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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리더 이상문의 '어쩌다 뒷북' 2]아저씨... 방문이 안 열린다고요~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

2019-08-19 18:13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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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들을 만나 간만에 꽉 찬 ‘불금’을 보냈다. 익숙한 얼굴도 첫인사를 나눈 얼굴도 있었다. 처음 만났는데도 낯설지 않은 것은 초록은 동색이어서다. 글 쓰고 종이 만지는 사람들은 금방 알아보고 쉽게 섞인다. ‘척 보면 아는’ 것… 알량하지만 내게도 그딴 게 조금 있다. 물론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간 종족들은 못 알아본다. 알아도 모른다.
 
그들과 나의 현실은 공히 우울하다. 책들을 안 읽는다. 그래서 책이 안 팔린다. 한탄이나 하자고 작당한 건 아니었는데 분위기는 저절로 단조로 흘러갔다. ‘그래도 팔리는 책은 팔린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도 나왔다. 물론이다. 다만 ‘팔리는 책’을 예측하기가, 잡아내기가 힘든 것이다. 냄비 같기도 총알 같기도 한 트렌드 따라잡기는 갈수록 불편하다.
 
분위기 전환엔 역시 책, 그 자체 이야기다. 장부에 빨간 줄이 늘어나도 책 좋아서 책 만드는 이들 아닌가. 2차에 가선 짐짓 만만치 않을 그들의 ‘독서내공’을 끌어냈다. 누구의 스무살을 격하게 울린, 누구에겐 초라한 밤에 별 같이 반짝이는 희망이 되었던, 또 누구에겐 40대에 새 진로를 택하게 만든 감동의 책들이 고백처럼 흘러 나왔다. 독서에 관한 한, 양과 질 모두 턱없이 모자란 나로서는 죄다 부러움을 사는 제목들이다. 달리 저질리더가 아니다.
 
대화가 익어가는 중 궁금증이 하나 일었다. ‘독서만렙’인 출판인들, 독서가들의 서가는 어떤 모습일까. 아예 읽지 않은 책이 허다하고 침 몇 번 바르다 말고 꽂아둔 책도 많은 내 서재 같은 걸까. 그들의 소장 책은 얼마나 될까. 수많은 책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치장(?)할까. 100% 다 꺼내 읽게는 되던가….
 
때마침 《장서의 괴로움》(오카자키 다케시, 정은문고, 2014)이란 책을 손에 넣게 됐다. 소설가 장정일의 추천 글을 맨 먼저 만나게 되는데, 이게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다. 추천사 제목이 ‘순수하고 무모한 열정의 괴로움’이다. 첫 문장은 ‘《장서의 괴로움》은 책을 사랑하는 장서가에게 공포를 선사한다’로 시작된다. 공포라니…. 꽉 찬 책장 앞에 서 맘 뿌듯하거나 부채의식을 느낀 적 있으나, 지금껏 공포 따위는 없었다. 
 
작가가 소개한 ‘무모한 열정의’ 장서가들은 저마다 골치가 아프다. 책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 때문에 시름시름 앓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경을 친 장서가들의 에피소드가 줄줄이 소개되는데, 딱한 일이지만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층집 2층 서가는 특히 위협적이다.
“아랫층 방문이 안 닫힌단 말예요~”
아래층 주인이 올라와 방문이 뻑뻑하더니만 이내 여닫을 수도 미닫을 수도 없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방 한 쪽에 책장을 쏠리게 놨더니 집 전체가 기운 사례도 있다. 그뿐인가. 1층 다다미가 주저앉고 2층 방바닥엔 싱크홀처럼 구멍이 나기도 한다. 나아가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집이 통째로 무너진다. 세입자인 경우엔 매번 쫓겨나는 수모를 감당해야 한다. 
 
물론 이런 지경은 목조를 기본재로 하는 일본 주택의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아직 우리나라 장서가들 서재 바닥에 구멍이 났다는 소린 들어보질 못했으니, 우리로선 좀 억지스런 과장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저질리더인 나도 경험했듯 높은 책장이 기울어 넘어지거나 책이 쏟아지는 경우나, 서가마다 두 겹 세 겹으로 꽂고도 모자라 방바닥을 책 정글로 만드는 지경은 우리 장서가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니 세상의 무모한 장서가들은 책장을 비워야 한다. 우선 무분별하게 채우는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서평을 줄곧 써야 하는 어떤 작가에겐 하루에도 수십 권씩 책이 배송된다. 애정하는 작가나 장르에 빠진 애서가는 책쇼핑 중독에 빠져 책장과 방바닥을 그득 채우기 쉽다. ‘수입’을 줄이는 노력이 정 힘들다면 읽은 책은 처분하는 습성이라도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마저도 힘들다면 낭패를 겪기 전에 날 잡아 한꺼번에 팔아야 한다. 저자는 “‘책이 너무 늘어 걱정’이라는 투정은 자랑삼아 자기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무분별한 장서가들은 ‘허세쟁이’로 찍히기 쉽다는 뜻으로 읽힌다.  
 
저자 오카자키는 넘쳐나는 장서를 줄이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올바른 독서’를 권한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 아버지는 법률고문이자 서적 수집가였다. 애서가인 그가 평생 모은 책은 40권이었다고 한다. 그의 지혜를 받들어 장서를 500권 정도로 엄선하면 어떨지, 지은이는 독자이자 장서가일지 모를 이들에게 묻고 있다. 양보다 질이니 양서(良書)를 선별해 수집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렇다면 양서는 대체 어떤 책일까?’라는 물음이 따른다.
저자는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다를 그 선별 기준의 모호성을 피해갈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손에 닿는 곳’에 있는 책이다. 그의 지침에 따르면, 서가에 꽂혀 잘 꺼내지 않는 책부터 먼저 처분해야 한다. 책상 위나 책상에서 가까운 책 우선으로 선별하면, 당신에겐 그것이 ‘양서’다.
 
물론 집 무너질 일까진 없는 우리에겐 융통성이 있긴 하다. 일본처럼 목조주택이 흔하고 지진 우려도 많은 나라는 아니니까. 그래도 과하다 싶은 책장과 서재를 가진 이들은 이 책에서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 많다. 적어도 난 무슨 책부터 버려야 할지 늘 고민스러웠던 결정장애를 해결한 듯했다. 정말 그랬다.
 
지난 주말, 서재를 뒤집어엎었다. 난장판이다. 웬걸, 결정장애는 그대로다. 망연자실해진 내 모습을 목격한 마누라가 의아해 하신다. ‘쟤 또 왜 저래?’ 하실 테지.
하나, 그냥 냅두시라. 나 억지로 태연자약하고 있으니…, 가슴에 돋는 급후회를 희미한 설렘으로 겨우 잘라내고 있나니….
 
‘장서가 놀이’, 괴롭고도 재미있다.
본문이미지
<<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2014

 
 
장서가들에게 들려주는 교훈 몇 가지
 
1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2층일 경우 너무 많이 쌓아두면 위험!
2 그 순간 자신에게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을 것
3 헌책방에 출장매입을 부탁할 때는 어떤 책이 얼마나 있는지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4 책장은 서재를 타락시킨다. 필요한 책은 곧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는 게 이상적.
5 책은 상자 속에 넣어두면 죽는다. 책등은 늘 눈에 보이도록.
6 장서는 불에 잘 탄다. 자나 깨나 불조심!
7 책은 집에 부담을 준다. 집을 지을 때는 장서의 무게를 계산해두자.
8 진정한 독서가는 서너 번 다시 읽는 책을 한 권이라도 많이 가진 사람이다.
9 생활력과 수집력을 동시에 갖추려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도 이해해준다.
10 수수한 순문학 작품은 팔아버리더라도 도서관에 가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폐가 서고를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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