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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5]홍차가 있는 애프터눈 티파티

2018-11-22 16:29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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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플 꽃무늬가 아름다운 티잔(빅토리안)
2) 스털링 이단 트레이(빅토리안)
3) 스털링 티캐디(빅토리안)
4) 앰버 톤 와인잔(아르누보)
5) 스털링 오버레이 퍼플 톤 물컵(아르누보)
6) 손잡이 마감이 유니크한 스털링 티포트(빅토리안)

유달리 더웠던 여름 뒤에 찾아온 가을은 보석처럼 아름답다. 푸른 물이 배어나올 듯한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 절로 인생을 찬미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런 가을날이면 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를 멀리하고, 맑은 하늘처럼 심신을 정갈하게 해줄 것 같은 차 한 잔을 예쁜 찻잔에 담아 마시고 싶어진다. 가을만큼이나 차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싶다. 우아하게 앉아 느리게 우려낸 차 한 잔을 가을바람을 느끼며 마시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다도를 강조하며 격식을 차려 마시는 동양 차에 비하면, 홍차는 비교적 가볍게 마실 수 있을 만큼 요즘 우리 가까이에 다가와 있다. 홍차는 동양의 녹차가 무역을 통해 서양으로 건너가면서 유럽에서 특화된 차의 형태이다. 특히 영국에서 홍차 문화가 번성했으며, 그와 더불어 다과를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 티파티가 유행했다. 오늘날 전 세계 애프터눈 티파티 문화로 자리매김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애프터눈 티파티는 브런치 카페의 유행과 더불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소셜미디어의 사진 주제로 많이 등장할 만큼 인기 있는 차 문화다.

요즘은 커피 일색의 카페 혹은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도 대부분 홍차나 허브티를 팔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차 생활도 꽤 다양해졌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의 구수한 향에 끌려 하루 한두 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인들을 불러 분위기 있는 티파티를 할 때는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홍차가 제격일 듯싶다. 홍차는 티백으로도 간단하게 즐길 수 있으나 제대로 된 홍차 맛을 즐기려면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맞춰 티포트에서 우려내야 제맛이라 생각된다. 조금은 번거롭고 더디게 느껴지는 이 과정이 오히려 바쁜 일상을 정화하는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될 것이다. 중국에 기원을 두었던 차가 어떻게 서양에 건너가 16세기 이후 500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랑받게 되었을까. 설탕과 향신료가 그렇듯 차 또한 처음에는 의약품 개념으로 서양에 소개되었다. 16세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 거의 동시에 들어온 세 가지 외래 음료는 커피, 초콜릿, 차가 있었다. 대체로 차가 유럽 각국에서 도자기 열풍과 함께 대세가 되었지만 홍차 문화가 특히 뿌리 깊게 퍼진 나라는 영국이었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초콜릿과 커피가 유행했고, 지금도 이런 문화가 초콜릿과 카페오레를 즐겨 먹는 프랑스인들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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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팔각 호족반에 멋스럽게 세팅된 티세트(빅토리안)
2) 퍼플 톤 빈티지 디저트 접시와 본차이나에 스털링이 조각된 하이엔드 접시세트(아르데코)
3) 핸드페인팅 무늬가 정교한 빅토리안 시대 티잔과 본차이나에 스털링으로 모던하게 조각한 아르데코 시대 티잔

영국에서 홍차 문화가 널리 퍼진 데에는 영국의 음습한 날씨와 좋지 않은 수질이 큰 역할을 했다. 연중 계속되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음습하고 추운 날씨로 인해 영국인들은 홍차가 전해지기 전부터 식물 뿌리를 달여 마시는 음차 습관이 있었다. 이러한 생활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차는 미지의 동양에서 온 귀한 사치품으로서 찻잔과 함께 곧 왕족과 귀족들의 기호품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속하는 1840년대 차는 중국을 벗어나 인도에서 재배에도 성공함으로써 찻값이 더욱 저렴해졌다. 마침내 영국의 모든 계층에서 향유하는 차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에서 19세기 중엽 저렴해진 차의 보급은 영국 중산층에게 그동안 오랜 세월 열망했던 도자기와 차 도구 그리고 커틀러리에 대한 소유욕을 북돋웠다. 그릇장과 장미 무늬 커피잔이 19세기 중반 영국의 중산층이 사고 싶어 하는 최고 아이템으로 등장하였다. 우리도 몇 십 년 전 서구의 선진문물 도입에 열망하던 시절, 일명 ‘차단스’라 불렸던 그릇 장식장과 영국 황실 장미 커피잔을 엄마가 애지중지했던 추억을 아마 중년층 연배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영국 중산층에 불어닥친 차의 열풍은 영국 도자기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독일 마이센이나 프랑스 세브르 도자기가 국가의 보호 아래 만들어졌던 국영 도자기였던 데 비해 영국 도자기 산업은 철저한 자유경쟁 체제로 만들어졌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고 많아진 공급 체계는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증기기관과 철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19세기 영국 산업 부흥의 중심에는 도자기 산업이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도자산업의 성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세계 도자기 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직업 없이 남편의 바깥 활동을 내조했던 빅토리안 시대 여인들은 지인들과 오후 티파티를 즐겼다. 이러한 티파티는 자신의 고상한 취향을 드러내며 차 도구를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도자기로 된 포트와 스트레이너, 티잔, 티캐디 등이 일반적인 티파티 용품이었다. 하지만 높은 열전도율로 순간적으로 찻잎을 퍼지게 하면서 차 맛을 한층 좋게 해줄 수 있는 스털링 포트가 이런 실용적 이유와 더불어 자신의 부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모든 여인의 워너비가 되었다. 이런 까닭에 빅토리안 시대의 스털링 포트들이 아직까지 영국 앤티크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고, 그중에는 결혼 25주년이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트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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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 시대와 빅토리안 시대의 앤티크로 세팅한 퍼플 톤 정찬 테이블, 앞에 놓인 티포트 세트는 모두 스털링으로 된 아르데코 시대 하이엔드 앤티크

차가 중산층으로 널리 퍼져가던 19세기 중반 무렵,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근한 애프터눈 티파티가 처음으로 영국에서 생겨났다. 애프터눈 티를 시작한 사람은 영국의 제 7대 베드포드 공작의 부인인 안나 마리아다. 빅토리아 여왕의 모친과 절친이었던 그녀는 상류층 문화를 이끌던 아이콘으로서 점심 식사 후 늦은 저녁 사이에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차와 함께 풍성한 티푸드를 내오게 했다. 사냥이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당시 귀족들은 점심 식사 후에 지인들과 함께 사냥을 많이 나갔는데, 사냥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일정이 늦어져 귀가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다리던 부인들은 남편들과의 저녁 파티를 위해 저녁을 미루고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요깃거리를 곁들인 티파티를 하게 되었다. 상류층 부인들이 누구나 닮고 싶어 했던 베드포드 공작 부인의 티파티는 애프터눈 티파티라 불리며 주변 귀부인들에게 알려졌고, 상류층 부인들도 저마다 집에서 애프터눈 티파티를 열어 지인들과 오후를 즐기게 되었다.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서 탄생한 티파티였기에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늘 풍성한 티푸드가 함께했다. 3단 트레이가 등장했고, 제일 아랫단에는 영국 정통 샌드위치인 오이와 달걀샌드위치가 놓였다. 두 번째 칸에는 스콘과 구운 과자 그리고 맨 위칸에는 초콜릿 등 달콤한 디저트가 놓였다. 지금도 영국인이 즐기는 하루 다섯 번의 티타임 중에서 가장 귀족적인 티타임으로 여겨지는 애프터눈 티파티에는 때때로 홍차와 함께 샴페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17세기 커피하우스와 18세기 티가든이 그랬듯이 19세기 영국 애프터눈 티파티는 같은 계층끼리의 밀접한 문화를 돈독히 하며 19세기 영국 문화를 대표하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의 만남과 소통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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