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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 여름밤의 별 아니었을까?

2019-09-12 17:00

글 : 이연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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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주인은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과정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뭐, 적당히 햇빛을 볼 수 있으면 되고, 바람도 잘 통하면 좋죠. 물을 줄 때는 충분히 흠씬 주면 되요. 간단하잖아요?”
 
지난봄에 사들였던 식물들 중 온전한 것은 다육이 화분 다섯 개 뿐이다. 제라늄, 여섯 개 화분 중에서 겨우 두 줄기 꽃대가 힘겹게 올라와 있고 유칼립투스, 잎이 바싹 말라가며 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다. 수국, 이미 오래전에 꽃은 졌고 잎은 새로 나오는 듯 했으나 그 조차 물 준 다음날이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맥없이 쳐진다.
 
허브화분 몇 개도 비실비실하더니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하기야 매일 35도를 오르내리는 기온 속에서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잎이 파릇파릇 윤기가 흐른다면 그 것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한 살이 된 우리 집 푸들이가 앞 뒷다리 길게 뻗고 누울 자리만 찾아다니는 것도 첫 생리 후유증이거나 어디가 아파서가 아닌 무지막지한 더위 때문이라고 수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와서 웃옷을 벗었을 때 남편의 몸은 금방 비라도 맞은 것처럼 땀으로 흥건했다. 원래 여름이 이렇게 더웠었냐고 묻는 남편과 마주보며 대답대신 그냥 웃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하철역까지 가는 약 10분 정도를 제외하면 에어컨이 작동되는 실내에서 지내느라 38도의 기온은 동남아 얘기 인줄로 알았을 테니 무리도 아니다.
 
더위에 관한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던 나조차 이번 여름에는 먼저 에어컨을 켜자고 했다. 참을성이 없어진 것인지 실제로 대한민국이 열대화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름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열대야현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 했었다. 해가 지고도 30도에서 꿈쩍을 안 하는 기온을 보면서 방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침실에서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 거실에만 에어컨을 설치한 터라 급기야 이부자리를 끌고 나와 거실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취침예약을 설정해 놓고 잠이 들었다. 남편이나 나나 잠귀가 어둡기로는 서로 만만치 않았는데 에어컨이 꺼진 시점에는 귀신같이 동시에 잠에서 깼다. 앞 뒤 창문을 열어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제 체온에 바닥이 더워지면 차가운 바닥으로 옮겨 가며 자느라 깊은 잠은 애초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에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느라 온 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찌뿌듯했다. 하루 만에 방으로 철수해서도 내 체온으로 데워진 자리를 피해가며 자다가 급기야 침대 아래 바닥에서 잠이 들었던가 보다.
 
“뭐야, 침대에서 떨어진 거야?”
 
아침에 머리맡에 서서 싱글거리며 웃는 남편의 이마에는 벌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90년대 초, 결혼한 지 6년 만에 내 집 장만을 했다. 여섯 번에 걸친 이사의 결과였으니 그 곳이 오층 아파트의 오층인 것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사 한 이듬해 여름에 엄청난 폭염이 왔다. 어지간한 일은 미루고 부득이 내려 가야할 일은 모아서 했다. 냉동실은 온종일 물을 얼리느라 불이 났다. 페트병마다 물을 얼려 하나씩 끌어안고 네 식구가 얼음물을 담은 고무다라에 발을 담그고 베란다를 향해 누웠다.
 
이제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남편과 동시에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누운 자리에서 별이 보였다. 그 순간에는 세 살, 다섯 살이었던 아이들을 데리고 오르내리느라 힘들었던 오층 계단이 까맣게 잊혔다. 그 해 여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좀 더 시원하게 잠 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는 했는데 나는 무더웠던 기억은 없고 거실에 누워서 봤던 여름하늘의 별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여름처럼 올해에도 폭염이 왔었지만 지금은 얼음을 얼릴 필요도 없고 발을 담글 고무 다라도 없다. 앞 뒤 창문 다 열어놓고 맞바람을 맞는 대신 앞 뒤 창문 꼭꼭 잠가두면 에어컨 바람이 실내를 차게 유지해준다. 그럼에도 바닥은 온통 체온으로 덥혀 놓고도 침대에서 떨어지고서야 잠이 드는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그 여름밤의 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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