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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중년 이상문의 Alone Together 5]pecking order, 향수 또는 함정

2019-08-12 11:49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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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미끼 말이냐?”
“조금 다르다. 미사일이 날아오면 전투기 조종사가 가짜 미끼 뿌리는 거 아나?”
“몰라.”
“멀었다, 멀었어.”
일찍이 노수가 내게 이렇게 거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의식도 못 하는 순간에 거의 반자동적으로 정해지는 이른바 ‘페킹 오더’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모이 쪼는 순서 같은 것이다. 동기동창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이놈 저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페킹 오더가 한 번 뒤로 밀리면 앞으로 나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노수는 그 질서를, 내가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문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윤기 소설 <나비 넥타이>(1998)를 다시 펼쳐본다. 무척이나 흠모해 매 작품마다 코를 박고 빨려들던 그분을, 굳이 오늘 소환하는 데는 조금의 이유가 있다. 나 역시 남자인지라 전혀 생소할 게 없는 그 말, ‘페킹 오더’를 요 근래에 부쩍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하신 이 선생이 알려줬듯 ‘페킹 오더(pecking order)’는 부리 가진 동물이 모이를 쪼아 먹는 순서를 말한다. 특히 닭 같은 가금류에 서열이 정해져 있다는 데서 나온 비유적 표현으로, ‘사회적 서열’ 또는 ‘계층’을 의미한다. 1920년대에 오랫동안 닭을 정밀관찰한 토를레이프 셀데루프라는 노르웨이 생물학자 양반의 실험이 주효했다. 암탉을 풀어놓으면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닭이 있고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닭이, 또 그 다음 자리의 닭이 정해져 있다는 것. 모이를 쪼는 순서도 이와 비슷하다는 결론이었다.
영장류만 줄서는 게 아니었다. 꼬꼬들도 위, 아래가 있다. 이후 페킹 오더란 말은, 대개의 조직문화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포기되지 않는 나름 ‘준엄한’ 원칙임을 비유할 때 단골로 쓰였다. 어떤 이는 이를 ‘서열지향성 유전자’라 바꿔 부르기도 한다.
 
다시 돌아가서, 엊그제 대학교 동기동창 몇몇과 15년만의 만남.
“갑돌이가 요즘 벤처로 확 떴다.”
“걔가 누구냐?”
“그러게… 걔가 누구냐?”
“아, 난 아는데… 근데 걔가 그런 거 할만한 놈이 아닌데?”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옛날 그림만 그려? 열심히 살았나보지.”(이건 나의 대사였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놈은 좀…”
 
엇비슷한 얘기가 중고등학교 동창회로 가면 정도가 심해질 때도 있다. 다들 나이 지긋해졌으니 겉으로야 대범하고 유연하다. 문제는 삼삼오오들이 모일 때 벌어지는 뒷담화. 때론 육두문자도 등장한다. 그놈 엄청 찌질이였는데… 애들한테 말도 못 붙이고 다닌 애였는데… 그 새끼 까불다가 나한테 꽤 맞았었지… 그 자식은 공부 엄청 못 하지 않았냐? 등수가 안 보였던 놈인데….
 
지금의 ‘그놈‘을 인정하고 인생2막의 새 우정을 쌓아가는 중임에도,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만용과 치기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 한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한때 그보다 우월(?)했던 자신의 모습이 자꾸 거울에 나타나는 모양이다. 지금의 위상과 자존이 초라해서가 아니다. 나를 높이려는 태도가 아니라 남을 낮추려는 자세다. 학창시절 무리들 중에 뭣 하나로라도 군림(?)했던 기억이 나를 쉽게 놓아주질 않는 것. 페킹 오더다. 페킹 오더의 향수는 때론 그렇게 달콤하다.
 
하나, 삼삼오오가 공유하기 딱 좋은 그 향수를 읊조리며 신선놀음하다가는 크게 경을 치는 수가 있다. 서열엔 앞만 있는 게 아니다. 중간도 있고 뒤도 있을 터, 그래야 서열이 성립된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서열 역시 영원하지 않다. 어차피 그럴 줄 알았음에도 우매하게도 학창시절의 페킹 오더에 연연하는 모습은, 그러니 향수보다는 차라리 미련에 가깝다.

재미있는 건, 이런 따위의 미련은 혼자 중얼거릴 때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자라면 대충 그러다 말 공산이 크다. 삼삼오오가 필요하다. 무엇인가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각자의 현실을 누군가를 ‘함께’ 소외시킴으로써 자기위안과 쾌감을 느끼는 심리 아닐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는 ‘다 함께 홀로(Alone together)’다. 사람은 어차피 혼자인지 모른다. 고독은 처절하지만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차라리 혼자 외로워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면 그만일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으로 타자를 이해하는 힘 기르면 될 것을, ‘함께’ 모여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나도 모르는 사이 비겁한 약자의 길을 택하고, 결국 나 자신도 소외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매 순간 혼자일 수도 함께일 수도 있다. ‘홀로’일 때 ‘함께’를 원한다면 ‘함께’일 때 ‘홀로’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진심으로 대접하는 기술(?)이 아쉽다.
 
페킹 오더의 함정이 부쩍 눈에 띄어, 요 사이 몹시 껄적지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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