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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09]UFO를 봤다니까요

2017-11-04 10:43

글 : 이경석 소설가. 2016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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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의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아무리 정색하고 말해본들 믿어줄 이는 없겠지만, 나는 UFO를 봤다. 그렇다. 당신이 방금 상상한 그거, 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약자, 미확인 비행 물체, 외계인이 타고 날아다닌다는 그거. 이쯤에서 벌써 미간을 찌푸리며 페이지를 넘기려는 당신, 그 마음 잘 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다고 해서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건실한 십 육 년차 직장인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고, 올해 일곱 살이 된 딸아이의 아버지다. 게다가 이런, 전통과 공신력을 자랑하는 여성지의 지면을 빌려 헛소리나 늘어놓을 만큼 할 일 없고 실없는 사람도 아니다. 이게 비록 소설이라 할지라도.
 
*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란, 청명한 하늘이 눈부신 가을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소슬하지만 한낮엔 제법 따스한,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에 유의하라는 뉴스가 연일 빠지지 않던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오후 한 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고, 나는 업무상 지인과 점심식사에 곁들인 반주 탓에 불콰한 얼굴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식당을 나와 걷다가 광화문네거리 교보생명 빌딩을 지나고 세종문화회관 방면으로 막 횡단보도를 건넌 참이었다. 방향을 틀어 코리아나호텔 방면의 건널목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각선으로 보이는 광화문우체국 건물 옥상 위에 그것이 나타났다.

희붐한 코발트색의 빛 덩어리였다. 경계는 희미했지만 타원형의 그것은 건물 옥상을 가득 메울 만큼의 너비였고 옥상 위로 점차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처음엔 술기운에 하늘이 일그러져 보이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네거리 각각의 횡단보도 경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 일대를 지나던 행인들, 멈춰선 차량에 타고 있던 이들 모두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위가 웅성댔다. 저게 뭐지, 저마다 수군거렸고 하나같이 눈을 떼지 못했다.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오래전 한 유명 가수가 앨범 발매를 기념해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벌인 이벤트였다. 누가 봐도 UFO처럼 생긴 비행 물체 여럿이 하늘에 떠다녔다. 하지만 저건 그것과는 달라 보였다. 가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서서히 광화문우체국 옥상에 내려앉았고, 잠시 그대로 머물렀다. 잠시 후, 마치 하늘이 집어삼킨 듯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올라 짙푸른 가을 하늘 속으로 사라졌는데, 때마침 초록색 보행신호가 점등됐고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려 길을 건너고 갈 길을 갔다.

나는 사실 그걸 목격한 것보다 이게 더 거짓말 같았다. 아니, 이런 걸 보고도 그냥 가던 길을 간다는 말인가. 길을 건너며 연신 뒤를 돌아보던, 근처 유명 어학원 가방을 짊어진 어린아이가 UFO다, 하고 외쳤지만 늦었는데 또 딴짓이라며 제 엄마에게 호되게 등짝을 얻어맞았을 뿐이었다. 사실 나라고 별다른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잠깐 휴대전화를 들고 생각했지만 간첩 신고는 일일삼, 화재 신고는 일일구, UFO는,에서 생각이 멈췄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다들 바쁘니까, 그러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맑은 하늘이 어느새 끄느름해지더니 퇴근 시간에 가까워선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우산은 챙겨 나오지 않았고, 평소엔 사무실에 두어 개씩 굴러다니던 임자 없어 뵈는 우산도 비 오는 날이면 가뭇없었다. 버스정류장까지는 백오십여 미터, 아직 빗줄기가 굵지 않으니 후다닥 뛰면 많이 젖지 않고 캐노피 아래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버스정류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우산이 있든 없든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은 작은 지붕 아래 어깨를 맞댄 채 모여서 올라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에 흙냄새가 섞여왔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무용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목을 쑥, 뽑아봤다. 그때였다. 익숙한 선율이 들려왔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봤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은 노란 머리 외국인 사내의 품에 우쿨렐레가 들려 있었다. 오버 더 레인보우, 주디 갈런드의 천진한 낙관이 비 내리는 광화문네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뜬금없이 울려 퍼졌다.

흘끔 쳐다보고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코를 박거나 버스가 오는 방향을 주시하는 이들과 달리, 나는 사내 쪽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내와 눈이 마주친 나는 엄지손가락까지 척, 치켜세웠다. 사내는 신이 났는지 아예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썩 근사한 목소리였다. 그의 연주와 노래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외면하는 척하고 있지만, 비 오는 밤의 오버 더 레인보우라니, 모두가 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보고도 못 본 척, 우린 그렇게 바쁘고 쑥스럽고 비가 내려서, 그저 버스가 올 방향을 쳐다보며 데면데면, 그렇게.
 
*

끝내주는 연주였어. 고마워, 그래도 박수를 쳐준 건 당신이 유일해. 여기 있던 모두가 당신의 연주를 즐겼을 거야. 그건 분명해. 그런가.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누군가 인상을 쓰고 이렇게 말했겠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는) 시끄러워! 당장 그만둬!(함께 웃음) 맞아. 버스정류장에서 이런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건 행운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잘 못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더 그런 것 같아. 놀랍다, 근사하다, 행복하다, 속으론 생각해도 겉으로는 잘 드러내지 않아. 나도 느꼈어, 한국 사람은 좀 그런 것 같아. 왜 그렇지? 글쎄… 바빠서?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넌 좀 다른 것 같아. 아니, 나도 똑같아. 사실 난 오늘 낮에 UFO를 봤어. 정말? 그거 대단하다. 하지만 그냥 지나갔어. 바빠서? 응, 바빠서. 저런, 내가 탈 버스가 왔어. 아, 그래? 잘 가. 또 보자. 그래, 그땐 UFO 얘기를 들려줘. 그래, 안녕.
 
*

UFO를 보고, 버스정류장의 악사를 만난 게 정확하게 언제였는지는 아스라하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작은 일에 호들갑을 떨게 됐는지 모른다. 그 후론 두 번 다시 UFO도,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도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변했고, 이전보다는 조금 재미있는 사람이 된 것도 같다. 당신 역시 UFO를, 비 오는 밤의 악사를 봤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저 봤고, 지나쳤고, 잊어버렸을 뿐이다. 당신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쓸모없는 글을 읽느라 시간을 허비했다고 화를 낼 수도 있고, 신경질적으로 페이지를 넘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다고 진실이 거짓이 될 리는 없다. 이것은 소설이고, 이야기는 참이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단언컨대,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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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lmate  ( 2017-11-05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1   반대 : 0
신기하네요...^^ 저도 여러번 봤는데..^^ 얘기하기가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