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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봉 이계진의 산촌일기 레트로_6]어설픈 농사꾼, 오늘도 아버지 몸짓을 흉내내고 있다

2019-12-27 12:09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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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 할 때는 왼손과 오른손을 교대로 써야 한다... 남들이 도끼질이나 낫질 할 때는 멀리 떨어져 있어라... 힘든 고개가 나오면 쉬었다 가라. 솜이 꼴깍 넘어가도록 죽어라 넘는 게 뭐 대수냐. 어리석다... 아마추어 농사꾼은 어린시절에 본 아버지를 회상하며 웃고 울고 참는다. 천상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의 말씀을 꾸역꾸역 곱씹고, 아버지의 일할 때 몸짓을 흉내내어 본다. 아버지가 그리우면 그리워질수록 아마추어 농사꾼도 점점 실력이 느는 듯도 한데... 실력은 고사하고 실속 없이 그저 욕심만 늘어난 건 아닐지... . 오뉴월 밭에 나온 관봉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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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강릉농업학교를 졸업하신 아버지는 공무를 보지 않으시는 주말이나 퇴근 후에는  틈틈이 농사일을 하셨는데, 학교에서 배운 농법으로 농사를 시범 보이셨다. 나는 지금 이곳 산골짜기에서 농사일을 하며, 내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아버지의 몸짓을 재현할 때가 많음을 안다.

“작물은 줄을 맞춰 심어야 한다. 그래야 비배관리(肥培管理)가 쉽고 통풍이 잘 된다. 그리고 작물을 심을 때는 너희 엄마처럼 촘촘히 심으면 웃자라서 소득이 적단다. 간격을 좀 떼어서 심어야 열매가 많이 달리지. 모는 뿌리를 갖추어 심어야 하지만 들깨 모종은 대가리를 갖추어 심어야 한다. 배추가 빨리 안 자랄 때는 맑은 물에 요소를 약간 타서 잎사귀에 물 주듯 뿌리면 빨리 큰단다.”

그런 말씀뿐이 아니었다.

“남들이 낫질이나 도끼질을 할 때는 멀찌가니 떨어져 있어라. 일을 할 때는 왼손과 오른손을 교대로 써야 한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고개를 만나면 고개 밑에서 쉬어서 넘어가는 것이 좋지. 한국 사람은 내친김에 죽어라 고개를 넘고 나서 쉴 생각으로 숨이 꼴딱 넘어가도록 무리를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고개 밑에서 쉬며 힘을 여축한 후 여유 있게 고개를 넘는다더라. 어느 편이 현명하겠느냐?”
 
욕심껏 심어보는 마음은...
 
올해도 새해 농사가 시작됐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몸짓을 흉내내며 부드러운 흙살을 밟고 서서 씩씩한 아마추어 농군이 된다. 내가 이곳, 화계산 산골에서 하고 있는 농사는 ‘전업농’이 아닌 ‘취미농’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해두고 싶다.
 
그러나 어떤 때는 철없는 장난을 하듯 이어지는 낭만의 이야기도 있겠지만, 또 어떤 때는 내가 정말 ‘전업농’ 같은 착각으로 이야기할 때도 있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올해도 봄 햇살이 좋은 4월 초순 어느 날, 작은 술잔치인 ‘시농제’를 시작으로 봄 부 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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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묻는다. ‘대체 뭘 심으세요?’ 그런 질문에 손을 꼽으며 작물의 가짓수를 대다가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글쎄요…… 고추, 상추, 쑥갓, 감자, 고구마, 참깨, 들깨, 당근, 오이, 가지, 호박, 수박, 참외, 옥수수, 파, 마늘, 부추, 토마토, 땅콩, 강낭콩, 무, 배추, 갓, 참나물, 도라지, 더덕, 미나리…… 대충만 쳐봐도 한 스물댓 가지가 넘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심어요?”

사실은 자세히 꼽아보면 서른 가지도 넘는다. 욕심을 있는 대로 부려 심고 가꾸는 취미농사의 특성일 것이다. (올해 나는 상추, 쑥갓, 감자, 오이, 옥수수, 고구마, 토마토, 호박 등과 함께 마를 시험재배할 생각이다. 술에 시달려 상한 위장에 마를 갈아먹으면 아주 좋다는 말을 듣고 이미 수 개월간 개인 임상실험을 끝낸 터라 마 씨를 구해 집중 재배할 계획이다. 마 재배는 처음이라서 농사일지에도 없다.

 
새로 배워야 한다. 잘 될까 모르겠다.  신나는 농사일을 시작한 뒤 초기 3~4년 동안은 ‘농사일지’를 열심히 썼다. 농사일 지에는 언제 거름을 펐고, 그 값은 얼마이고, 무엇을 심었고, 김매기는 언제 했는지는 물론 뒷산에서 두릅 따는 시기, 야생자두(와일드 플럼) 따서 술 담그는 시기, 약쑥을 뜯어 말리는 시기, 심지어는 개복숭아를 따서 효소를 만드는 적기까지 모두 기록돼 있다.
 
1998년 4월, 일 년 정도 워밍업을 한 후에 본격(?) 농사가 시작된 때의 농사일지는 지금 보아도 과욕이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다. 미소가 지어진다.
4월 4일 토요일, 겨울을 난 고춧대를 뽑아 태우고, 밭을 말끔히 정리했다. 4월 11일 토요일, 2백만 원을 주고 경운기를 샀다. 자가용인 셈이다. 나와 이웃이 되겠다고 어정쩡하게 반쯤 이사를 온 윗집과 13:7로 어울러 샀다. 운전법을 빨리 익혀야 하는데……. 때 이른 앞산 산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능수벚꽃, 앵두, 개복숭아, 백목련, 자목련이 모두 덩달아 피어나서 난리다. 지금 화계산 산골은 꽃잔치가 흥겹다.
 
4월 19일 일요일, 호박을 60포기쯤 심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장님이 내다 팔 거 냐며 웃었다.) 상추, 쑥갓, 시금치, 파, 열무, 배추, 당근, 래디시(Radish, 일본식 이 름은 ‘적환’임), 치커리, 도라지 등 파종하다. 옥수수 2차 심다. (옥수수를 오래 즐 기려면 매주 시차를 두고 심어야 한다.)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 ‘월든’ 호숫가에서 농사를 지었던 데이빗 소로의 기록인 《월든》에도 농사일지 대목이 나온다.
내가 첫해에 농사에 들인 비용은 용구 및 종자값과 품삯 등 모두 14달러 72.5센트 였다. 옥수수 씨앗은 그냥 얻었다. 많은 양을 심는 것이 아니라면 씨앗값은 별 문제 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얻은 수확은 강낭콩이 12부셀, 감자가 18부셀, 그리고 약간의 완두콩과 옥수수였다. 노란 옥수수와 무는 철을 놓쳐 거둬들일 만한 게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농사로 얻은 수입은 모두 23달러 44센트였다.

‘소로’나 ‘나’나 우리는 기행 혹은 취미로 즐기는 농사지만, 육칠 남매를 먹여야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심고 가꾼다면 그 마음은 얼마나 절박할까. 시골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봉급으로 7남매의 학비를 대기에 바쁘셨고 어머니 는 우리를 굶기지 않으려고 몇 뙈기의 땅을 붙잡고 울며, 울며 세월을 보내셨으니…… 가엾다.

이제 6월이 온다.
배고프던 유년기를 보낸 우리의 6월은 나의 어머니에게는 뼈아픈 6.25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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