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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05]노고지리와 장미의 계절

2017-07-15 11:14

글 : 이수경 소설가,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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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아버지가 없는 봄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는 잠시 참혹했다. 마스크를 쓰고 흰 가운을 입은 남자 간호사들에게 두 팔이 붙들려 앰뷸런스에 태워졌으니까.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던 아버지는 곧 모든 걸 포기한 듯 조용해졌고, 어린 짐승처럼 울먹이는 눈으로 내가 서 있는 대문가를 돌아보며 수영아, 하고 불렀다. 나는 아버지를 외면하고 대문을 닫았다.
 
아버지가 떠나자 우리 집은 평온해졌다. 엄마는 낡고 부서진 가구들을 버리고 예쁜 자개장을 샀고 마당에 꽃을 심었다. 국화꽃이 피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엎드린 채 잠깐 잠이 들면 자꾸만 가위에 눌려 동네 무당을 부른 적도 있었다. 무당의 주술 때문이었는지 봄이 지날 무렵에는 편안히 잠들 수 있었지만 나를 돌아보던 아버지의 눈빛은 내내 떠나보내지 못했다. 국화꽃이 필 때 아버지의 병은 나을 것이고,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아버지와 그리하여 내내 평화로울 우리 집을 상상하면 가슴이 쿵쾅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병은 정말 낫게 될까.
 
 
담장마다 덩굴장미가 무리지어 피어나던 초여름에 나는 뒤늦은 초경을 시작했다. 생물, 담임 과목 시간이었다. 담임으로 말하자면 냉혹한 뱀파이어 같았다. 핏기 없는 노란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비교적 잘생긴 편이었지만 도무지 표정이 변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싸늘하게 굳어 있었는데, 열다섯 살 소녀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를 때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누가 무슨 잘못을 했든 반 전체를 일으켜 세워 차례대로 손바닥을 때렸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팔을 흔들 때마다 창백한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날도 60명 모두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 아이가 맞으면 나머지 아이들도 진저리를 쳤고 한 대가 아니라 60대를 맞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로 말하자면 담임이 회초리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올 때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유일하게 담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수군거리던 말은 사실이었다. 모두가 깜짝 놀라 돌아볼 만큼 담임은 유난히 내 손을 세게 때렸고 식은땀까지 흘렸다.
 
나는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담임 앞에 서 있었다. 아이들의 눈이 내 손바닥 위로 쏠려 있었다. 담임이 회초리를 고쳐 쥐고 힘껏 팔을 휘둘렀는데 회초리가 손에 닿는 순간 어쩐 일인지 주춤하며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담임의 시선을 따라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교복 치마 아래 종아리를 타고 붉은 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개학 첫날, 담임은 아이들에게 쪽지를 한 장씩 돌렸다. 일 년 동안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쓰라고 했다. 담임이 교실 문을 열었을 때부터 아이들은 얼어 있었고 쪽지를 받자마자 조용히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뭘 쓰고 있을지 알 만했다. 그런 걸 쓰라고 한다고, 쓴다고 뭔가 달라질 것도 없을 테지만 어쨌든 나도 썼다.
 
「푸른 하늘을 비상하는 노고지리는 무엇을 보고 노래할까요.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그런 예외적인 언행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학교는 내게 유일한 피난처였으므로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어떤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도록 얌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노고지리라니, 나 김수영의 말이 아니라 시인 김수영의 시라니, 어쩌면 오래도록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던 죄책감을, 나를 돌아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꺼내 던져볼 만큼 담임이 강한 상대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어린 소녀의 도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궁금하기까지 했다.
 
종례가 끝나자 역시나 담임이 내 이름을 불렀다.
 
“김수영이 누구지?”
 
내가 팔을 반쯤 들어 올리자 모두가 나를 돌아봤다. 왜 그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물실로 내려가는 복도에서 담임과 마주쳤다. 교무실에서 막 나오는 참이었는데 사이다와 유리컵 두 개와 백설기를 담은 쟁반을 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아, 김수영, 가자!”
 
앞장서 걷고 있는 담임의 뒷모습은 싸늘한 정면과는 어쩐지 달라 보였다. 뭔가 허둥대는 듯도 했고 긴장하고 있는 듯도 했다.
 
“김수영, 앉아.”
 
담임은 무겁게 늘어져 있는 생물실의 암막 커튼을 활짝 걷어내고 창가 자리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고 먼저 앉았다. 커튼을 걷어도 늦은 오후의 봄 햇살이 창가를 넘어오지는 못했다. 겨우내 잠겨 있지 않았어도 시멘트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왔을 것이고 작은 소리도 크고 공허하게 울렸을 것이다. 나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담임은 사이다를 유리컵에 따라 앞으로 밀어주며 백설기를 조금 뜯어 먹었고 나에게도 먹으라고 했다. 담임의 등 뒤에 포르말린 병에 절여진 개구리는 배가 갈라진 채 사지를 벌리고 있었다. 개구리의 심장이 어떻게 뛰었었지? 나는 백설기는 먹지 않고 사이다만 조금 마셨다.
 
“김수영, 나한테 할 말이 있니?”
 
담임이 먼저 물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활짝 웃고 있었다. 웃을 때 두 눈이 가늘어지고 입이 옆으로 크게 벌어진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었다.
 
“참, 김수영, 시인 김수영을 아는 거니?”
 
그런 시인을 알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런 시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의 사촌들은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었는데, 방학이 되면 나는 다시 학교에 갈 때까지 사촌들과 함께 지냈다. 사촌 A는 낡아 너덜너덜해진 회색 표지의 김수영, 그러니까 시인 김수영의 시집을 끼고 다니며, ‘노고지리는 무엇을 보고 노래할까’ ‘자유에는 어째서 피의 냄새가 섞여 있나’ ‘혁명은 왜 고독한가’ 따위의 시구를 중얼거리며 다녔고, 사촌 B는 바리톤 성악가의 흉내를 내며 ‘오 솔레미오’를 부르다가 당구장으로 사라졌고, 사촌 C는 자주 이불에 오줌을 쌌다. 또 다른 도시에 살고 있던 가난한 사촌 D와 F는 방학 때도 공부만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들어갔다. 나는 사촌들을 모두 사랑했지만 그중 한 명을 너무나 사랑해서 이따금 꿈을 꾸곤 했다.
 
“할 말이 있었던 거니?”
 
담임이 다시 물었다. 할 말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내키는 대로, 그러니까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지 따위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팠다. 표정 없이 듣고 있는 담임의 등 뒤, 따가운 포르말린 속에 심장을 꺼내놓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개구리처럼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담임이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그건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담임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 아버지는 귀신이 들린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담장 밑에는 붉은 장미 꽃잎이 겹겹이 떨어져 있었다.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이었다. 나는 생리 혈이 묻은 치마를 벗어 물에 담가놓고 세숫대야 위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피를 닦아냈다. 엉겨 붙은 피가 씻겨나가며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맑은 물로 여러 번 헹궈내다가 좀 더 깊은 곳에 손가락이 닿았다. 뼈도 근육도 없는 듯한,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보드라운 것이 그 안에 있었다. 내 것이라도 만지기 두려울 만큼 연약한 살이었다. 나는 팬티 안에 깨끗한 생리대를 붙이고 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기울며 마지막 햇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당에 심어놓은 채송화와 맨드라미는 아직 작은 봉오리만 맺힌 채 피지 않았다. 그런데 59명의 소녀들은 담임에게 무슨 말을 썼을까.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는 무엇을 보고 노래했던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생물실에 간 적이 없었고 담임이 웃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담임의 말대로라면 ‘귀신 들린’ 아버지는 국화꽃이 피기 전에 돌아오지 않고, 우리 집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웠다. 나는 이따금 사랑하는 사촌들의 꿈을 꾸었다. 모든 게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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