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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06]혼술

2017-08-20 10:10

글 : 이경석 소설가. 2016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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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40대 회사원 세 명이 다른 손님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폭행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폭행당한 남성들은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이 중 한 명은 생명이 위급한 상태입니다.

어젯밤 9시 30분경 서울 중구의 한 술집, 세 명의 남성이 술을 마시고 있는 테이블로 다른 남성이 접근합니다. 곧이어 접근한 이 남성이 무언가를 휘두르고, 흉기에 맞은 남성이 머리를 감싸 쥐고 쓰러집니다. 쓰러진 뒤에도 이 남성의 폭행은 계속됩니다.

-쇠망치였어요.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다가와서 머리를 내리쳤어요. 워낙 순식간이라….

이들을 망치로 폭행한 남성은 54세 최모 씨. 폭력 사고를 감지한 지능형 CCTV에 추적돼 도주 십여 분 만에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최 씨는 조사 과정에서, 다들 외롭고 힘든데 저들만 행복해 보여서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즘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이른바 ‘어울림 혐오’ 범행입니다. 경찰은 범죄 예방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갖는 걸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럿이서는 되도록 술집에 가지 마시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자택이나 다른 독립된 공간에서 모이실 것을 권합니다. 올해 전국에서 벌어진 어울림 혐오 범죄는 총 119건으로 폭력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만큼….
 

*
「술 따라줄 사람이 필요하면 1번, 짧은 대화를 원하면 2번을 눌러주세요. 단, 대화는 5분을 넘길 수 없고 함께 술을 마시지는 않습니다.」

1번 버튼을 누르자 계산대 앞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종업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베이지색 면바지에 갈색 로퍼, 흰색 티셔츠 위에 감청색 재킷을 걸친 것이 술집 종업원답지 않게 말쑥한 인상이었다. 하긴, 지저분한 복색과 손으로 따라주는 술을 달가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K는 그런 생각을 하며 빈 소주잔을 집어 올렸다. 종업원은 두 손을 모아 공손한 자세로 술을 따르고는, 말없이 제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박았다. 희고 길고 가느다란, 남자답지 않게 예쁜 손가락이 잔상처럼 기억에 남았다. 고마워요, 인사말은 뒤늦게 K의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버튼을 눌러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탓이겠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기를 바란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도 아까 본 뉴스 탓이겠거니, K는 생각했다. 망치로 사람 머리를 내리쳤다니, 위급하다는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K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번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금 망설인 끝에 2번 버튼을 꾹, 눌렀다.

-버튼을 누른 건 처음 아니세요?

-그걸 알아요? 뜻밖이다. 맞아요. 오늘은 용기를 내봤어요.

-용기까지 필요한가요. 하긴, 누르는 분이 많지는 않죠.

-그렇죠?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세상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됐을까요.

-어떤?

-이런 거요. 불과 30년 전만 해도 다들 모여 앉아서 술을 마셨거든요. 시끌벅적 떠들어대면서. 혼자 마시는 게 이상한 거였어요. 그때는.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태어나기도 전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요.

-왜 이렇게 됐을까…. 왜 다들 어울리지도 않고… 술 한잔 따라줄 친구도 없고….

-아버지가 그러셨는데요.

-예?

-뭐든 쌓아 올리긴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래요. 와르르, 그러곤 끝이죠. 관계든 뭐든 그렇다고 하셨어요. 관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맛있게 드세요. 그럼 이만.

말쑥한 청년이 제자리로 돌아가 스마트폰에 눈을 박은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K는 그 말들을 몇 차례나 곱씹었다. K에겐 정답 같기도, 풀리지 않는 암호나 수수께끼 같기도 했다. 와르르, 무너지는 것, 한순간, 관계.
 

*
여럿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습관이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하고, 그만큼 알코올 관련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존 혼자 마시는 술, 즉 혼술이 알코올 의존증이나 중독 가능성을 높인다는 통념을 뒤집는 결과입니다.

-저거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하긴, 다 돈이지.

-연구를 하긴 한 거야?

-무슨 연구니 조사니 하는 거, 그거 다 돈 대는 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는 거지 뭐. 알면서 뭘 그래? 선수끼리.

-혼술 안 좋다고 떠들어대던 게 엊그제니까.

-돈이 그쪽으로 흐르거든. 요즘은 다들 혼자 마시니까. 기업도 거기 맞춰 가는 거지. 요즘은 뭐든 일인용이 붙어야 팔린다고.

-그건 그렇지. 아무튼, 잘 마시고 내일 보자고.

-오케이, 마시자고.

태블릿 PC 화면 속 남자가 술잔을 내밀었다. P도 들고 있던 맥주잔을 카메라 렌즈 쪽으로 들이밀며 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이내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통신망 건너편 남자의 얼굴이 사라졌다. P는 미지근해진 맥주를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거면 만나서 같이 마시는 게 낫지 않아?

소파에 앉아 TV 화면에 눈을 박고 있던 K가 물었다.

-요즘 누가 만나서 술을 마신다고 그래.

별 이상한 소릴 다 한다는 눈빛으로 P가 K를 쳐다봤다. K의 시선은 TV 화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P 역시 태블릿 PC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연락처 목록을 두어 차례 훑어봐도 딱히 연락할 만한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즐거워 보여서 울컥 화가 났다. 그 얘기죠?

-그렇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왜 행복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 화를 낼까요?

-예? 무슨 소립니까?

-궁금해서요. 다들 외롭고 슬프면 말이죠. 그래도 누군가는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대리 만족이랄까,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기대랄까… 뭐 그런 거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거의 다가 불행할 거면 아예 죄다 불행해야지. 그게 공평한 거 아닙니까? 그 뭐냐… 상대적 박탈감,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가요. 궤변 같은데요.

-뭐요. 머리 아프게. 경찰이 뭐 그런 걸 물어. 그건 그렇고… 누구랑 이렇게 얘길 해본 거 참 오랜만이네요.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죠. 좀 좋은 상황이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게. 소주 한잔 같이 했으면 좋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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