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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인생美답 14]꿈은 배짱으로 큰다

2017-08-06 09:49

글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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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참 신기한 아이가 삽니다. 제 늦둥이 막내딸 말이죠. 위의 두 아이는 잠이 많고 게으른 편인데 막내는 꼬맹이 때부터 그렇게 부지런할 수가 없었어요. 다섯 살 때부터 쉴 새 없이 주방을 드나들며 요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열두 살 때부터 혼자 케이크와 과자를 척척 구워내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라온 레시피를 보고 무작정 따라 해 지금은 제법 모양도 그럴싸한 케이크를 만들죠. 물론 그 정도 실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도 집에 생크림이 떨어지자 계란 흰자로 거품을 내더니 생크림을 대신해 빵에 올렸어요. 결과는 대실패. 맛을 둘째 치고 흰자가 꺼지면서 빵이 다 젖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그걸 본 막내의 말이 너무 웃겼어요.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네. 생크림 대신 흰자를 쓰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으니까 됐어. 오늘도 많이 배웠다!”

자기 실패에 기가 죽기는커녕 너무나도 쿨하게 정리하는 걸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저런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심지어 함께 제과점에 가면 막내는 프로들이 만든 케이크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아요.

“아, 저거 저렇게 만들면 안 되는데, 나라면 저렇게 안 하겠다.”

그러고는 집에 가자마자 비슷한 케이크를 만들어냅니다. 그때의 의기양양한 아이 표정은 세계대회 나가서 금메달 딴 파티시에 저리 가라죠. 그렇게 아이는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 자신의 실패학교에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실패에서 성공으로 가는 모든 길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작은 몸으로 지나가는 중입니다.

꿈이 단단하게 크려면 배짱이 10년 정도 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사교육이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돼요. 정규교육에서는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배짱이 온전히 클 수가 없죠. 모든 직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내 몸 하나 믿고 가야 하는 전문직이라면 그게 너무 중요합니다. 실패학교에서 배워야 바닥부터 쌓아올린 자신감과 실력은 물론 확실한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요즘 뜨는 셰프들이나 디자이너 같은 전문직 중에서 비제도권 출신이 오히려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두 가지 기초자산을 받고 태어났어요. 몸과 시간. 이 가장 심플한 두 가지와 승부를 낼 수 있다면 인생에 그 어떤 복잡한 게 들어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이 두 가지와 멀리 떨어져 살죠. 몸을 덜 쓰고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고급스러운 것으로 대접받고, 거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꿈은 몸과 시간을 철저히 다룰 줄 모르면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에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남의 육체에 깨알같이 저장된 실력과 경험까지 살 수는 없죠. 두 가지 심플한 재료만으로 승부를 보는 법을 알아야 진정한 자신감도 생깁니다. 밑천이 많아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라 부를 수 없죠. 가진 게 쥐뿔도 없지만 내 몸과 시간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자신감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줘야 할 것도 시간과 몸을 최대한 덜 쓰게 하는 족집게 과외가 아니에요. 가장 정직한 두 가지 재료, 몸과 시간만으로 뭔가 이룰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몸과 시간을 다룰 줄 알면 자신을 지키는 힘도 커져요. 그 어떤 테크닉도 통하지 않는 시련이 올 때는 온전히 몸과 시간을 써서 견뎌야 돼요. 그걸 안 써본 사람은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는 힘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인위적인 힘이 가해질수록 더 빨리 숙성되고 빛날 거라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명을 키우는 일이죠. 모든 생명은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성장할 때 가장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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