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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앞북 어쩌다 뒷북 15]다시 또 유럽! 바이러스가 기승입니다만.

윤재웅의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는 길 - 유럽 인문 산책>

2020-04-01 16:19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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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 준다고들 하지만 편집부로 배송되는 책이 여전히 많다. 온라인 서점에 가보면 매일 쏟아지는 책이 부지기수다. 세상에 던져진 소통과 공감의 노력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건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다. 가능하면 하루 걸러 한 번씩이라도 새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신간을 앞서 소개하니 '앞북'이다. 손이 빌 때마다 집 서가에, 회사 책꽂이에 쌓인 밀린 책들도 소개하려 한다. 뒤에 읽는 책이니 '뒷북'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아니면, 곧 다시 떠날 수 있다는 희망 고문?

해외는커녕 국내여행도 맘먹기 쉽지 않은 요즘, 굳이 여행책을 집어드는 심보는 대충 그렇다. 더구나 유럽 아닌가. 안 가본 나라가 천지삐까리여도 내게 유럽은 늘 먼저 가보고 싶은 곳, 힘 닿는 한 구석구석 속살을 훑어보고 싶은 곳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재앙이 유난히 거센 마당에 유럽에 관한 책, 윤재웅의 <유럽 인문 산책>이 출간됐다. 지금은 가보지 못할 곳이라 더 간절해진 유럽. 저자는 팬데믹이 사라지고 좋은 날이 오면 그곳을 느리게 걷고 깊게 사유하라고 권한다. 재택근무 또는 방콕생활에 유용한 대리만족 도구다.

 

저자 윤재웅은 국문학자다. 아름다운 우리글로 세상을 그려내기 좋아하는 학자겸 인생여행자인 그 역시 유럽을 몹시 사랑하는 듯하다.  감각을 깨우는 독특한 시선과 낱말들로 예술의 도시를 거닌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살리나섬에서 시의 아름다움과 시인 네루다의 흔적을 기록한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빛을 아랍문화원의 조리개에서 찾아낸다. 또는 위대한 로마의 건축물 판테온에서 석굴암의 기저를 발견하고, 르코르뷔지에의 필로티에서 한국 빌라촌의 안타까움을 고찰해낸다. 일상을 파고드는 문학적 성찰, 지금 우리의 삶에 필요한 인문학적 사유를 유럽 산책이라는 형식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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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롯데관광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불행히도 지금 코로나19 폐해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된 이탈리아, 우리가 사랑하는 성전의 도시 로마를 그는 이렇게 쓴다.  

'(...)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폐허를 거닐다가 문득 발견한 풀꽃들. 변함없이 정확한 땅의 음악들. 색깔과 향기와 벌 나비 붕붕거리는 소리의 향연. 시인 정지용이 <향수>에서 노래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같은 수수한 자태 뒤엔 또 얼마나 많은 풀씨, 꽃씨의 음표들이 태어났겠는지요. 찬란한 로마의 영광보다 작고 하잘것없는 생명이지만 세세생생 거듭해 살아가는 오묘한 힘입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산티아고길 순례도 빠지지 않는다. 낯선 구도의 길에서 그는 낯설지 않은 인류의 영혼을 만난다.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별이 빛나는 들판'에 도착했습니다. 산티아고의 길. 이 길은 종교만의 길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길이요, 유럽에서 살다가 수많은 영혼을 만나는 길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리어 솟는 인류의 간절한 소망을 생각하는 길, 듣고 보고 느끼는 체험의 길이며, 발견하고 수긍하고 질문하는 공부의 길이기도 합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탐방 소감도 재미있다. 누구나 해봤음직한 시간에 대한 단상과 상념이 그곳에선 더 특별하다.

'(...) 오르세 미술관에 오니 작품 감상보다 시간과 시계에 대한 사념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저는 커다란 시계 뒤편 그늘에 서서 창밖의 센강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는 중입니다. 기계장치에 지배당하지 않는 순수한 질적 시간말입니다. 촌음을 아껴가며 질주하는 양적 시간의 나라에서 저는 이방인처럼 추방될지도 모르지요,(...)'

 

그뿐인가. 저자의 시선에선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도 좀더 특별하다. 이 조형물은 한 개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가장 자주 보는 입구의 큰 유리 피라미드, 그 아래에 숨겨진 피라미드 그리고 다시 그들을 받치는 작은 피라미드 총 세 개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이 작품의 연쇄성이 뿜어내는 수학의 역동적 아름다움과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문화유산의 재창조가 지닌 뜻을 음미할 수 있다고.

 

바다 위의 아름다운 수도원, 몽생미셸에선 호화로운 성의 외관보다 돌바닥에 새겨진 숫자들을 살핀다. 하루 일한 양에 따라 급여를 주기 때문에 자기가 나른 돌에 숫자를 새겨 나룻배에 실어 보냈다는 노동자들의 손길이 눈에 띈 것. 저자의 안내를 받으면 여행서에 흔하게 실리는 관광지 설명과는 다른 유럽 현지 곳곳의 일상적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유명한 장소, 건물, 작품 앞에 서면 그 명성과 아름다운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나만의 감상을 남기고 싶다면 시간을 들여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산책 내내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될까 우려스럽다.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적인 한, 아름다운 유럽의 유산도 자연도 무의미하다. 하루 빨리 바이러스 공포가 걷히고 예전 모습으로 회복되길, 다시 유럽에 도달할 때는 더 깊은 영감으로 산책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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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인문 산책> 윤재웅. 은행나무.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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