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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9]소비의 시작, 벨에포크

2019-03-02 10:15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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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네 랄리크 핀 디쉬(아르누보)
2) 크리스털 향수병(아르데코)
3) 빅토리안 시대 꽃무늬 잔을 재해석한 현대 에스프레소 잔
4) 스털링이 오버레이 된 크리스털 저그(벨에포크)
5) 빅토리안 시대 꽃무늬 잔을 재해석한 현대 티잔
6) 살구 톤이 여성스러운 물잔(벨에포크)
7) 트리밍을 금박으로 입힌 살구 톤 칵테일잔(아르데코)
8) 스털링 홀더 라인이 아름다운 크리스털 화병(벨에포크)

3월은 아직 날씨가 쌀쌀하건만 모두 봄을 꿈꾼다. ‘꽃피는 춘삼월’이라는 말처럼 봄과 꽃은 함께 떠오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봄맞이 준비는 집 단장과 옷 단장에서 시작했다. 요즘은 봄이 왔다고 연례행사처럼 집 단장을 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기억 속 할아버지 댁에서는 봄이면 문짝을 떼어내어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장판도 새로 했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가 정리되기도 전에 봄맞이를 해야 한다니.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엄청나게 변화하는 생활 패턴을 좇아가기에 바쁜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00여 년 전 유럽의 벨에포크(La belle epoque) 시대는 변화무쌍한 요즘과 매우 흡사했다.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세기말 혹은 세기의 전환기로서 특별히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인 ‘벨에포크’라고 불린다. 보불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다. 과학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해 오늘날 즐겨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이때 거의 발명됐다. 문학과 미술, 음악이 역사상 가장 편히 먹고살 만해진 사람들의 오감을 충족시켰다.

벨 에포크는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한 존재로 여기는 많은 문명의 이기를 선보였다.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이 발명됐다. 비행기로 도버해협을 횡단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일도 있었다. 도시를 화려하게 밝히는 전구가 발명되고, 도시도 재정비됐다. 전구로 빛나는 도시는 아름다워졌고, 나라마다 발명품을 과시하는 박람회가 열려 구경거리가 넘쳐났다.

우리가 해외에서 즐기는 많은 랜드마크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파리 하면 떠오르는 에펠탑, 알렉산드르3세교, 지금은 미술관으로 바뀐 오르세 역사도 벨에포크 시대에 지었다. 여가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사진기와 영화, 백화점, 바캉스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귀족이 아니어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시민이 이국적인 풍물을 접할 수 있는 여행을 동경하면서 최초의 계획적인 여행이 생겼고, 이런 수요에 맞춰 여행자 수표와 패키지 여행상품도 등장했다. 말 그대로 꿈같은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유럽의 식량사정은 매우 개선됐다. 수세기 동안 부자들의 상징이었던 흰 빵이 서민들 식탁에도 올랐다. 영국은 1820년 인도 아삼지방에서 차가 발견된 후 점차 중산층으로 보편화되더니 벨에포크 시대에 국민 음료로 정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품도 이때 많이 생겼다. 여인들의 오랜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샤넬도 그중 하나였다. 코코 샤넬 여사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분야는 모자 가게였다. 당시 여자들의 머리는 한결같이 모두 긴 머리였다. 결혼한 여성도 예외 없이 올림머리를 했기에 모자와 머리핀은 여인의 필수품이었다. 때마침 1860년대 불어닥친 일본 문화의 유행으로 여러 가지 장식을 더한 빗핀은 19세기 중반 내내 여인들의 애용품이 되었다. 이런 유행에 힘입어 르네 랄리크를 비롯해 아르누보를 빛냈던 많은 예술가들의 손에서 아름다운 빗핀이 만들어졌다. 금박과 은박을 입힌 고급스러운 장식의 빗핀은 벨에포크 시대 여인들 머리를 화려하게 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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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손잡이가 있는 스털링 오버레이 디캔터(아르누보)
4, 5) 정교하게 조각된 뿔로 만든 빗핀(벨 에포크)
6) 스털링 오버레이 에칭 잔(벨에포크)
7) 스털링 오버레이 크리스털 접시 위의 스털링 포트(벨에포크)
8) 에나멜로 섬세하게 페인팅된 뿔로 만든 빗핀(벨에포크)
9) 랄리크 크리스털 향수병(빈티지)
10) 상큼한 민트 톤의 크리스털 와인잔(아르누보)
11) 살구색 톤에 금박이 오버레이 된 크리스털 디너 접시(아르데코)
12) 살구색 톤에 은분으로 아름답게 핸드페인팅한 센터피스(벨에포크)
13) 르네 랄리크 핀디시(아르누보)
14) 카메오 크리스털 티 캐디(벨에포크)

수입상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발전해 소비라는 달콤한 맛이 대중에게 퍼졌다. 당시 마케팅 전략은 요즘 광고와 너무도 흡사해 놀라울 정도다. 봄이면 백화점의 한 해 매출을 가늠하게 되는 대규모 직물전이 기획됐다. 집 안을 꾸미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직물은 여인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식탁보로는 정교한 문양이 직조된 다마스커스 천을 최고로 여겼다. 상류층 집안에서는 벽에 종이 대신 실크 천을 발랐다. 집 안 식탁보와 냅킨 세트 수는 그 집안의 부와 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그 시대 여인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남편의 부를 집 안 꾸미기와 손님 초대로 과시하는 것이었다.

여름철이면 수영복이 백화점의 주요 상품으로 떠올랐고, 아이들 장난감 또한 백화점 진열대를 장식했다. 연말이면 진정한 소비의 장이 펼쳐졌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에 갖가지 색상의 전등이 반짝반짝 사람들 소비심리를 자극했고, 성탄절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선물과 캐럴 그리고 카드가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화려한 소비 패턴은 이미 150년 전 벨에포크 시대에 만들어진 셈이다.

시대의 화려한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외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였고, 화려함과 변화의 흐름을 좇으며 오락과 소비에 몰두했다. 19세기 도시 풍경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한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에는 신분과 형편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자를 쓴 여인들을 볼 수 있다. 모자 상자를 두 손에 든 여인의 행복한 모습에서 그 시대 여성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모자에서 비롯됨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모자는 상류층이 아닐지라도 일상의 고단함을 단번에 털어버리고 귀부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여인의 무기와도 같았다. 오랫동안 공들여 모아온 돈으로 구입한 모자는 그 시절 여인이 누렸던 찰나의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화려함과 바쁨을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그 시대를 지켜본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당시 테크놀로지의 지나친 발달을 우려하면서 사람들에게 던진 한마디가 지금도 진지하게 들린다. “기술의 발달이 더 빨리 더 멀리 갈수록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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