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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리더 이상문의 어쩌다 뒷북 3]장관 후보의 정의, 나와 우리의 정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2019-08-30 17:54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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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다. 연재 타이틀이 ‘어쩌다 뒷북’이니 다시 보기 책으로 딱이다. 독서내공이 미약해 얇고 가벼운 책부터 훑어보려던 계획이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샌델 교수의 지상강의는 2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대중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독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번역자의 말처럼 ‘고난도의 지적 유희’에 가까운 책이다.
 
사서 고생한 이유는 대충 아실 듯하다. 정치판과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어떤 장관 후보자 파동 때문이다. 공적으로 정의와 도덕, 공정, 평등을 주저 없이 주창해온 사람이 사적 범위에서 ‘정의롭지 못한’ 흔적을 보여 국민들의 실망과 노여움을 샀다. 설사 불법이 없다 한들 아주 정의롭다 할 순 없지 않은가.
 
‘정의(正義)’란 말은 누구에게도 생소하지 않다. 하지만 말로는 가까이 있어도 현실체험에선 그리 가깝지 않은 단어다. 먼발치에 누운 산그리메처럼 너무 숭고하고, 알게 모르게 수시로 우리를 소외시키며, 그래서 아무 자리에서나 쉽게 내뱉기엔 부담스러운 말이다. 권력자들이 말하는 정의와 별개로, 보통사람들에겐 적잖이 그렇게 돼버렸다. 꼭 ‘후보님’ 파문 때문만도 아니다. 정의(正義)의 정의(定義)에 관한 딜레마와 그것으로부터의 소외는 꽤 오래 된 일이다.
 
‘하버드대 최고 명강의’를 옮겨놓은 책에서 마이클 샌델은 자본주의, 행복, 평등, 자유, 미덕과 같은 주제로 이 시대 도덕과 정의는 무엇인지 탐구했다. 정치철학의 역사를 되짚으며 벤담, 칸트, 롤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당대의 문제와 씨름하며 대안을 모색한 흔적을 보여준다. 학생 또는 독자들의 이해가 쉽도록 사례 중심의 토론도 이어진다. 구제금융, 모병제, 대리 출산, 외주 임신, 동성 결혼, 이민법 개혁, 과거사 공개 사과와 같은 현실 문제에서 정의를 탐구한다. 경로를 이탈한 전차, 고통의 대가를 계량하는 실험과 같은 사고실험을 토론 주제로 삼기도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위대한 사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안내한다.
 
예컨대 고민스런 딜레마들은 이런 것들이다.
극에 달한 경제 불평등의 원인으로 시장만능주의가 지목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인이 노력해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는 다수에게 도움 되는 결정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의자 고문이나 대리 출산처럼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선 도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공리주의식 정의는 그래도 여전히 정의로운가? ‘특정한 이해관계가 사라진 무지의 장막 뒤에서 정의의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주장도 일견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노예제를 인정한 과거 미국 헌법처럼 아무리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유하려 해도 공동체의 이익이나 관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떤 정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옳고 그름,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주장들이 경쟁하는 딜레마적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딜레마에 빠졌을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 우리가 의존할 도덕적 원리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밀, 롤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이야기한 정의를 둘러싼 원칙은 우리의 철학적 기반을 다지는 좋은 재료가 된다.
 
그래서 저자의 결론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은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의 세계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바로 도덕적 사고의 근간을 형성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정의란 일부 사상가들이나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우리 현실에 빗대어 말하면, 정의란 원래 위선적인 위정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는 다른 공동체가 가진 도덕성을 외면하는 공동체주의의 사고를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단순한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장점을 수용하고 종합한 공동체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의식을 중시한다. 진정한 정의는 여기서 파생한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의견 차는 확연하지만 요즘 세간의 논란의 중심은 역시 ‘정의’다. 흔하디흔한 정의의 외침과 웅변이 ‘위선’의 암초에 걸린 탓에 사회가 시끄러워졌다. 이해관계에 따른, 진영논리에 따른 갈등과 전쟁을 잠시 접고 이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시 환기해보면 어떨까.
‘그 분’의 자녀가 ‘황제 스펙’으로 무시험 진학으로 일관했다고 어수선했다. 포인트는 약간 다르지만 마침 책 속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싶다.
 
‘귀하의 입학이 허가되었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귀하는 축하받아 마땅합니다만, 그것은 귀하께서 입학에 필요한 자질을 소유할 당연한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사실 귀하에게 그런 당연한 자격은 없습니다), 복권 당첨을 축하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귀하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특성을 갖게 된 행운아입니다.’
 
미국의 명문대에서 장애인 특별전형 때문에 좋은 성적으로도 아깝게 불합격한 학생의 클레임이 있었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결국 대학은 그 학생을 구제하지 않았다. 다수가 인정하는 공정과 평등의 덕목과 학교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공공의 미덕과 목적이 상충한 결과였다. 저자는 학교가 위와 같은 냉정하고 엄중한 합격통지문을 '운이 좋았던' 합격자 전원에게 발송하는 게 바람직했을 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상상으로 꾸민 발송 문서다. 당신은 어느 쪽이 정의에 가깝다고 생각할 것인가. 다수가 원하는 쪽에서 무조건 공정해야 할까, 비록 소수일지언정 공동선과 도덕에 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믿는가. 행동은 어찌할 것인가.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정의론은 아직 우리와 살을 섞지 못하지만, 배반의 장미 같기도 하지만… 정의의 정의(定義)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우리 공동체 성원 모두의 과제이자 숙원이다.
 
정의 때문에 열 받는 것도, 나부터 정의롭기 힘든 것도, 모두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본문이미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김영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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