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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하시죠 02]명성황후의 원혼 때문일까요?

청와대 터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

2017-03-25 08:31

글 : 이창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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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청와대를 씁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에 들은 청와대 터에 대한 무속인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명성황후를 몸주신으로 모신다는 그 무속인은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 무사들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된 명성황후의 원혼이 그곳을 떠나지 못해 인근의 청와대 안주인들이 불운을 겪는다고 주장했습니다.

1895년 8월 20일 새벽, 궁궐을 급습한 일본 무사들을 피해 궁녀의 옷으로 갈아입고 병풍 뒤에 숨어 있던 명성황후는 무사들에 의해 장안당 뒤뜰로 끌려가 짓밟히고 칼로 잔인무도하게 살해된 뒤 시신은 홑이불에 싸인 채 건청궁 뒤의 녹산에서 불태워지는 만행을 당했습니다. 명성황후의 원혼이 경복궁을 맴돈다는 무속인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입니다.

무속인은 전생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무사였다고 합니다. 26년 전 기도를 하던 중 긴 칼을 차고 있는 무사의 모습이 보이는 환상을 겪으며 자신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무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속인은 전생에 만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인해 명성황후를 몸주신으로 모시고 1993년부터 명성황후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와 기도를 드려왔다고 했습니다.

무속인은 2000년대 초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경복궁과 맞붙어 있는 민속박물관 앞뜰에서 처음으로 명성황후의 해원굿을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명성황후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는 시해장소인 경복궁에서 굿을 해야 한다며 줄기차게 정부에 요청했지만, 일본의 반발 등을 우려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데 당시 일본의 역사책 왜곡으로 일본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거세지자 정부가 슬그머니 명성황후 해원굿을 허락하여 이뤄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한 무속인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청와대 터에 대한 불편한 얘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저서 <땅의 눈물 땅의 희망>에서 ‘청와대 터는 신의 강림지로 죽음의 공간’이라고 주장했고,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저서 <우리땅 우리풍수>에서 ‘저 혼자 우뚝 서 있어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고집불통의 북악산 아래 있는 청와대는 살터가 되지 못한다’고 혹평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노무현정부 때 비서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진정성 없고 불순하기 짝이 없는 청와대의 건축을 바꾸지 않으면 대통령의 말년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폭탄발언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2017년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저런 불운(不運)을 이겨낼 대운(大運)의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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