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COLUMN
  1. HOME
  2. COLUMN

[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21]아름다운 선의 예술, 아르누보

2018-07-07 04:48

글 : 백정림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본문이미지
1) 블루저그(아르누보)
2) 스털링 베이스 화기(아르누보)
3) 베이비 블루 화기(아르누보)
4) 에나멜 핸드페인팅 글라스(아르누보)
5) 코발트 블루 디너접시(아르데코)
6) 핸드블론 수프 볼(아르누보)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지더니만 어느덧 녹음이 우거지고, 태양은 연일 강렬하게 대지를 달구며 계절을 여름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 7월이면 너나없이 덥고 답답한 도시를 떠나 휴가를 갈 것이다. 어쩌면 7월이 오기 벌써 전부터 여름휴가 계획을 세워놓고 지루한 일상을 달래며 지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까이는 국내의 산과 계곡 바다로 떠나지만, 큰마음 먹고 멀리 유럽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있으리라. 우리가 유럽의 고성이나 귀족들의 저택을 보러 다닐 때 생각지도 않게 바로 우리 가까이에서 보아오던 풍물인 중국풍이나 일본풍으로 꾸민 방과 소품들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양문화의 중심인 유럽 건축물에서,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동양의 도자기나 칠기 가구들이라는 사실에 조금 놀라게 된다.
 
본문이미지
1) 아름다운 곡선의 오디오트가 만든 명품 티포트(아르누보)
2) 스털링 오버레이 센터피스(아르누보)
3) 지장(조선시대), 안에 전시된 모든 저그 화기는 크리스털에 스털링 오버레이된 아르누보 작품
4) 사각 약소반(조선시대), 초록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스털링 오버레이 크리스털 디저트 용기(아르누보)

18세기와 19세기를 풍미했던 대부호나 귀족의 저택에는 어김없이 중국의 청화백자나 일본의 칠기 가구가 놓여 있다. 여기에 덧붙여 극동의 예술을 모방하고자 열심히 탐구했던 서양인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그 시대 최고 수공예품도 함께 놓여 있다. 유럽인들이 당시에 만들어낸 상류층을 위한 최고 공예품은 모두 동양적인 꽃과 나비 그리고 새가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자연친화적이고 선이 고운 동양의 공예품이 천장이 높고 웅장한 그들의 집과 어울리도록 실내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18, 19세기 도자기와 가구들은 당시로서는 선진문물이던 동양문화가 서양문화와 융합된 독특한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도자기에 금박을 입힌 청동 틀을 다양한 모양으로 덧붙여 멋을 냄으로써 그들의 실내공간과 어울리게 만들었다. 칠기로 된 극동의 병풍을 수입해서 벽 장식에 그대로 쓰기도 했지만 여러 폭의 병풍을 한 폭씩 떼내어 콘솔이나 책상 혹은 서랍장 상판으로 사용하는 응용력을 발휘했다. 이렇듯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을 강타했던 중국풍과 일본풍을 우리는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데, 사실 이러한 동양의 사조는 19세기에도 내내 이어져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과 물, 새, 잠자리, 물고기 등을 중요 모티프로 쓰는 동양의 미학은 19세기 산업혁명기를 거쳐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졌다.

요즘 획일화된 아파트 문화와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이 서울 근교 주택에 사는 것을 소망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19세기 말 유럽에서도 일어났다. 자연을 파괴하고 수공예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는 기계문명에 대한 반성에 기반을 둔 아트앤크래프트 운동이 그것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주장한 아트앤크래프트 운동은 중세 수공예 문화에 기반을 둔 운동이다. 뒤이어 탄생한 아르누보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 이제까지의 모든 예술사조를 부정하며 독창성을 강조한 새로운 예술이었다. 아르누보는 자연의 선을 특징으로 하며 미술을 모든 생활에 끌여들여 실용화함으로써 응용예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확고히 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패션, 가구, 유리공예와 보석공예 등 많은 장르에서 아르누보는 여전히 그 창조적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
 
블랙과 그레이 그리고 스틸로 대변되는 현대적 이미지의 대명사가 아르데코라고 하면, 아르누보는 고혹적인 선의 예술이다. 알퐁스 무하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신풍의 여인이 긴 머리를 흩날리는 파스텔 톤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아마도 아르누보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식물의 선에 기초해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을 중요한 모티프로 차용했던 아르누보는 긴 머리의 여인, 백조, 공작, 나비, 잠자리 등 생동감 있는 형태들을 다양한 유기적 곡선을 위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본문이미지
1) 크리스털 핑크 줄무늬 수프 볼(아르누보)
2) 터콰이즈 블루 컴포트(아르누보)
3) 스털링 오버레이 화기(아르누보)
4) 앙증맞은 딸기를 꽂은, 스털링이 오버레이된 설탕기와 크림기(아르누보)
5) 스털링 오버레이 크리스털 팔각 센터피스(아르데코)
6) 랄리크의 크리스털 핀 디시(아르누보)

아르누보의 선두격인 에밀 갈레(1846~1906)는 유리와 도자공예, 가구공예가로서 식물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식물학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자연세계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은 그의 다양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활동 무대였던 낭시는 옛 로렌공국의 주도로서 로코코 예술이 꽃피었던 곳이다. 갈레는 이런 낭시의 로코코 전통을 바탕으로 식물의 유동적인 선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아르누보라는 새로운 예술사조를 창조했다. 유리공예의 에밀 갈레(Emile Galle)와 함께 아르누보를 빛낸 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분야에 있다. 건축의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스탠드로 유명한 루이스 티파니(Louis Tiffany), 장신구 보석공예의 르네 랄리크(Rene Lalique) 등이 있다. 아르누보는 인류가 전쟁의 포화 속에 있게 되는 1차 세계대전을 겪기 직전에 선한 예술사조로서 사람의 손맛을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아르누보의 따뜻한 서정성을 누구보다 잘 나타낸 작가로 르네 랄리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보석과 유리공예의 대가로서 당시까지만 해도 세컨드 아트였던 공예를 순수예술과 같은 반열로 끌어올린 천재 예술가였다. 생활에서 미학을 추구하는 유럽의 멋쟁이들 집에는 아직도 랄리크의 화병과 샐러드볼이 집 안의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건축 분야에 있어서도 아르누보 사조는 당시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르누보적인 곡선을 건물에 응용한 선구자적인 건축가로 벨기에의 빅토르 오르타가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그의 여러 건축 작품을 보노라면 프랑스의 엑토르 기마르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 예술가들이 그의 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한 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가우디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옷 잘 입는 멋쟁이가 되려면 2대가 걸리고, 음식 맛을 알고 음식을 잘하려면 3대에 걸친 음식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두 문화가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 없음을 얘기하는 말이다. 그만큼 문화는 시간이 필요하며, 모방과 융합, 재창조의 오랜 숙성을 거쳐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까운 동양문화가 과거에는 선진 문물로서 먼 유럽을 돌아 현재의 서양 디자인 예술로 피어났고 다시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소중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집에 어떤 문화가 깃들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 삭막하고 복잡한 도시 공간이라는 이유로, 또는 무엇보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