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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태풍의 기억 '아, 그 여름엔 매미가 있었다'

2019-09-09 15:16

글 : 이연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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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감나무 쓰러졌다!”

바람이 가장 극심할 거라는 오후 두 시부터 잔뜩 긴장이 되어 앞 뒤 베란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삼십년 가까이 되어가는 노후한 아파트인데다 서해안을 타고 상륙하여 북쪽으로 빠져나갈 거라는 태풍의 경로에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전면 유리창 밖을 보면서 생각보다 바람이 거세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뒷베란다 쪽을 살펴보고 다시 돌아왔는데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나무가 옆으로 누워 있었던 것이다.
 
쓰러져 누운 굵직한 감나무는 우리 집 베란다 정면으로 내다보이는 앞 동 화단에 있던 것이었다. 해마다 단감이 꽤나 탐스럽게 열리던 나무였다. 나무에 가려졌던 앞 동의 측면 벽이 드러나자 남편은, 갑자기 앞이 환해진 것 같다고 말하고는 바로 확인하러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들어온 남편은 쓰러진 나무는 뿌리가 뽑힌 게 아니고 밑동이 부러진 거라고 했다. 남편은 TV에서만 보던 태풍 피해를 도시에서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처음이 아니었다. 봤을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겪었던 경험을 남편이 잊었을 리 없다.
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식구가 모두 부산에 살 때 추석을 쇠러 서울에 왔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서울역을 출발한 KTX는 순조롭게 달리고 있었다. 두어 번쯤 자다 깨서 보니 대구를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차가 멈춰 섰다. 태풍의 영향으로 잠시 정차중이라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일 있겠나 싶었다. 차창 밖을 내다 보았다. 밀양역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차체가 덜컹 흔들리는가 싶더니 플랫폼에 조명이 한차례 꺼졌다 다시 켜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내 캄캄해졌다. 그제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기차가 좌우로 꿀렁거렸다. 이러다 기차가 김밥처럼 옆으로 돌돌 말리며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옆에 앉아있던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불안해지면 한자리에 있지 못하는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 칸 뒤 칸으로 왔다 갔다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과 긴장 속에 똑같은 안내멘트만 반복되기를 네 시간 째, 드디어 기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대구 부산 구간에서는 속력이 빠르지 않기는 했지만 그 날은 완행이라도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예정 도착시간보다 여섯 시간이나 지나 내린 부산역 광경은 처참했다. 신호등도 꺼져버린 도심은 전쟁이 훑고 지나간 것 같았다. 한 시간 만에 겨우 택시를 잡아 타고 도착한 집 주변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해운대 수영만 요트 경기장 담장을 넘어 온 시멘트 덩어리들이 아스팔트 위에 제멋대로 나 뒹굴고 있었고 거치대에서 분리된 신호등은 대롱대롱 매달려 괴이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몇몇 세대에는 베란다 유리창이 파손된 경우도 있었으나 우리 집은 방충망이 날아간 것 말고는 무사했다. 그 태풍의 이름은 매미라고 했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해운대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해변 가까이 있어 어느 방향에서나 눈에 띄던 콘도미니엄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건물들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반쯤 가라앉은 채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람선체도 사라졌고 매년 소실되는 모래를 섬진강에서 퍼다 메운다는 해운대 백사장은 어쩐지 예전보다 좁아진 느낌이었다.
 
아침 산책길에 어제의 태풍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보았다. 정문 앞 가로수가 있던 자리 세 곳이 휑했고 도로 옆 화단에는 뿌리 채 뽑힌 소나무가 옆 가로수에 힘겹게 걸쳐 있었다. 부러진 잔가지들과 아파트 지붕을 덮고 있던 낡은 시트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며칠 지나면 청소가 되어 거리는 말끔해질 것이고 몇 명의 사상자가 있었고 얼마의 재산 피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점차 잊힐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 태풍을 만났을 때쯤 오늘의 기억을 이맛살을 찌푸려 가며 기억해낼 수도 있겠다.
“이름이 딩동이었나? 아니 링링이었어, 그 때 참 엄청났었지.”라며 기억을 부풀리게 될지도 모른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은 고요했다. 쓰러진 감나무는 치워지고 없었다. 매미 얘기가 나오면 밀양역에서 흔들리던 기차가 떠오르듯이 링링을 말할 때면 집 앞 감나무가 기억날 것 같다. 이제 올 가을은 오늘처럼 고요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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