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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중년 이상문의 Alone Together 2]똥고집 청년농부의 ‘알쓸신잡’ 인생공부

2019-08-12 11:19

글 : 이상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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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고 하기엔 짧은 1박 2일 힐링투어를 다녀왔다. 철 가리지 않고 상상만 해도 설레는 곳, 동해. 질긴 인연의 친구 다섯과 출발한 여행(?)은 역시 오랜 친구 둘이 살고 있는 속초가 목적지였다. 늘 보던 비슷한 저녁시간에 단골 횟집에 모여 활어회를 ‘잡수기’ 시작했다.
토박이 사장님이 내놓는 회는 언제나 엄지척! 싱싱하고 맛나다. 좌중의 객들이 죄다 전 · 현직 기자인 걸 주인장도 아시니 뭔가 바랄 일이 있음직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부터 무언의 결의를 하고 있었다, 절대 소개 안 할란다, 우리끼리만 누릴란다…. 나이드니 우리만의 조용한 아지트가 점점 긴요해진 것이다. ‘소맥’이 거침없이 술술 넘어간다. 신기하게도 바닷가 횟집에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질 않는다.
 
1박 2일의 익숙한 풍류를 마무리한 뒤 일행에서 벗어나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시골마을로 향했다. 귀농 6년차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역시 기자생활 하다 귀향한 친구다. 밥벌이에 심신이 묶여 1년에 한 번 들르기도 버거웠다. 오직 농사를 생업으로 삼은 그가 걱정도 되고 때론 부럽기도 했다. 하긴 괜한 걱정은 주제넘은 짓이다. 내 맘이야 어떻든 눈꼬리가 선한 놈은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그간 그 집을 수차례 드나들며 녀석에게 들은 고향마을의 실상은 대강 이랬다. 귀농 첫 해, 이 놈은 오만방자하게도 ‘무농약 농사’를 천명했다. 농사엔 젬병이인 나조차 “좋긴 한데 그게 가능하겠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선한 눈웃음과 달리 똥고집과에 속하는 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귀농 몇 달만에 처음 내려갔을 때, 시골 물정 모르는 나는 처음으로 아연했다.
“아이쿠 형, 나 살쪘죠?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웃음)”
“왜?”
“동네 어르신들이 허구헌 날 와서 뭐라고들 하시네.”
 
무농약 농사가 사달이었다. 어설픈 상식으로도 완전 무농약 농사란 감히 실천하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토박이 농사꾼들이라면 좀 다를 것으로 생각한 내가 순진했던 모양. 비교적 젊다 하는 동네형님들은 물론 허리 꼬부라진 노인들까지 충고를 해대기 시작했단다. 충고로 안 되니 압박이 들어오는데, 죄다 어릴 때부터 아는 동네 분들인데다 먼 친척까지 있어 무척 난감하더라 했다. ‘몰라서 그렇지 그게(무농약 농사) 되질 않는다’던 걱정이 ‘이 놈, 너만 잘났냐?’는 질책으로 변했다. 그 난관을 겪고도 이 ‘똥고집’은 아직도 무농약 쌀을 형에게 보내오고 있다.
 
다시 모처럼 내려갔더니 이 친구가 마을을 휘젓고 다니느라 바빠 형님 맞을 준비도 안 하고 있더랬다. 마을 주민 이름이 빼곡히 적힌 클립보드를 손에 들고 돌아온 놈은 냉수부터 벌컥벌컥 들이켰다. 서명운동(?)이었다.
“마을 뒷산에서 석산개발을 해요. 그거 허가취소 민원 넣으려고요.”

암석을 채취하는 데는 폭약이 필요하다. 산림훼손 운운하는 건 분에 넘치는 사치였다. 당장 인근에 맞닿은 마을에선 소음과 진동, 비산먼지가 문제 될 수 있었다. 형이 한나절 있는 동안 놈은 절반의 시간을 서명부와 전화에 코와 귀를 박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고, 후배는 말했었다. 개발업체의 이런저런 변명과 회유책으로 마을 분들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간혹 약삭빠르게 ‘개발 호기’에 먼저 다가서는 사람도 있었단다. 시골 공기는 온전히 맑을 줄만 알았는데 불투명했다. 나는 두 번째로 아연했다. 귀농 4년차 때쯤이었나보다.
 
바다와 그리 멀지 않는 마을이지만 쨍하게 뜨겁기만 했다. 나른한 오후에 한껏 나른해진 모습으로 후배는 손님 같지도 않은 객을 또 맞았다. 마당 한 편 큰 은행나무도, 그 앞 녀석의 열 마지기 논배미도 푸르게 춤추는데, 이 놈은 꾸부정하게 늘어진 누런 벼이삭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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