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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리더 이상문의 '어쩌다 뒷북' 4]관계과잉의 시대, 사회성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장대익의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2019-09-08 18:42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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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편집부 한 구석에 앉아 주로 하는 일이란 읽기와 쓰기다. 적잖은 책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오지만, 기실은 관심 있는 책을 청하여 받아보는 경우가 더 많다. 보도자료와 함께 일방적으로 전해진 책 포장을 뜯을 때면, 이것도 일종의 관계과잉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홍보를 위해 발송된 책이지만 바람대로 소개될지, 하물며 제대로 읽히기나 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용을 들여 전달된 책이 빛 보지 못한 채 파묻힐 땐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적잖이 부대낀다. 어쩌면, 출판사와 미디어사의 당연한 메커니즘에 대해 죄책감 운운하는 것도 지나친 눈치 보기라는 이유로 관계과잉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관심 있는 책을 고르고 출판사에 직접 책을 주문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다.
 
‘관계과잉’이란 표현은 대화의 영역이 소셜미디어 향으로 변한 뒤부터 줄곧 등장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은 거리와 시간, 비용이라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 반면, 온라인과 소셜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한계가 없다. 사람들은 어느새 지인은 물론 낯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하고 중독되어 간다. 더 많은 ‘친구’ 또는 ‘팔로워’를 원하고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를 경쟁하듯 갈구한다.
 
역설적으로, 현대인은 그래서 더 외로워진다. 적잖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이 지점에 동의한다. 더 나아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인류의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이들도 있다. 가상현실과 실제현실 사이에서 소외될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마약’이라고 칭할 정도로 심각한 중독이 성행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술과 기기의 발달만이 문제일까? SNS를 차단하고 로봇과 AI(인공지능)를 외면하면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사고와 감성과 생활 전반을 파고드는 기술의 진보를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을까? 과연 막으려고 노력이나 할까?
 
때마침 유용한 해석을 보탠 책을 만났다. ‘혼자이고 싶은 외로운 과학자’가 쓴 책 《사회성이 고민입니다》(장대익. 휴머니스트)다. 장대익 교수는 인간의 ‘사회성’ 진화를 오래 연구해온 과학자다. 그는 기술과 기기의 발달이 인간의 외로움, 소심함, 흔들림 등의 불안을 초래하고 있지만 그것이 원흉이라고 보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질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는 것.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전하는 답변과 위로가 명징하고 따뜻하다. 나는 이 분의 말씀을 지지한다. 궁극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당신이 왜 고민스러워하는지, 내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좌표를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은 인간의 사회성과 관련된 6가지 고민을 풀어간다. 관계(타인과의 관계가 힘든 나는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요?), 외로움(홀로 버려진 느낌인 나는 외로움을 타는 걸까요?), 평판(모두에게 칭찬받고 싶은 나는 정상인가요?), 경쟁과 배려(남과 경쟁해 이기는 것만이 답일까요?), 영향(왜 나는 줏대 없이 남의 이야기에 흔들릴까요?), 공감(인간은 AI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으로 장을 나눴다.
 
저자는 매 장의 질문마다 과학자들이 진행해온 가설과 실험들을 소개한다.
예컨대, 첫 장 '관계'에서 영국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가 제시한 ‘던바의 수’와 ‘사회적 뇌’에 대한 가설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를 일러준다. 던바의 수에 따르면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최대 수는 150명, 절친은 15명 선. 아는 사람과 알 수도 있는 사람의 최대치라 해봐야 각각 500명과 1,500명이다. 저자는 이 실험을 예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 능력에 최대치가 존재하며, 관계망이 극대화된 지금의 사회적 채널을 다 따라간다는 건 뇌 용량의 한계가 용납하지 못한다고 충고한다. “스쳐가는 사람들 관계에 애쓰지 마세요.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세요.” 그의 조언은 위로처럼 따뜻하다.    
 
외로움에 관하여, 저자는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를 구별하라고 조언한다. 외롭다는 건 고립되어 있다는 주관적인 느낌인 반면, 고독은 외롭다는 느낌 없이 자발적으로 홀로 있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외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느낄 수 있는 느낌이고 고독은 관계에 지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상태다.

이 장에 소개된 실험은 우리 뇌에서 ‘사회적 고통’을 발견했다. 세 사람이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한다. 어느 순간 한 사람 A에겐 공을 건네지 않고 B와 C만 공을 주고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배제되는 느낌이나 무리에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 학자들은 이 배제감을 ‘사회적 고통’이라 부르기로 했고, 이 고통이 물리적 고통보다 더 큰 괴로움을 주는 것을 발견했다. 그뿐 아니다. 심리학자 네이든 드월의 실험에선 진통제가 실연 등 마음의 상처에도 ‘효과 있음’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외로움은 진정시킬 순 있되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은 영장류 중 태어날 때 가장 연약한 존재이므로 의존적이고 일찍부터 외로움을 탄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이어서 당연히 생기는 느낌이므로 부끄러울 게 없다고 말한다. 외로운 감정이 펌프질 해대는 건 정상이다. 단, 만성적인 외로움은 반드시 탈출하라고 그는 경고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평판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저자는 멀리사 베이트슨과 대니얼 네틀의 메뉴판 실험, 개그맨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 몰래 카메라, ‘공유지의 비극’ 등을 예로 들어 사회적 인간은 평판에 민감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극도로 민감한 건 위험하다. ‘상호의존적 자기’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독립적 자기’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변의 관계보다 자신이 지닌 속성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를 너무 보진 말라는 것. 책 속엔 한류 넘버 원 ‘BTS’ 멤버의 유니세프 연설 한 단락이 실려 있다.
“일어나, 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봐.”      
 
인간 속성상 경쟁은 불가피하다. 인간은 배려와 동정을 지닌 동물이지만 남보다 더 가지려는. 이기려는 경쟁욕구 속에서 살아간다. 영장류연구소의 프란스 발이라는 교수는 원숭이를 상대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서로를 볼 수 있는 유리벽이 가운데 놓인 우리에 두 원숭이를 가둬 놓았다. 물건을 줬다가 돌려받는 훈련을 반복하고 이 때마다 보상으로 오이를 똑같이 건네주었다. 어느 날 한 마리에게만 오이가 아닌 포도를 보상으로 주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원숭이에겐 포도가 오이보다 10배 이상 맛있다. 포도를 못 받은 원숭이가 창살을 흔들며 억울함과 분노를 드러냈다. 다른 실험도 있다. 똑같은 시급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인데 나중에 한 파트너만 시급을 더 받는 걸 알았다면? 보상실험은 영장류와 사회적 인간이 공정에 대한 원천적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인간에게 공정을 무시하는 경쟁욕구만 있는 건 아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더 가지려는 욕심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가 손해 보지 않는 한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는 배려심을 갖는 것도 인간이다. 독일의 마이클 토마셀로 교수 연구팀은 아이들의 구슬빼기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공평하게 두 개씩 갈라주던 구슬이 한 쪽 아이에게 세 개 주어졌을 때의 반응실험이다. 놀랍게도 75%의 아이가 한 개밖에 못 받은 아이에게 구슬 하나를 건네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개를 건네주고 자신은 한 개만 가지는 아이는 없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과학자들은 영장류인 인간은 경쟁욕구와 동시에 배려와 협력을 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경쟁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꿀 것을 조언한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과거와의 전쟁, 자신과의 전쟁, 그리고 한 가지 목표를 향한 경쟁이 아닌 분산된 경쟁이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경쟁이라고. 덧붙이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경쟁은 탐욕에 가깝다.
 
귀가 얇은 사람을 ‘팔랑귀’라고 한다. 사회적 관계와 사람의 말에 쉽게 영향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은 무엇일까. 저자는, ‘휘둘림’의 역사는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주제임을 밝히며 ‘동조연구’를 소개한다. 자신의 의견보다 다수의 이견에 따르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서울대생 대상 실험도 소개되는데, 이 역시 동조효과를 재확인하게 한다. 여기에 ‘에코 챔버(echo chamber)’와 ‘필터 버블(fiter bubble)’이란 용어가 등장한다. 한 사람의 의견은 그 사람의 네트워크 중 다수의 의견에 영향 받는다. 그 다수가 나와 밀도가 높은 관계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끈끈하게 연결된 지지층일 경우엔 목소리가 반사되어 확대효과를 갖게 되고(에코 챔버), 정보제공자에 의해 필터링 된 정보는 편향을 더 증폭시킨다(필터 버블). 진영논리에 목을 매는 우리 정치판이나 사회 일각 분위기와 꽤 닮은꼴이다. 저자는, 동조심리는 사회적 인간의 진화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장착된 마음이라고 말한다. 다만, 초연결사회가 된 지금 소셜미디어가 그 동조심리를 활용하고 증폭시키고 갈취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채고 경계 자세를 취할 것을 주문한다.
 
마지막 장인 ‘공감’은 인간과 AI의 공감이 숙명일지 피해야 할 숙제일지를 묻는다. 기술의 고도화로 로봇이 만들어지고 생활의 모든 것은 인공지능이 지배한다. 생각하고 말하고 생활을 돕고 충성스러운 인공지능 기기가 더 깊숙이 파고들 때, 인간이 얻는 건 무엇이고 잃는 건 무엇일까. 충성스럽지만 말은 못하는 반려동물이 결국 로봇에 밀려날 것인가. 개와 고양이와 달리 사람 모양을 그대로 닮은 로봇을 지나치게 의인화하고 푹 빠져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 스스로 만들어놓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경쟁하는 모순적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으로부터뿐만 아니라 ‘유사인간’ 또는 ‘초인간’인 기술과 기기로부터도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저자인 장 교수는 이런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인간 본성이라는 과거로부터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어쨌거나 인간은 사회적 본성을 지닌 사회적 동물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관계와 외로움, 평판, 흔들림, 경쟁을 의심하는 자신을 의심한다. 늘 ‘홀로(alone)’인 듯 ‘함께(together)’다.
 
초연결 사회이자 관계과잉의 시대. 자신만의 포지셔닝(positioning)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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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과학자의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장대익. 휴머니스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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