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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2]여름을 식히는 유리와 스털링

2018-08-11 16:26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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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과 저그(아르누보)
2) 블루 꽃무늬가 아름다운 디너 접시에 레이어드한 코발트블루 샐러드 접시와 스털링 오버레이 디저트 접시(빈티지&아르데코)
3) 블루의 청량함이 돋보이는 화병·컵·저그(빈티지&아르데코)
기록적인 무더위가 연일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태양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방출하며 땅 위 생명들을 부지런히 키우고 있다. 바야흐로 열정의 여름 그 한가운데에 우리는 서 있다. 더운 날씨에 잠시 몸을 식힐 시원한 음료나 찬 음식을 찾게 되는 요즈음, 식탁에는 청량한 느낌의 유리와 크리스털이 자연스럽게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유리와 크리스털은 얼음이 들어간 청량음료처럼 음식을 시원하게 느끼게 해주어 입맛을 돋우는 마력이 있다. 차가운 느낌과 더불어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을 지녀 시원한 맛의 축제를 펼치기에 제격인 것이다. 여기에 같은 색감의 도자기와 함께 테이블을 세팅한다면 더 멋진 유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도자기가 주는 매력이 우직함이라면, 유리와 크리스털은 화사하게 꾸민 선이 고운 여인의 우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실용적이면서도 반짝이는 색채 효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투명 유리는 기원전 1세기 블로잉 기법이 개발된 로마에서 애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때때로 발굴되는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 때 페르시아산 유리가 실크로드를 타고 건너와 귀족의 애용품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은 등 전통적인 귀금속만큼이나 유리 또한 중세까지 오랫동안 지배층이 보석처럼 즐겨온 아이템이었다. 산업혁명 시대가 되어서야 유리가 공업적 생산체계를 갖추면서 서민사회에도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특별소비세에 해당하는 유리세를 부과했고, 1850년경 유리가 대량생산되면서 폐지되었다. 이로써 절대왕정의 루이 14세로 하여금 베르사이유 궁전에 유리방까지 만들게 했던 유리는 부와 권력의 상징에서 대중의 곁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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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털에 스털링이 오버레이된 런천 접시(아르누보)
2) 블루 받침 칵테일잔(아르데코)
3) 스카이블루 크리스털에 은가루로 핸디 페인팅한 물잔(아르누보)
4) 스털링이 오버레이된 크리스털 와인 디캔터(아르누보)
5) 크리스털에 스털링을 아름답게 조각해 붙인 물잔(아르누보)

유리에 대한 귀족들의 애착은 생활의 여러 형태에서 나타났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방문하게 되는 오래된 귀족의 저택에서 예외 없이 만나게 되는 것이 온실이다. 이러한 온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판유리가 필요했고, 1850년 전까지 판유리는 대량생산이 불가능했기에 온실을 정원에 소유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이런 까닭에 온실은 부의 상징이 되었고, 부자들은 너나없이 그들의 정원에 보란 듯이 온실을 만들었다. 귀한 판유리를 사용해서 만든 이 온실을 통해 부자들은 사시사철 채소와 꽃을 즐길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이는 음습한 기후에서 열매를 맺기 힘든 습성 때문에 대표적으로 재배된 온실 채소였다. 우리가 가장 영국적인 샌드위치로 알고 있는 오이 샌드위치는 맛보다는 부의 과시라는 배경 속에서 탄생한 메뉴라 할 수 있다. 식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생화 또한 계절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도록 온실에서 재배했고, 집에 초대한 손님을 위한 식탁을 생화로 꾸밈으로써 자연스럽게 부를 뽐냈다. 생화로 식탁을 꾸미는 것은 여자들의 한결같은 로망이었기에 도자기 열풍을 타고 18세기에 이어 19세기에도 도자기로 만든 꽃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생화에 대한 부자들의 집착은 꽃병으로도 이어져 19세기 말 풍미했던 아르누보 시대에는 갈레·랄리크와 같은 걸출한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많은 화병이 유리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유리 중에서도 더 귀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산화납을 첨가해서 만드는 크리스털이다. 17세기 후반 발명된 크리스털 제조법은 18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워터 포트라는 기업으로 이어졌고, 현대의 바카라, 생루이, 스튜벤사 등이 크리스털 회사로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크리스털은 일반 유리보다 무겁지만 빛의 투과가 뛰어나고 소리의 울림이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받고 있다. 크리스털의 무른 성질은 섬세한 조각을 가능케 해서 샹들리에나 브라켓 같은 조명기구에서 그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요즘 미니멀한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가 대세인 듯하지만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 로맨틱한 분위기는 한여름 밤 꿈처럼 지금도 여전히 모든 여인의 로망이다. 거창하게 크리스털 샹들리에는 아니더라도 기념하고픈 날 향기로운 와인 한 잔을 장식장에 모셔둔 크리스털 잔에 담는다면 그 향기와 풍미는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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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블루 컬러 유리에 에나멜로 핸드 페인팅한 물잔(빅토리안)

19세기 들어서 유리그릇을 장식하는 아주 기발하고 획기적인 기법이 유리공예에 더해졌다. 바로 은가루를 가지고 유리 위에 문양을 그리거나 얇게 눌린 은박을 세밀하게 조각해 유리에 얹는 기술이다. 맑고 투명한 유리에 귀한 은을 가지고 문양을 낸 유리그릇을 실버 오버레이 혹은 스털링 오버레이라고 부른다. 오버레이 유리 제품은 우아함과 귀족스러움으로 빛을 발했고, 특히나 여름철에는 그 청량함으로 식탁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서양에서는 은과 스털링이 같은 의미로 혼용되지만 약간 차이가 있다. 본래의 은과 구별되는 스털링은 은에 구리를 약간 넣어 견고함을 더한 합금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 귀족들의 모든 은식기는 14세기 이래 합금인 스털링으로 만들어졌다. 은은 예로부터 귀족이 아니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실버라이프를 향유해야 귀족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귀족 생활은 은으로 꾸며졌다. 아기가 태어나 세례를 받는 첫 영성체 예식에서 아기의 대부가 은으로 된 사도스푼을 선물하는 것은 17세기부터 있었던 귀족들의 오랜 관습이었다. 좋은 집안 출신임을 나타내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말은 이 관습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귀한 은을 유리와 접목해 만든 스털링 오버레이 식기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아르누보 시기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는 많은 사람이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며 문화적 생활을 누리기 시작하던 때이다. 물건이 넘쳐났고 까다로운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많은 종류의 커틀러리와 식기류가 만들어졌다. 스털링 오버레이 그릇들은 디너접시와 샐러드 접시, 수프볼 그리고 디저트 접시와 와인잔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다양함으로 서양의 풍요의 시기였던 19세기를 대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스털링 오버레이 그릇들은 우리의 눈과 미감을 기쁘게 해주며 여름이면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유리의 청량함과 은이 주는 시원한 색감이 어우러져 어떤 음식과 디저트를 담아도 입맛을 돋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리와 스털링의 조합으로 만든 그릇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해서 은을 상감한 그릇만으로도 식탁의 코스요리를 내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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