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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림의 앤티크 스타일 10]동서양 문화의 컬래버레이션, 자포니즘

2017-07-09 20:31

글 : 백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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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티지 코발트색 크리스털 컴포트.
2 연꽃과 잉어가 싱그러운 조선시대 민화.
3 스털링 오버레이 화병(아르누보).
4 청홍 금색의 이마리 티잔(빅토리안).
우리는 최근 몇 년간 한류라는 말을 익숙하게 듣고 있다. 케이팝으로 알려진 아이돌 그룹 위주의 한국 가요,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한국 화장품, 한국 가전제품 등이 동남아를 비롯한 남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생겨난 말이다. 대체로 서양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생활해왔던 우리들이기에 이러한 현상은 반갑고 기쁘게 느껴진다. 그러나 먼먼 옛날 우리가 로코코시대로 기억하는 18세기부터, 아니 저 멀리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어디에나 늘 있어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로드 또한 로마인들이 중국의 실크를 좋아하고 열망했기에 생겨난 것이었다. 서양인들에게 동방의 나라는 꿀과 젖이 흐르는 낙원으로 인식되었다. 성지 탈환을 외치며 9차에 걸친 원정을 떠났던 십자군전쟁도 따지고 보면 동방으로 가는 길목을 막은 아랍 세력을 물리쳐 동방으로의 통로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십자군전쟁은 동양 문물의 선진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선진 문물을 자랑하던 아랍문명을 살짝이나마 엿본 유럽인들은 더욱더 동방을 꿈꾸게 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열망을 더욱 부추긴 것은 바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다. 원나라에서 보낸 17년간의 경험을 기술한 그의 기행문은 콜럼버스가 위험을 무릅쓰고 긴 항해를 단행하도록 만든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험으로 개척된 동양을 오가는 뱃길을 통해서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던 향신료, 비단, 도자기가 수입되었다. 당시 수입된 물건들은 현지에서보다 10배 이상의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이는 동방의 수입품을 선호하는 귀족들의 사치풍조를 조장함으로써 그들의 재정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재정이 취약해진 귀족들은 동방과의 무역과 식민지 확보로 부유해진 왕실 재정에 의탁하고자 왕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세를 지나 신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진 곳에 왕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줌으로써 17~18세기 절대왕정의 탄생을 도왔다.
 
비단과 도자기를 향한 끝없는 열망이 귀족들의 실내장식과 문화로 꽃피워져 마침내 로코코예술을 탄생시켰다. ‘중국 취미’, 즉 ‘시누아즈리(Chinoiserie)’가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장엄함과 고결함을 추구하던 예술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한 소소한 공예의 형태로 실내를 장식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실내에서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살롱문화가 생기게 된 시점도 이때이다. 시누아즈리 시대에는 중국의 도자기, 비단과 더불어 일찍이 네덜란드와 교역을 시작한 일본의 공예품 또한 유럽에 함께 들어갔다. 당시 동방이라는 개념은 중국이라는 큰 하나의 나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정부에 의해 압수된 왕실과 귀족들의 소장품 목록에도 일본의 공예품들은 많이 수록되어 있었고, 1793년 루브르박물관 개관 시기에 출간된 유물 카탈로그에도 일본 도자기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유물들은 출처와 상관없이 모두 시누아즈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중국과 일본은 동일한 미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인식되었고, 중국은 동북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국가로 보았기에 일본의 유물들도 시누아즈리의 일부로 간주된 것이다. 혁명 직후 정부에 압수되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소유의 일본 공예품들도 문양의 독창성과 옻칠 공예의 기술적 우수성을 높게 평가받았으나 이 유물들에 관한 당시 정부 보고서에는 일본 미술에 관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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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발트블루 받침의 크리스털 잔(아르데코).
2 코발트블루 도자기에스털링이 오버레이된디저트 접시(아르데코).

이렇듯 중국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일본문화였지만, 19세기 중반 일본을 주제로 한 서적들이 출간되면서 일본 판화에 대한 파리 출판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프랑스 미술시장에서 일본 판화와 삽화집의 거래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1840년대부터 파리의 미술시장에서 동양 유물은 다시 주요한 거래 품목이 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미술시장에서 주로 거래되었던 품목들은 귀족 저택의 시누아즈리 실내장식을 위해 사용되던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 병풍 그리고 옻칠 공예품 등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새롭게 동양 유물의 수집에 관심을 가진 계층은 문인, 예술가 그리고 출판업 종사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일본에서 제작된 시각적 이미지를 담은 인쇄물과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일본 작가들의 그림이 실린 서화집과 판화 앨범이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 프랑스 사회는 일본 예술과의 만남을 새로운 미학의 발견으로 인식했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일본 미술의 수용 방식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에서 시각예술의 변화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영역에서 필요한 대안을 일본 미술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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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털에 실버가 오버레이된 와인 쿨러(아르누보).
2 크리스털에 실버가 오버레이된 컴포트(아르누보).

스냅사진기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회화기법인 원근법으로부터 벗어난 다양한 그림 구도에 대한 욕구가 당시 화가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전통과 규범을 버리고 새로운 조형 양식을 추구하던 예술가들은 일본 판화와 소묘가 지닌 독특한 구성과 표현의 자유에 매료되어 있었고,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체제에 편입된 수공예품들의 질적인 하락을 우려하던 산업 자본가들은 일본의 공예품들이 프랑스 장식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창작의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의 도자기와 차, 부채, 우키요에 등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일본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증대되었다. 이후 계속된 만국박람회의 공식적인 참가와 동양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미술상들의 활동에 의해 일본 문화의 확산은 더욱 본격화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미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일어나게 되었고 자포네즈리(Japonaiserie)가 더욱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취미’, 즉 ‘자포네즈리’는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서 ‘자포니즘’이라는 예술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중엽부터 유럽을 물들인 자포니즘의 촉매 역할은 ‘우키요에’라는 일본의 목판화였다. 일본에서도 한 장만 그려지는 그림은 상당히 고가였으므로 일반 서민들은 국수 한 그릇 값 정도의 싼 값으로 살 수 있는 우키요에 목판화를 구입해 집에 장식하곤 했다. 덧없는 세상을 의미하는 우키요(浮世)의 뜻처럼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은 내용으로, 우키요에 화가들은 자유롭고 풍자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권위적인 전통적 미술의 방식에 구속되지 않고 시장성을 추구한 그들은 새로운 표현 방식을 도입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우키요에를 특별히 사랑했던 인상파 화가로는 모네, 마네, 드가, 피사로, 고갱, 로트레크, 고흐 등이 있다. 특히나 우리가 잘 아는 고흐는 우키요에를 그대로 모방한 여러 개의 작품을 남겼다. 마네나 모네 또한 일본풍의 부채가 배경이 되거나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가 배경이 된 여러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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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비 손잡이가 아름다운 티잔(아르누보).
2 오렌지 톤에 파트수르파트 기법으로 문양을 새긴 티잔(18세기 후반).

자포니즘의 영향은 회화뿐만 아니라 가구나 도자기에서도 두드러졌다. 일본의 나전칠기는 유럽의 기존 가구 상판에 붙여져 독특한 동서양의 컬래버레이션 가구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는 이슬람의 안료인 산화코발트블루와 중국의 도자기 기술이 만나 만들어진 청화백자가 동서양의 합작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본산 나전칠기 제품을 유럽 가구에 붙여 탄생시킨 이 시대의 가구들은 지금도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나전’이 영어로 ‘Japan’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전칠기는 일본을 통해서 유럽에 들어갔고 유럽인들은 나전의 화려한 광택과 매끄러운 질감에 열광했다. 이후 나전칠기는 칠보기술과 함께 아르누보시대의 여러 작품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자포니즘 시대, 도자기 영역에서는 ‘이마리’라 불리는 도자기가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섭정 황태자로 일컬어지는 영국 조지 3세의 장남 조지 4세는 이마리 도자기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사가현의 아리타에서 구워진 도자기는 주요 수출항인 근처 이마리를 통해 수출되었기에 아리타 도자기는 이마리 도자기로 불렸다. 청색과 홍색, 그리고 금박을 입힌 것이 특징인 이마리 도자기는 자포니즘을 대표하는 도자기가 되었다. 금박은 이후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를 풍미했던 오스트리아의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서도 많이 표현되어 자포니즘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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