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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앞북 어쩌다 뒷북 9]물때와 바람, 물길과 갯벌을 알면 어촌의 속살이 보인다

김준 박사 바다 연작 <바닷마을 인문학>

2020-02-07 15:51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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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 준다고들 하지만 편집부로 배송되는 책이 여전히 많다. 온라인 서점에 가보면 매일 쏟아지는 책이 더 부지기수다. 세상에 던져진 소통과 공감의 노력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건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다. 가능하면 날마다 새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신간을 앞서 소개하니 '앞북'이다. 손이 빌 때마다 집 서가에, 회사 책꽂이에 쌓인 밀린 책들도 소개하려 한다. 뒤에 읽는 책이니 '뒷북'이다. '어쩌다 뒷북'을 몇 차례 써오고 있었다. 내공이 일천해 간판만 바꾸고 거기 업혀가기로 했다.

 

23쪽 죽방렴.JPG

     사진 / 따비

 

태어나기로는 시골 역전 마을이 뿌리였지만 내내 서울 샌님으로 자랐다. 시골체험(?)이라고는 초등학교 방학이면 줄곧 내려가 있던 외가 집성촌이 전부였다. 그것도 깊고 깊은 산골과는 거리가 먼 서울 근방 자그마한 농촌이었으니, 내게선 구수한 촌 사람 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억울하게도 본성과 무관한 '서울깍쟁이' 소릴 간혹 듣고 자랐을 뿐이다. 

 

하물며 어촌은 더 먼 얘기다. 서울을 중심으로 횡으로 동해와 서해를 나들이 삼아 드나들었을 뿐, 바다와 어촌의 삶은 평생토록 제대로 체험한 바가 없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절친의 아버지가 울진 어디쯤에서 죽방어장을 하고, 오래된 사회후배 한 놈이 속초에서 양조장을 하고, 대학 후배 한 친구가 주문진 인근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옛 직장동료가 서해 어느 바닷가에 주말별장을 마련했다는 정도가 어촌과의 인연 전부 아니던가. 내겐 남들 주변엔 대개 있어 보이는 뱃사람 하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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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선 DB 

 

<바닷마을 인문학>(김준, 따비, 2020)을 만난 건, 그런 내게 꽤 신선한 사건이다. 20여년 전 소설가 한창훈의 <홍합>을 처음 접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도 바다냄새가 물씬 나는 듯하다. 서울촌놈인 내게 바다는 늘 쉬운 듯 어려운 상대였다. 경외의 대상이라고 하면 맞을 듯 싶은데, 여기엔 특히 물을 무서워하고 그 탓에 수영도 못하는 핸디캡도 결정적이다. 책으로나마 오랫만에 접하는 바다와 사람들 이야기는, 그래서 더 반갑다. 더구나 '섬 박사'가 쉽게 풀어주는 이야기 보따리이니 쉬 읽히고 흥미롭다.

 

<바닷마을 인문학>은 오랫동안 갯벌과 바다, 섬과 어촌을 찾고 그 가치를 기록해온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박사의 신작이다. 김 박사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물때와 바람, 물길과 갯벌을 들었다.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일구고 조작할 수 있는 농사와 달리, 갯일은 순전히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바람과 파도를 읽고 때로는 맞서며 어민과 해녀가 물고기를 잡고 해초를 뜯었다. 바다를 둘러싼 자연은 바닷마을만의 모습, 삶의 양식, 제도,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그는 말한다. 물때를 살펴 낙지를 잡을 것인가 조개를 캘 것인가, 물질을 할 것인가, 그물을 놓을 것인가 아니면 낚시를 할 것인가를 정하는 바다 어촌사람들의 삶. 행락객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숨은 지혜가 바다의 냄새 안에 녹아 있다.

 
책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다는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 바다에 금을 긋고 경계를 표시할 수도 없고 자유롭게 오가는 물고기들을 가둬둘 수도 없다. 바닷마을의 독특한 문화는 이로 인해 생겼다. 바다와 갯벌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이 가꾸는 마을어장이다. 논밭에서 물 주고 김매듯 함께 갯닦이를 하고 갯밭을 가꾸고 수확한 것을 나눈다. 함께 모여 제를 지내며 물고기를 부르고 조개를 부른다.

 

전통적인 어업은 이런 환경과 역사 속에서 전해지고 또 이어졌다. 맨손어업, 정치망어업, 양식어업, 해녀어업, 천일염은 모두 마을어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의 모든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이지만, 수심에 따라, 갯벌의 종류에 따라 그 모양은 다 다르다. 환경이 그곳에서 나는 산물을 결정하고, 그 산물을 따라 마을의 정체성이 정해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김 박사는 어촌의 지속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바다와 갯벌은 사람 이전에 물고기와 해초, 물새와 조개들의 터전이다. 인간에게 불편하다 하여 물길을 막고 바람길을 튼 결과 이제 우리 바다에서 만나지 못하는 물고기가 늘어나고 있다. 한 번 망가진 바다와 갯벌을 복원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복원이 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도시 소비자야 연안에서 잡은 명태가 없으면 원양에서 잡거나 수입한 명태를 먹는다지만, 명태가 없는 바다에서 어민들은 어찌 살아갈 것인가.


자연적 시간과 바다·갯벌이라는 공간이 사라진다면 어촌의 정체성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산업으로서 수산업은 지속될 수 있고, 밥상에 생선도 변함없이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어촌, 어민들의 삶이 녹아 있는 어촌은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마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전통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를 어민들에게만 지켜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웅변한다. 도시민, 시민사회도 함께 나서야 한다고, 그 길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촌의 가치에 공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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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따비 제공

 

농촌으로 귀촌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서는 많지만 어촌과 어민의 삶을 이야기하는 인문서는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 책이 어촌으로 귀촌하려는 사람을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도시민에게 어촌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이 어촌의 가치에, 갯벌의 가치에, 섬마을의 가치에 공감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골목 시장에서 마주치는 바지락이, 마트에서 마주하는 김이 전과 다르게 보이길 희망한다. 바닷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어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시선이, 따뜻한 한마디가 어민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고, 어촌을 변화시킬 수도 있으니까.

 

바다와 섬을 사랑하는 김 박사는,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어쩌다 놀러 와서 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갯밭을 망쳐버리는 외부 손님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어촌 사람들을 속마음을 대변한다.. 바닷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바닷마을을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도 바다를, 갯벌을 알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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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마을 인문학> 김준, 따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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