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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10]조용히 우는 사람

2017-12-09 09:37

글 : 이경석 소설가. 2016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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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경은의 말에 강빈은 깜짝 놀랐다. 묻는 말에 짧게 대답하는 것 말고는 먼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예쁘다니.

“진짜 나무로 만들어서 그런가. 이게 진짜 트리네.”

백화점 출입문 앞에는 구상나무 생목生木에 갖은 장식과 조명을 단 크리스마스트리가 서있었다. 어른 너덧 명 키 높이는 될 법한 높다란 나무였다. 조금 이른 느낌이었지만, 근사한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로 백화점 부근은 제법 축제 분위기가 났다. 조명 불빛이 깜박일 때마다 경은의 깊은 눈동자도 반짝였다. 웃고 있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평온한 얼굴이라고 강빈은 생각했다. 경은은 붙박인 듯 한참을 선 채로 색색이 변하는 불빛과, 장식과, 나무를 구경했다.

“예뻐? 이런 걸 좋아하는지 몰랐네.”
“크리스마스트리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그럼 있지. 스님들이라든가….”

강빈의 맥쩍은 농담에도 경은은 별 반응이 없었다. 바람이 찼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게시해놓은 시구에 강빈의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시라고는 평소 단 한 줄도 읽는 법이 없었지만 그랬다. 눈에 띄었다기보다는, 문장이 눈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울음소리가 멎었을 때, 강빈은 경은이 더 이상 울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말라버릴 만큼, 울음소리가 사그라질 만큼 실컷 울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경은은 밤낮으로,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그동안 서너 번 계절이 바뀌었다.

하지만 강빈의 그런 생각은 영 틀린 것이었다. 그건 그렇게 끝나버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언젠가부터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줄어든 말수처럼 울음소리도 잦아들어버린 것 같았다. 오디오 장치를 끈 텔레비전 화면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해도 집 안은 고요했다. 강빈은 그걸 한참 만에 알아차렸다. 시인의 표현대로, 경은은 계속 울고 있었다.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

생각보다 커다란 크기에 강빈은 적잖이 놀랐다. 나무 모형이 든 길쭉한 종이상자는 강빈의 키를 훌쩍 넘어섰고 무게도 꽤 나갔다. 감싸 안기에도, 옆구리에 끼기에도 불편한 크기였다. 전구며 장식 소품이 든 상자도 작지 않았다. 경은을 놀라게 해주려는 생각에 회사로 주문한 게 후회됐다.

며칠 동안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플라스틱 모형이지만 최대한 전나무를 그럴싸하게 따라 만든, 경은이 한참을 눈에 담았던 진짜 나무 같은 제품을 찾고 싶었다. 어렵게 찾은 화면 속 크리스마스트리는 제법 나무 같아 보였다. 거기에만 집중한 게 실수였다. 어쩐지 가격이 꽤 나간다 싶었는데 이렇게 커다란 것일 줄은 몰랐다.

“뭐예요?”
“아, 크리스마스트리요.”
“아… 네….”

동료들은 하나같이 물었고, 하나 같은 반응이었다. 말꼬리를 흐리는 모양새가 어쩐지 그런 상황에도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 거냐고 묻는 것 같아 강빈은 목울대가 뜨끈해졌다. 상자를 제대로 들지도, 그렇다고 끄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회사를 나섰다. 버스정류장까지 옮기고나니 겨울 찬바람에도 이마에 송골, 땀이 맺혔다. 들고 버스에 올라타는 것도 문제였다. 시 외곽의 오래된 신도시를 오가는 광역버스는 이 시간에 늘 만원이었다. 버스 두 대를 그냥 보내고나서야 강빈은 승객이 줄어들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상자 두 개를 안고 끌며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

“너 미쳤어?”

경은은 버럭 화를 냈다. 악을 쓴 다음에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우리가 지금 그런 거나 만들고 기분 낼 처지냐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 고민하고 신경 써 준비한 걸, 이걸 들고 오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니 강빈도 울화가 치밀었다.

“네가 예쁘다고 해서 산 거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홧김에 밀쳐버린 기다란 상자가 기울며 빨래건조대를 함께 쓰러뜨렸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수건이며 옷가지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선반 위에 뒀던 작은 꽃병이며 연필꽂이도 함께 휩쓸려 뒹굴었다. 둘 다 망연히 그걸 지켜봤다. 좁은 거실이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에이, 씨발.”

강빈이 상자를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개새끼.”

경은이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집 안은 다시 적막했다.

말없이 서있던 강빈이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은은 울고 있을까, 강빈은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은은 소리 내지 않고 우니까. 열세 평 낡은 빌라에선 어디에서든 집 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강빈은 문득, 경은이 속으로 울게 된 건 어쩌면 자신을 배려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용히 울 수밖에 없는 거라고.

“있잖아.”

방 안에선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듣고 있다는 걸 강빈은 알았다.

“아무리 슬퍼도 말이야, 늘 그렇게 한결같이 슬프기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우리도 예쁜 걸 보면 아, 예쁘다. 좋다. 그럴 수 있는 거잖아. 살아야하니까 억지로 밥을 욱여넣다가도 어떤 날은 아, 맛있네.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경은아, 그래도 되는 거잖아? 어?”

*

접혀 있던 가지 하나하나를 다 펼쳐놓고보니 나무 모형은 생각보다 훨씬 더 컸다. 어디 널따란 예배당 한편에나 세워둘 만한 크기였다. 윗부분은 천장에 닿아 구부러졌다. 아직 치우지 못한 아기 침대며 보행기가 한편을 차지하고 있어서, 좁은 거실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강빈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보자고 생각했다. 꼬마전구 하나하나에 속이 빈 원형 망을 씌웠다. 불을 켜면 근사할 게 분명했다. 헝겊으로 만든 눈사람과 사슴, 산타클로스 모형도 걸었다. 별 모양 장식은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거렸다.

어느새 방문이 열려있었다. 경은은 문지방 앞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채로, 강빈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흘깃 눈이 마주쳤지만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무 크기에 비해 장식이 부족했다. 듬성듬성 성긴 공간이 볼품없어서, 강빈은 자꾸만 장식을 떼었다 옮겨 붙였다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경은이 뭔가를 들고 나와 나무에 걸기 시작했다. 작은 양말이었다. 강빈은 순간 몸이 굳었다. 가만히 경은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형형색색의 앙증맞은 양말들이 나무에 걸렸다. 한 번 신겨보지도 못한 새것들이었다.

“예쁘지.”

경은이 말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응, 잘 어울린다. 딱이네. 딱이야.”

강빈은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밥은 방에서 먹어야겠다.”
“어, 그래야겠다.”

경은이 벽으로 손을 뻗어 형광등 스위치를 내렸다. 달빛도 들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이 집  안 가득 들었다. 달칵, 강빈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린 조명에 전원을 넣었다. 메리크리스마스, 둘이 함께 인사를 건넸다.■

*소설 속 시구는 신경림 시인의 시 ‘갈대’에서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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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임민들레  ( 2017-12-09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0   반대 : 0
왜 일까여 .. 조용한울음에 동참하고싶은것은... 눈물이 막 앞을 가리네.. 그래요. 산사람은 살아야지요. 그렇게 가슴 한켠에 고이 접어 두었다 무게가 가벼워 질때쯤에 한번 더 꺼내보고 상처도 도닥거리며...
마음이 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