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COLUMN
  1. HOME
  2. COLUMN

오드리 헵번의 미공개 이야기

2017-10-21 14:42

정리 : 전영미 기자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오드리 헵번의 아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의 개인적인 이야기, 요리법, 미공개 사진을 담은 회고록 <오드리 앳 홈>이 출간됐다. 오드리 헵번의 알려지지 않은 키친 테이블 바이오그래피.

자료제공 <AUDREY AT HOME 오드리 앳 홈>(오퍼스프레스)
초콜릿 케이크 : 달콤함에 깃든 자유
 
본문이미지
로마 근교 라 비그나에서 털복숭이 친구들과 놀고 있는 어머니, 1955년

어머니는 초콜릿이라면 죽고 못 사는 분이라 항상 거실 서랍장에 초콜릿을 보관해두었다. 달콤함의 유혹 앞에서는 발레리나의 절제력도 언제나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이제는 맛있는 초콜릿이 한 상자 생기면, 아마 한 2시간은 갈 거예요. 예전엔 마지막 초콜릿이 사라질 때까지 쉴 새 없이 한꺼번에 먹어치웠거든요.” 언젠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미세하게나마 발전했음을 자랑스럽게 주장하며 했던 말이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초콜릿 탐닉이 덜해지긴 했지만, 저녁마다 초콜릿을 조금씩 맛보는 즐거움을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초콜릿은 ‘슬픔을 날려버리는’ 데 도움이 되었고,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생긴 스트레스를 풀려고 ‘손톱이나 빵, 초콜릿’을 먹던 시절부터 지속되어온 습관이라고 어머니는 설명했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어머니에게 어느 네덜란드 군인이 초콜릿 바 7개를 주었던 날, 어머니는 새로 결성된 유엔군이 가져다준 농축 우유로 만든 음식과 함께 그 초콜릿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탈이 났다. 뱃속이 너무 오랜 기간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콜릿은 어머니의 부엌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콜릿 케이크는 대개 스토브를 독점하는 요리사 조반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가 손수 만들기를 좋아하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휘핑크림을 곁들인 초콜릿 케이크
10∼12인치(25∼28cm) 크기
케이크 1개 분량, 12인분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이 케이크는 얇고 촉촉하지만 얇은 크러스트가 생겨야 한다.
식탁에 올리기 직전에 슈거파우더를 뿌리고 집에서 만든 휘핑크림이나 바닐라아이스크림을 다른 접시에 담아 함께 내놓는다.

무가당 다크 초콜릿 300g, 잘게 부숴서 사용
우유 ¼컵(60㎖), 초콜릿이 부드러워질 정도 소량
무염 버터 1조각(120g), 잘게 잘라서 그리고
팬에 바를 버터는 별도로 준비
달걀 8개, 노른자와 흰자 분리
설탕 1컵(200g)
팬에 두를 밀가루
슈거파우더

오븐을 200℃로 예열한다. 10∼12인치(25∼28cm) 베이킹용 둥근 팬에 버터를 바르고 밀가루를 칠한다.

초콜릿에 우유를 부어 중탕한다. 초콜릿이 녹으면 버터를 넣고 완전히 잘 섞는다. 불을 끈 뒤 달걀노른자 8개를 넣고 섞는다. 별도의 그릇에 달걀흰자를 넣고 조금씩 설탕을 추가하며 휘저어 거품이 단단해질 때까지 휘젓는다. 머랭 치기가 끝난 달걀흰자를 녹인 초콜릿에 살살 섞어 넣는다. 준비해놓은 팬에 붓는다.

예열한 오븐에 30분간 굽는다. 오븐을 끄고 문을 연 상태로 몇 분간 케이크를 놔둔다. 오븐에서 꺼내 10분쯤 식힌 뒤 팬에서 케이크를 분리한다. 식탁에 내가기 전에 완전히 식힌다. 슈거파우더를 뿌리고 휘핑크림이나 바닐라아이스크림을 곁들인다.
 
 
 
스파게티 알 포모도로 : 레시피 하나에 집을 담다
 
본문이미지
라 페지블에서 여름 가든 파티, 1970년대

어머니는 한 가지에 중독이 심했다. 어머니는 파스타 없인 살 수 없는 분이었다. 집에서도 늘 먹는 파스타를 어머니는 굳이 음식점에 가서도 주문해 먹었다. 그들이 공들여 짠 야심찬 메뉴를 내밀면 어머니는 약간 당황해하며 말했다. “너무 복잡하지 않다면, 간단하게 올리브유 약간 넣고 포모도로 파스타를 만들어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어머니의 친구 안나 카탈디 여사는 어머니와 알게 된 초창기에 함께 했던 저녁 식사를 기억한다. 안나는 ‘맑은 수프’를 대접 받았는데 우아하기는 했지만 맛은 없었다. 그런 의례는 오래가지 않았다. ‘맑은 수프’처럼, 새댁이었던 오드리 헵번 페러의 요리책에서 내가 발견했던 거의 모든 요리는 차츰 사라졌다. ‘로마의 휴일’처럼 보냈던 날들이 매일매일 로마에서 보내는 일상이 되자, 어머니는 부자연스럽고 복잡한 요리법에서 벗어나 좀 더 단순하고 맛있는 요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요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드리 헵번은 엄마가 되기 위하여 영화계를 떠났다. 화려한 사교계를 벗어나 친구들만, 그것도 진짜 친구들만 집으로 초대했다. 포모도로 스파게티는 “자, 여기가 내 집이고 난 이렇게 살아요. 나한테 다른 걸 기대하진 말아요”라고 말하는 일종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파스타를 많이도 드셨다.
 

스파게티 알 포모도로
4인분

완숙 토마토 1.5㎏, 꼭지 떼고 대충 깍둑 썰기
양파 1개, 껍질 벗겨 통째로
셀러리 1줄기, 깨끗이 다듬어서 통째로
당근 1개, 깨끗이 다듬어 통째로
바질 잎 6장, 다져서 접시에 장식할 통짜 잎은 별도로 준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소금, 설탕 약간
통후추 가루
스파게티 면 500g
파르메산 치즈 가루

큰 프라이팬에 토마토와 양파, 셀러리, 당근을 넣고 센 불에 올려 뚜겅을 덮어 10분간 채소가 무르도록 익히는 것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뚜껑을 열고 나무 숟가락으로 저어주면서 10~15분간 계속 더 끓인다.

불을 약-중 불로 낮추고 바질 잎과 올리브유를 약간 넣는다. 나폴리 사람들은 토마토 소스가 ‘피피오타’일 때, 다시 말해 거품에서 물기를 뿜는 대신 소스에서 작은 분화구가 솟을 때 다 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불에서 내려 가장 큰 채소 덩어리들은 건져내고 소스를 식힌다.

일단 조리가 끝나면, 토마토소스와 채소 조각들을 알맞은 점도의 퓌레 상태로 만들기 위하여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된 분쇄기가 필요하다. 분쇄기에 내리면 쓴맛을 내는 토마토 껍질과 씨도 제거된다.

올리브유를 몇 방울 떨어뜨리고, 씁쓸한 맛은 설탕을 약간 넣어 조절한다.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스파게티 면을 알덴테로 삶으려면 큰 냄비에 찬물을 붓고 센 불에서 끓여야 한다. 물이 끓으면 굵은소금 한 줌과 파스타 면을 자르지 말고 그대로 넣는다.

면 삶기가 끝나면 냄비를 불에서 내린다. 체에 밭쳐 물기를 뺀 파스타 면을 소스 프라이팬에 넣고 파르메산 치즈를 뿌린다. 프라이팬을 흔들어 잘 섞은 뒤 접시에 담아 바질 몇 장으로 장식한다.
 
 
 
터키식 농어 요리 : 나의 아버지에게 빠지다
 
본문이미지
이탈리아 지글리오에 있는 가에타니의 집에서, 1968년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타일처럼 진한 파란색과 하늘색 타일이 뒤덮인 이스탄불 판델리 레스토랑 벽에는 나의 부모님 사진도 걸려 있는데, 두 분이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활짝 웃고 있다. 아버지는 신중하게 메뉴판을 보는 중이다. 아버지는 ‘레 바르 파필로테(양지에 싸서 찐 전통적인 농어 요리)’를, 어머니는 좀 더 모험적으로 요구르트를 곁들인 케밥을 드시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어머니는 사랑에 빠지면 조금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1954년 <로마의 휴일> 런던 시사회에서 그레고리 펙이 어머니에 멜 페러에게 소개한 이후, 두 사람은 다섯 달 뒤에 결혼했다.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추세로 행동했다. 여름에 터키에서 만나 바다 위에서 번개 같은 연애기간을 거쳐 1월에 스위스에서 전격 결혼, 나는 그다음 해에 태어났다.
 

판델리의 양피지에 싼 농어 요리
4인분

방울토마토 20개, 4등분
샬럿 양파(중) 1개, 잘게 다져서
생 파슬리, 바질, 몇 줄기씩 다져서
감자 4개, 삶아서 껍질 벗겨 1.2cm 두께로
썰어서 준비
생타임 8줄기
농어 살 4조각, 총량 약 1kg
천일염
통후추 가루

오븐을 220℃로 예열한다.

자른 방울토마토와 샬럿 양파, 파슬리, 바질을 섞는다. 은박지 8장이 필요하다. 4장을 펼쳐놓는다. 은박지마다 둥글게 썰어놓은 감자와 타임 줄기를 깔아놓는다. 감자와 타임 위에 농어 살을 올려놓고, 그 위에 소금, 후추, 토마토와 허브 섞은 것을 올린다. 각각의 ‘꾸러미’를 은박지로 덮어 소스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봉하되 생선 위쪽으로는 은박지에 들러붙지 않도록 공간을 남겨둔다.

약 20분간 오븐에서 굽는다.

농어를 은박지째 접시에 담아 식탁에서 직접 조심스럽게 꾸러미를 연다.
 
 
 
라 페지블 : 꽃, 과일 그리고 인생의 약속
 
본문이미지
라 페지블 정원에서 꽃을 따고 있는 어머니, 1971년

나의 어머니는 항상 밑바닥부터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80년대 중반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파산을 두려워하던 동반자 로버트에게 어머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그럼 어때요? 혹시라도 모든 걸 잃는다 해도 우린 정원이 있잖아요. 감자를 키워서 먹으면 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이제 우리 밭에서 나는 건…”이라고 말하며 흡족하게 과일과 채소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 어린 나에겐 과도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모든 생물의 탄생과 재탄생이 작은 기적이었다. 가족을 위해 어머니가 농사를 짓는 집에 딸린 정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식탁엔 초록 채소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고, 크림 토마토 수프 역시 정원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었다. 청자두부터 길쭉한 아바테 배, 엄청 많은 사과에 이르기까지 과일도 풍성했다. 특히 사과는 주스, 잼, 고기구이용 소스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잼 용도로는 서양 자두, 동양 자두, 블랙베리, 오디, 마르멜로, 검은 체리, 붉은 체리가 다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 식사용으로는 붉은 체리잼을 더 좋아했다. 대황의 일종인 루바브 밭도 있어서 4월과 5월에 수확해 콤포트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곳엔 꽃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영국에서 광고 가족들과 여름을 보내면서 꽃 이름을 배웠다. 어머니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위해 아껴두었던 정성을 다 바쳐 헌신하듯 꽃을 가꾸었고, 기적을 일으키는 조반니의 퇴비로 영양분을 주었다. 어머니는 늘 온 집 안을 꽃다발로 채우고 싶어 했다.
 

비시스와즈
4인분

양파 1개, 껍질 벗겨 가늘게 채썰기
대파 밑동 2대(하얀 부분)
무염 버터 3½큰술(50g)
닭 육수 1ℓ
감자 2개, 깍둑썰기
쪽파 1큰술(3g), 잘게 다져서
신선한 육두구 가루 약간
우스터소스
우유 크림 ½컵(120㎖)

가늘게 채 썬 양파와 대파 밑동을 아주 약한 불에서 15분간 버터에 볶는다.

육수를 붓고 감자와 쪽파, 육두구, 우스터소스를 넣어 감칠맛을 낸 다음 30분 더 끓인다. 크림을 붓고 모든 재료를 블렌더에 넣어 갈아준다. 최소한 4시간 이상 냉장고에서 식힌다. 완벽주의자들은 하루 전에 준비할 것을 권한다.
 
 

 
<AUDREY AT HOME>
 
본문이미지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배우이자 유니세프 활동으로 봉사하는 삶을 실천한 오드리 헵번. 그녀의 아들 루카 도티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오드리 헵번의 개인적인 이야기, 요리법, 미공개 사진들을 담은 식탁전기(食卓傳記)다. 그녀의 일생이 깃든 50가지 레시피와 최초로 공개되는 250여 점의 사진들로 우리가 익히 알아온 배우 오드리 헵번이 아닌 한 명의 여성이자 어머니, 인간으로서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루카 도티. 오퍼스프레스.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