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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08]그게 뭐가 재미있다고

2017-10-14 11:08

글 : 이경석 소설가. 2016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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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 살,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꼬마 너덧이 뛰고 있었다. 어떤 규칙을 정해놓고 노는 것도 아니었고, 주혜의 눈엔 그저 마구잡이로 서로를 쫓아 뛰는 것으로만 보였다. 들판에 풀어놓은 한 무리 강아지 같다,고 주혜는 생각했다. 꺅꺅 새된 소리를 질러대며 무람없이 내달리던 아이들은 어느새 멈춰서 그네를 타거나 잠깐 사라졌다 싶으면 조합놀이대에 연결된 미끄럼틀에서 주룩, 미끄러져 내리곤 했다. 저렇게 무작정 뛰는 게 왜 재미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예쁘죠? 아이들.

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나 지을 법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지켜보며 희준이 물었을 때, 주혜는 아이들 대신 그런 희준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들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보고 있으면 좋지 않아요? 좋아한다기보다는… 동경하는 것에 가깝죠. 아이들을.

-동경이요? 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뭐 그런 건가요?

-비슷해요. 나한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그걸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걸 일깨워주거든요. 잃어버린 걸 되찾아주는 건 귀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귀한 존재죠.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희준이 하는 말을 듣던 주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글 짓는 사람들이 좀 별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지만 실제 마주하니 여간 낯선 것이 아니었다. 희준이 쓰는 말의 대다수는, 영 이상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일상적인 대화와는 반 발짝쯤 떨어진 느낌이었다. 되물어봤자 스스로만 자꾸 멍청해지는 기분이어서, 몇 번 겪은 뒤로 주혜는 그냥 그러려니, 넘겨버리는 편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좀 물어봐야겠다, 주혜는 마음을 굳혔다. 이렇게 만남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요, 희준 씨.

-네?

-아이들을 동경한다는 건 잘 알겠는데요.

그제야 희준의 눈길이 주혜의 눈에 가 닿았다.

-우리는 왜 매번 이런 곳에서 데이트를 하는 거죠? 여긴 꼬맹이들이나 노는 곳이잖아요.

*

글 쓴다고 직장 때려치우고 사 년 만인가? 올해 초에 신춘문예에 당선돼서 소설가가 됐대. 집이 좀 살아. 지하철역 근처에 사 층짜리 건물이 있다니깐, 외아들이고. 당장은 벌이가 없지만 그 정도면 평생 걱정 없지 뭐. 게다가 혹시 알아? 베스트셀러라도 써낼지.

됐다는데도, 옆자리 지은 언니는 끈질겼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권유에 주혜가 결국 한번 만나나보자, 결심한 건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내년이면 서른아홉이라는, 마흔은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모종의 불안도 등을 떠밀었다. 사실 소개가 들어온 것도 오랜만이었다.

희준을 처음 본 건 지하철역이었다. 카페도, 레스토랑도 아니고 아차산역 4번 출입구 앞에서 만나자던 희준은 처음 만난 주혜를 데리고 다짜고짜 어린이대공원으로 향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그게 또 뜻밖에 신선했다고 해야 하나, 주혜는 그런 심정으로 피식 웃으며 희준을 따라나섰다. 동물나라에서 미어캣과 작은발톱수달, 일본원숭이와 침팬지, 캥거루와 얼룩말을 구경했고, 재미나라에서 놀이기구를 타자는 걸 주혜가 극구 사양했고, 대신 자연나라로 향해 야생화를 구경하며 함께 걸었다. 가는 곳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구경 온 꼬마들과 마주쳤다. 굽 있는 구두를 신고 한참을 걸은 주혜의 발이 홧홧해지고, 그게 슬슬 짜증으로 바뀔 때즈음 둘은 벤치에 앉았다. 희준이 어디론가 향하더니 양손에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돌아왔다. 주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초콜릿 맛이었다.

-놀이공원을 좋아하시나 봐요.

-좋죠. 볼거리도 많고, 재미있잖아요. 주혜 씨는 안 좋아하세요?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와봤네요. 참, 소설 쓰신다면서요?

-네. 소설 좋아하세요?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창작하는 분들,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저 같은 사람은 엄두도 안 나네요.

-주혜 씨도 예술가예요.

-네?

-인간은 누구나 원래 예술가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주혜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안 희준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아이들 보이시죠?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역할을 정해서 연극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예술가였던 거죠. 크면서 그걸 잊어버린 것뿐이고요. 

-아… 네….

-참, 그런데 그거.

-네?

- 콘이요.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될까요?  

*

또래가 아니라 한참 어린 동생과 만나는 기분이 종종 들었다. 근사한 곳에서 식사도 하고 어른답게, 그렇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자, 했다가도 또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어서 주혜는 쉬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지은 언니의 끊임없는 부추김도 한몫했다.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게 뭐가 이상하니? 애들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더라. 고작 몇 번 만나보고 어떻게 사람을 알겠니. 조금 더 만나봐. 아주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라며…. 어느새 한낮의 뙤약볕은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아이들 노는 곳은 그만 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다음 날 저녁, 희준이 불쑥 주혜의 회사에 찾아왔다. 근처 주차장에 세워둔 고급 승용차를 본 주혜는 내심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도 잠시, 희준이 차를 몰아 간 곳은 멀지 않은 곳의 한 초등학교였다. 의아해하는 주혜의 손목을 잡아끌고 희준은 학교 운동장에 섰다. 화가 나는 건지, 기가 막힌 건지 모를 기분에 주혜는 피식, 웃음이 났다. 해 질 녘 너른 운동장이 휑했다.

-초등학교라. 연령대가 조금은 올라갔네요? 여긴 왜요?

-놀이터는 아무래도 좀 좁아서요.

-네?

그때였다. 희준이 손바닥으로 쩍, 소리가 나도록 주혜의 등을 후려쳤다. 그러곤 달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달아나던 희준이 뒤돌아서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저런 또라이 새끼가… 하마터면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잡아봐요, 잡아봐. 그 순간, 주혜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될 대로 되라 싶기도 했고, 짜증도 좀 나는 것이, 일단 저 자식을 쫓아가 잡고 봐야겠다, 뭐 그런 복잡한 심정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게 스친 것이 등까지 떠밀어 어쨌든 주혜는 이를 앙다문 채 달렸다. 잡히면 죽을 줄 알아요! 오, 잘 뛰네요. 잡아봐요. 잡아봐! 한낮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뜨스한 운동장을 달리다 보니 이마와 등줄기엔 금세 땀이 솟았다. 참 오랜만의 뜀박질이었다. 양다리가 무지근해왔지만 주혜는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무작정 뛰는 게 왜 재미있다는 건지 어쩐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기분 까지도. 저물녘 어스름에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했다. 주혜는 자꾸 웃음이 났고, 희준을 좀 더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자가 길쭉해졌고, 둘은 아마도 그것마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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