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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하시죠 06]아내의 빈자리

2017-08-05 10:47

글 : 이창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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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한 번 화분에 물을 줄 것, 벤(애견)과 하루 20분 산책할 것(그래야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혼자 실내에 있을 때 변을 아무 데나 보지 않음), 식사 즉시 설거지할 것, 먹고 남은 밥이나 반찬은 용기에 담아 냉동실 또는 냉장실에 보관할 것(부엌에서는 한나절 지나면 쉬니까), 빨래는 젖은 것부터 우선적으로 하되 색깔을 구분해서 할 것, 전신 샤워 또는 머리 감을 때 욕조 배수구에 머리카락 여과기 설치할 것, 음식물쓰레기는 물기를 빼서 (가능하면 햇볕에 말려 부피를 최소화시켜) 1ℓ 봉투에 담아 버릴 것(2ℓ 봉투 사용 시 채우는 데 장시간 걸려 벌레들이 득실거림), 쓰레기 분리배출은 당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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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홀로 길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아내가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며 신신당부한 목록입니다. 당연히 저와 아이들은 ‘뭐가 이렇게 해야 할 게 많으냐’며 따지듯 항의를 해봤지만, ‘그나마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니 돌아왔을 때 집 안이 엉망 돼 있으면 각오하라’는 으름장에 남은 가족들은 각 목록의 당번을 정하는 것으로 순순히 아내의 리스트를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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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부한 것을 아내가 여행할 동안 지키지 않았을 때를 상상해봤습니다. 애써 힘들게 5층 옥상까지 들어 올린 화분의 나무들은 흉물스러운 꼴을 하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다시 힘들게 들어다 내려야 할 것이고), 벤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거실 바닥에 깔아둔 패드를 물어뜯어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것은 물론 거실, 부엌 그리고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으면서도 기어이 장만한 펜더 기타에까지 자신의 영역 표시로 스크래치를 낼 것이며, 부엌은 먹다 남은 밥의 쉰 냄새와 음식물쓰레기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벌레가 장악을 하고 있을 것이고,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바구니에서는 젖은 빨래에서 피어난 곰팡이균이 세력을 넓혀갈 것이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장면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쯤 되면 아내를 연봉 4천6백만원(1일 평균 12시간 가사노동 기준)의 가사도우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 것입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간혹 ‘당신은 집에서 뭐 하는 거냐’며 투정 부리는 속절없는 남편들에게 아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닥칠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집 안의 변고(?)를 잠시 예견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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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은 아내의 자리 비움을 휴가라고 여길 것입니다. 연락 없이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도, 씻지 않고 옷 입은 채 쓰러져 잠을 자도, 어제 입은 옷을 여기저기 내팽개친 채 출근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보이지 않던 아내의 빈자리가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것을 남편과 자식들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걸 딱 꼬집어 표현을 못 할 뿐입니다.
 
솔직히 아내의 당부를 100% 잘해낼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내여, 부디 몸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남편, 자식, 벤(애견)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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