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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19]윌리엄 모리스와 벽 장식

2018-05-20 18:27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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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기로 쓰인 스털링이 오버레이된 샐러드볼(아르누보)
2) 티파니 스프볼과  잔(아르데코)
3) 바카라 물컵과 스털링 오버레이
4) 져그(아르데코)

우리는 참으로 많은 물건을 사용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 많은 물건은 기계로 만든 공산품이 대부분이고, 사람의 손맛이 깃든 수공예품은 아주 가끔 접한다. 요즘에야 기계로 대량생산한 공산품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기계가 낯선 발명품이었기에 사람 손을 타지 않은 공산품의 홍수는 여러 사회문제를 낳았다. 수공예로 먹고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던 시절이었기에 기계는 생계를 가로막는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숲이 잘려 철길과 주택지로 변했고, 기품 있게 만들어진 많은 수공예품은 감성 없이 만들어지는 값싼 복제품으로 대체되었다. 생활용품의 생산이 기계화되기 시작했고, 이로써 수공예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던 장인정신의 명예로운 전통은 점차 사라졌다. 대량생산을 위한 분업 체계가 도입됨에 따라 생산의 일부만 전담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품이 만들어졌다. 완성에 대한 성취감과 인간의 정성은 무시되고 생산 효율성만 강조되면서 장인들은 오히려 기계작업에 종속된 생산과정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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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단 티어드 디쉬(아르데코)
2) 핑크가 아름다운 와인잔(아르데코)
3) 핑크와 초록의 어울림이 싱그러운 물컵(아르누보)
4) 골드와 핑크의 조화가 고급스러운 접시와 잔(아트 앤 크래프트)
5) 크리스탈 화병(아르누보)
6) 크리스탈 우유져그(아르누보)

오랫동안 중세 수공예 제도를 흠모하며 많은 연구를 했던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문제를 중세의 길드제도가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19세기 제작 형식과는 다르게 중세에서는 제품 시작에서 완성까지 전 과정을 한 명의 노동자가 참여함으로써 노동자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기계가 만들어내는 대량생산품에 반대하고 수공예에 의한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인간 감성을 회복하자는 새로운 예술운동을 주장했다. 미술과 공예운동(Art & Craft Movement)으로 불리는 이 운동은 중세와 현대의 공예사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 후 발생한 예술의 혼란을 수습하였고, 건축과 공예에 디자인을 포용하는 현대적 종합예술의 교과서가 되었다.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건축가와 공예가들은 그림, 조각, 건축에 치우쳐 있던 예술 분야에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결합시킨 종합예술을 창조했다. 그동안 건축이 외향을 만드는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면, 윌리엄 모리스의 건축은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 보고 만지는 것에도 세심한 신경을 쏟아부어 건축을 총체적 예술로 거듭나게 했다. 오늘날 윌리엄 모리스를 건축의 아버지라 부르며 많은 건축학도들이 런던 교외에 자리한 그의 신혼집 레드하우스를 성지처럼 방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레드하우스라는 이름은 건물 외관을 붉은 벽돌로 치장한 것에서 유래한다. 붉은 벽돌을 그대로 드러낸 건축 방식은 당시로서는 지극히 대담한 것이었다. 이 집은 현재 윌리엄 모리스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아직도 설립 당시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외관은 모리스가 디자인한 가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이 나는 중세 고딕풍이지만, 내부는 실제 생활의 편의를 중시한 매우 독창적인 집이다. 내부를 장식한 자수와 당시로서는 전위적인 작품이던 스테인드글라스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공예가 건축 공간에서 장식적 기능을 가지며 예술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주택은 그에게 있어 종합예술이었다. 그는 실내 장식과 모든 생활용품을 조화로운 디자인으로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런 맥락에서 주택을 빈 공간과 채워진 공간 두 개가 어우러진 인간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집에서 그는 동료 예술가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시킨 가구와 더불어 벽 장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레드하우스의 벽은 아름다운 창틀이 돋보이는 창과 파스텔 톤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중세 신화적 의미가 담긴 태피스트리로 장식되어 있다. 요즘 유럽풍 수입벽지라고 불리며 비싼 값에 우리 집 안을 장식하는 고급스러운 패턴의 벽지들은 윌리엄 모리스의 아름다운 텍스타일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중세 길드조직처럼 동료 의식으로 맺어진 장인 공동체를 꿈꾸던 모리스의 바람은 1861년 ‘모리스 마셜 포크너’ 사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예술이 사회의 질을 반영한다고 믿었던 모리스는 대중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사회가 곧 바람직한 사회라고 인식했다. 그는 길드조직을 통해 일반 서민이 공예품 제작에 참여했던 중세시대가 바람직한 사회체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모리스컴퍼니라는 단독 회사로 바뀐 그의 회사는 실내 장식물, 가구 소품, 벽지, 텍스타일 등을 생산했다. 벽지와 텍스타일은 모리스가 가장 주력한 부분으로 그는 오늘날 이 분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회사 설립 취지서에는 “주택, 교회, 공공 건축에 사용하는 회화 또는 색채의 조합에 의한 벽면 장식”이라고 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모리스는 특히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의 식당 디자인 의뢰를 받고 당시로서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대담한 색인 녹색으로 벽을 장식함으로써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지금은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의 녹색식당으로 불리며 카페테리아로 쓰이고 있어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그곳을 방문한다면 윌리엄 모리스와 관련된 역사를 떠올리며 그의 디자인과 벽지에서 영감을 얻기 바란다. 요즘 너나없이 단색 위주의 모던함에 익숙해져버린 우리 감각에 인간미 넘치는 따뜻함과 다채로운 감성을 다시금 불러일으킬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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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쇠 장석이 아름다운 조선 반닫이와 됫박을 프레임으로 만든 조선시대 수베개 액자
2) 봄이 아름다운 김덕기 선생님의 작품

종합예술에 대한 모리스의 독창적인 사상은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미술교육기관 설립에 불을 지피며 오늘날 창의적인 디자인 교육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미술공예운동은 유럽과 미국에까지 많은 영향을 주며 새로운 예술창조 양식에 기여했다. 귀족 위주의 예술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로서, 예술가와 대중은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여러 장르에 종합예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모던함이 흑백의 단순함으로 귀결되고 있는 요즘, 많은 다채로움과 아름다운 패턴들이 구식으로 여겨져 사라지고 있다. 모든 집의 벽 장식은 회백색 위주의 단색으로 칠해지고 획일적인 단순함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윌리엄 모리스가 추구하던 수공예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아름다운 패턴의 예술적 벽 장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그가 강조하던 벽 장식은 집 안 꾸미기에서 가장 어렵고 정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집 안에 들어서면 늘 대하는 것이 벽면이기에 가족사진이나 평범한 풍경 사진만으로 특색 없이 꾸며놓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벽 하나쯤은 취향이 담긴 소품이나 추억이 깃든 사진 그리고 천재 디자이너 모리스가 남긴 아름다운 패턴의 벽지로 꾸밀 여유와 안목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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