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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리더 이상문의 어쩌다 뒷북 6]혀에 올려놓고 재밌게 굴려보는, 인생의 이치

박영률의 《채근담 하룻말》

2019-09-23 17:13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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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제백석


≪채근담≫은 명나라 사람 홍응명이 알려진 글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함께 엮은 책이다. 당대를 지배한 세계관, 곧 유가의 생각, 불가의 생각 그리고 도가의 생각이 모두 담겼다. 이 책을 먼저 옮긴 조지훈은 ‘현대인의 융통성 있는 생활 윤리서’, 만해 한용운은 ‘조선 정신계 수양의 거울’, 김원중은 ‘수신과 처세의 고전’이라 평한 책이다.
 
‘채근담(菜根譚)’이란 나물 채, 뿌리 근, 말씀 담, 곧 나물뿌리 이야기란 뜻이다. 나물의 뿌리는 질기고 맛도 써서 보통 버린다. 그런데 유가에선 ‘나물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저자 홍응명은 입신양명에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가 실제로 나물뿌리로 장아찌를 담아 밥을 먹고 손님을 대접했다. 뒷날 사람들은 채근담을 ‘나물뿌리를 씹는 느낌, 별 볼일 없고 거칠고 질기지만 가만히 씹다보면 차츰 맛이 깊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이야기’라고 풀이했다.
 
유가, 불가, 도가의 세계관을 다 담은 책이니 세상을 보는 서너 가지 시선을 주의 깊게 비교하며 살펴보아야 한다. 옮긴이 박영률이 말했듯, 인간이 태어나 죽는 과정을 도가는 ‘노닌다’ 했고 불가는 ‘씻는다’ 했지만 유가는 ‘나아진다’고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홍응명은 이를 ‘건너간다’고 본 듯하다고 옮긴이는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차이는 큰듯하지만 결국 모두 하나를 가리킨다고 그는 생각한다.
 
‘… (도가, 불가, 유가의 해석) 차이가 크지만 모두 하나를 가리킨다. 인간의 양 끝, 본능과 문화 사이에서 중심을 찾는 일이다. 본능은 욕망을 일으키고 문화는 글자로 못 박는다. 본능은 도전하지만 문화는 지킨다. 생명과 생활을 만드는 이 둘의 충돌, 그 현장은 곧 세계가 된 나다. 그러므로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하루의 삶과 일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옮긴이 서문 중)
 
‘엄지 척’ 맛집을 소개할 때,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본 사람은 없다고 떠버리는 소릴 많이 들었다. 워낙 귀에 익은 《채근담》 같은 책 경우는 어떨까. 한 번쯤 들여다본 사람은 많아도 두 번 이상 읽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은데, 담긴 글이 지레 어렵다고 속단하거나 진짜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또한 편견일지 모르나, 고전은 대개 어렵다는 편견과 중압감을 저절로 생기게 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 세상에 나온 《채근담 하룻말》은 쉽고 편하다. 어쩌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아주 친근한 ‘고전사용설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원전의 한자들은 모두 책 끝자락에 몰아두고 주옥같은 글을 쉬운 뜻의 한글로만 풀었다. 주옥같다는 게 화려하거나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투였다면 옮긴이의 수고는 헛된 도로였을 터, 책은 제목이 그렇듯 소박한 하룻말을 내놓고 조용히 독자의 명심을 기다린다.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때 한 편씩 읽고, 마음을 닦고 반성하고, 하루를 일생처럼 일생을 하루처럼 겸손하게 살아가는 일. 《채근담 하룻말》은 그렇게 365일 함께할 수행의 벗이요 스승이다.
 
‘… (채근담 하룻말)은 하루에 한 편씩만 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 편을 넘으면 달이 해를 만나듯, 눈이 비를 만나듯 느낌이 사라진다. 글자를 놓고 맞다 틀리다 너무 따지지 않길 바란다. 글자는 시간을 모른다. 글자를 따지다 보면 세월이 아쉬워진다. 다만 우리말로 입에 넣기 좋은 자수를 찾으려 노력했으니 혀 위에 올려놓고 재미있게 굴려 보기 바란다….’(옮긴이 서문 중)
 
출간 몇 주 전, 모처럼 그와의 막걸리 교유에서 고기녹두전이 너무 달았다. 마시고 삼키기에 바쁜 내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직 먼 희망사항인 줄로만 알았다. 달 바뀌기도 전에 직접 건네주는 책을 받으며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그날은 차마 기름진 녹두전을 삼킬 수 없어 아주 강한 낙지초무침으로 혀를 고문했지만, 그의 열정이 보여준 따끔한 자극만은 못했다.
 
채근담은 ‘소확행의 경전’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생활 속의 실천을 구하는 귀한 명언집이 수개월 간 밤낮으로 공부와 탁마를 거듭한 한 사람의 수고 끝에 세상에 나왔다. 수고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선물 받은 보답으로, 지금부터 늘 옆에 끼고 있기로 했다. 권유대로 하루에 한 편씩 하룻말을 읽어야 하는데, 실은 그게 누구에게나 가장 큰 걱정일 듯하다. 먼저 다 훑어보거나 중간중간 훔쳐볼 게 뻔하지 않은가.
 
하나, 욕심내고 재촉해봐야 불안을 저울질하는 꼴이 될 뿐. 자이언티가 노래 꺼내 먹듯, 오늘부터 채근담 하룻말을 한 편씩 꺼내 먹기로 했다. 지금은 초판 발행일로부터 이레가 지난 날. 《채근담 하룻말》 7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
뜻은 부서지고,
머리는 캄캄해지고,
은혜가 비참해지고,
마음엔 때가 타서
조만간 후회한다.
욕심내지 않음을 보배로 삼은 까닭에
옛사람들은
일생을 건널 수 있었다.‘


세 번을 연거푸 읽고 곱씹고 나니,
일생 중 하루는 너끈히 건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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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하룻말>> 홍응명 짓고 제백석 그리고 박영률 옮기다, 지식공작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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