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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그토록 장엄한 그 겨울의 찻집

2019-10-07 11:00

글 : 이연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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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저공원에 가면 오래 전 시골 친척집 동네로 가던 길 냄새가 난다. 붉은 색 흙길이었던 것도 그 때를 떠올리게 했고 길가에 깔린 뾰족뾰족한 흰 돌들 역시 그 때의 것과 같았다. 기억은 편집되는 것이라고 하던가? 하여 사실상 내가 기억하는 상황들이 그 시점과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그 길에는 오빠와 다른 누군가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동생이었는지 엄마였는지 아니면 사촌 중 하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내 기억 속의 그 길은 경의선 기차를 타고 일산역에 내려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는 여정에 있었다.
 
이 곳으로 이사 온 지 삼년이 되도록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가 꽤 많았다. 지난봄에 처음 안면(?)을 텄던 호수공원 꽃 박람회가 그랬고 문화센터 친구들과 느닷없는 산책길에 나섰던 심학산 역시 첫걸음이었다. 우리 집이 있는 구역은 팔차선 도로를 앞뒤로 끼고 있어 섬 같은 모양인데 성저공원은 앞 쪽 넓은 길 건너에 있었다. 단지마다 아담한 공원들을 하나씩 끼고 있었으므로 구태여 길 까지 건너 그 곳에 갈 필요는 없어 지나다니면서 바라만 보던 곳이었다.
 
작년 말에 입양한 강아지는 이전에 얼결에 키우던 반려견들과는 달리 무척 진지하게 준비를 해서 데려온 터였다.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지기도 했고 따라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경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지능이 높고 주인에게 감정이입을 잘하며 무엇보다 털이 많이 빠지지 않아 노인 가정에서 선호한다는 종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 온 이후 이 강아지, 다른 건 다 좋은데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배변습관이 제멋대로다. 어떻게 보면 배변습관이 잘 못 든 것이 아니라 뭔가 불만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여 유튜브와 정보서 등으로 공부를 했는데 결론은 산책을 자주 하게 해주어 기분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날마다 새벽 여섯시 삼십분에 산책을 나서기 시작한 것이 벌써 두 달째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미세먼지 마를 날 없는 곳에서 정작 산책할 수 있는 날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할 수 있을 때라도 하자, 는 생각이었다.
 
아침이면 휴대폰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강아지가 방문을 긁어대는 통에 이불을 차고 일어나야 한다. 부수수한 머리에 캡을 눌러쓰고 푸석한 얼굴은 자외선 마스크로 가리고 집을 나선다. 정문을 나선 후 아파트 블록을 크게 돌아 위 쪽 육교를 통해 팔차선 도로를 건너 성저 공원에 간다.
 
초입에는 배드민턴 동호회 사람들이 매일 유쾌한 함성을 지르며 운동을 한다. 공원 끝 쪽으로 가면 야트막한 동산으로 진입하는 돌계단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촉촉한 숲 향기에 아늑하고 다정했던 아버지 고향생각이 난다. 옛 생각을 하다가 작은 돌을 밟아 미끄러진 것도 있었다. 회색 운동화에 붉은 흙물이 들었다. 다친 곳도 없었는데 공연히 눈물이 났다. 아버지도 보고 싶고 오래 전 그 시간들이 그리워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추석 연휴에는 동호회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고 간 다음 날에는 언덕길로 올라가는 초입에 진입금지 줄이 쳐 있었다.
며칠 후 언덕길을 올라 정자 앞에 갔을 때 바람에 쓰러진 굵직한 소나무가 차곡차곡 잘려 쌓여있었다.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으로 내리막길로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른 꽃 거얼린 창가에 앉아...”
소리를 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저 아래쪽에서 숲길로 들어서는 한 사람이 보였다. 검은 점퍼를 입고 날개처럼 벌린 양 팔은 영화 아마데우스를 연상하게 했다, 손에는 검은 장갑이 끼어져 있었다. 멜로디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그 남자 목소리였으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노래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었다. 가슴이 시렸던 용필오빠의 목소리와는 또 다른 그토록 장엄한 그 겨울의 찻집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의 걸음은 매우 느렸으나 내가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내 옆을 스쳐 저 만큼 가고 있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앞에서 다가오는 모든 물체를 향해 경계태세를 하는 우리 강아지조차 어쩐 일인지 조용했다. 맨 꼭대기 운동 기구들이 있는 터의 모퉁이를 지나 남자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숲속을 감돌고 있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안다, 그대 나의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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