넘는 금액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J. P. 모건 자신의 권위로 반강제적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 상원 의원 넬슨 앨드리치는 “우리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J. P. 모건을 찾을 수는 없다”고 했다. 미 의회는 이에 발맞춰 국가 통화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1910년 11월 정부 관계자와 모건을 포함한 월가의 거물들은 제킬 섬(J. P. 모건 사유지)에서 중앙은행의 구조를 설계했다. 총 12개 지역별 중앙은행을 설치해서 통화를 공급하고, 은행을 통제하는 이사회에 민간 은행가를 앉히기로 했다. 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연준이 이자를 받고 달러를 빌려주는 방식도 주요 안건(현재까지도 12개 연방은행에 출자한 민간은행의 리스트는 정확히 알려진바 없다)이었다. 이후 몇 번의 손질 과정을 거쳐서 1913년 12월, 당시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연방준비제도 법(Federal Reserve System Act)에 최종 서명했고, 미국의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미국의 중앙은행제도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탄생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신용을 부여받은 집단이 탄생한 순간이다. 찰스 린드버그 의원은 하원에서 “국민들은 지금 당장 느끼지 못하겠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독립선언을 해야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소수의 민간 은행 출자로 설립된 이 조직의 탄생을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무수히 많은 정치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제1, 2차 중앙은행을 막아 섰지만, 1907년의 뉴욕에서 벌어진 공황은 제3차 중앙은행 설립을 허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은행 법안을 통과시킨 미국의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준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다. “이제 이 나라는 소수에 의해 좌우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연방준비제도 법에 서명한 것이다.” 연준은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금융자본가의 탐욕일까? 아니면 시장을 좀 더 안정시키려는 그들의 고집일까? 분명한 것은 중앙은행 설립으로 특별한 수혜를 받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이들에 대한 음모론은 시장을 떠돌고 있다.

 

 

이 글은 <자본의 방식>(행복우물출판사)의 일부분입니다.

 

경제 큐레이터 유기선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금융시장과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 ‘돈과 자본이란 어디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금융의 역사와 철학, 금융을 움직이는 심리 등에 관한 글을 썼다. 그 중 인사이트가 있는 ‘자본과 관련된 48가지 이야기’를 추려서 쉽게 단순화했다. 저자가 집필한 <자본의 방식>은 ‘2019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사업’ 선정작품으로 당선되었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있지만 먼 듯한 이야기, 돈과 자본에 대한 통찰력있는 큐레이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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