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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중년 이상문의 Alone Together 4]우울한 게 무슨 죄인가?

2019-08-12 11:34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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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날 우울하다. 안 그런 척할 때도 있지만 순전히 ‘구라’다. 긍정의 힘을 믿으려 무던히 애쓰는 기저엔 긍정의 배신을 몰래 걱정하는 내가 있다. 아무튼 난 자주 우울하다. 
 
어디 나만 그런가. 나이가 좀 들어가니 주변에도 온통 우울하단 얘기가 일상어가 돼버렸다. 예전 같으면 주삣쭈삣하며 ‘솔직히 나…’로 시작됐을 고백이 이젠 꽤 쉬워졌다. ‘나는 우울하다’고 고백하는 자전적 에세이나 우울증 진단과 처방 도서들이 마구 쏟아진다. 며칠 전 신문에서 ‘우울증 커밍아웃 시대’라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인간은 본래 고독(alone)하다’는 인식이 기지의 사실이 되고, 그러므로 함께(together) 모여 외롭고 우울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어찌 보면, 함께한다는 행위는 고독과 우울의 원인치료를 위함이 아니다. 그냥 그런 징후를 까놓고 확인하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끊임없이 회자되지 않았는가. 해결되지도 않고 해결할 수도 없는, 돌고 도는 게임이다.
 
대학 초년 시절. 싱그러운 청춘을 소비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을 그 때. 나와 내 친구는 아직 불안한 각자의 미래와 암울한 1980년대 사회를 놓고 밥 먹듯이 고뇌했다. 하늘을 가린 희뿌연 지랄탄 연기 때문에 많은 날을 꺼이꺼이 울었다. 하늘은, 돌을 던지면 몹쓸 독가스를 내리셨고 눈물콧물 쏙 빼고 나면 던질 힘을 또 주셨다. 이것 또한 돌고 또 도는 메리고라운드 같았다.     
기분이 유난히 가라앉았던 날, 친구가 물었다.
“왜 그래?”
“그냥, 그냥 그렇다…”
“괴롭냐?”
“글쎄다…”
잠시 답하길 주저할 때 이 친구가 내민 말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괴로우면 계속 괴로워해. 죽지 않을 만큼만 끝까지. 그러면 된다.”
희로애락 다루는 법을 배웠다 할까. 우스꽝스럽게 과장한다면, 고작 스무살 나이에 득도(?)를 했다 여겼다. 참 고마운 친구다.
 
그 친구를 엊그제 만났다. 간만에 몸 풀자고 스크린골프를 치고 2차로 독일식 고급 소세지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며 희희낙락했건만, 이 친구가 뒤늦게 ‘노망’이었다.
“나, 우울증인가봐... 심해.”
복병이 가까이 있었다. 뜨끔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에게 배운 ‘관심법’을 써먹을 찬스 아닌가.
“그래? 그럼 계속 우울해라! 죽지 않을 만큼만.”
눈을 부라린 것도 잠시,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잔을 높이 들었다. 30년 넘은 우정이지만 서로의 고독과 우울을 결코 완치시키진 못 한다. 다만, 당연한 듯 인정하고 당연한 듯 지켜봐줄 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우울증 진료 인원은 68만 명이란다. 5년 전보다 16% 증가했다. 중장년층만이 아니다. 인구 10만 명당 20대 진료자 수가 1096명, 30대가 1054명으로 5년 전보다 50% 증가했다고 한다. 극심한 경쟁사회의 일면이 전 세대로 만연되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빨라지면서 거기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의 가치관은 붕괴되고 갈등한다. 이만한 피로사회에서 우울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니 나만 그렇다 생각할 필요 없다. 어차피 끼고 살아야 할 거라면 굳이 알려서 동네 창피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은 썩 바람직한 결론이 아니다. 정신건강은 현대사회를 사는 모든 이들이 드러내고 인정하며 돌봐야 할 일상의 과제다. 다들 커밍아웃하라고 하지 않는가.      
   
처음부터 얘기했듯, 나는 만날 고독하고 우울하다.
안다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불편해할 것 없이 인정하고 ‘친구 먹어야’ 한다. 언젠가 무슨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시안 스타 '광수'가 낯선 게스트에게 말했다. “우리, 말 놔요. 빨리 친해져서 막 대하고 싶어요.”

우울한 게 무슨 죄인가. 친해지고 막 대하면 된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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