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향

바로가기 모음 이벤트 동영상 카드뉴스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COLUMN
  1. HOME
  2. COLUMN

[차 한 잔 하시죠]시간여행

2017-03-04 10:51

글 : 이창희 편집장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근래 들어 시간여행(타임슬립)이나 시간을 다룬 판타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현재 방영 중인 <내일 그대와>를 비롯해 <나인>, <도깨비>, <시그널> 등이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tvN의 작품입니다.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내일 그대와>에서 이제훈(유소준 역)은 남영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전철을 이용해 미래나 과거로 떠나고, <나인>에서 이진욱(박선우 역)은 신비의 향을 통해 시간여행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김신 역)는 고려시대부터 900년을 넘게 살아온 도깨비이며, <시그널>의 이제훈(박해영 형사 역)과 조진웅(이재한 형사 역)은 무전기를 통해 각각 다른 시간의 세상을 연결합니다.
 
시간여행이나 시간을 다룬 판타지 장르가 인기를 끄는 것은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무너뜨리고 패까지 갈라놓은 ‘최순실 게이트’, 우리 아들딸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청년실업’, 한반도의 안보를 극한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북핵’ 등등. 이런 현실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필자도 잠시 현실을 잊고자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도리어 과거에 ‘엮이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필자의 시간여행 도구는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공터에서>였습니다. 거기엔 저승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승에 남아 있는 어머니, 아내, 동생, 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김훈은 작품 후기에서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내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갔다”며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소설을 통해 기억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지우고 싶은 내 선대 인물들의 모든 것을 체감했고, 현실을 방패 삼아 잊히거나 진즉 소멸되기를 바랐던 이승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하다 못해 쓰린 기억들까지 다시 목도하고 말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마차세는 약초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가 수일 또는 수십 일 만에 불현듯 비루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는 왜 집에 오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아버지는 왜 집에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립니다. 필자도 40여 년 전 거의 새벽께 슬그머니 들어오는 아버지를 향해 그런 의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뚜렷이 맞이하게 될 때 드는 당혹감 아니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기한 것은 꿋꿋하게 4일간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나자 마치 한여름 출퇴근길의 ‘지옥철’을 막 빠져나왔을 때와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전긍긍해왔던 ‘나만의 비밀’이 당시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흔하게 가지고 있을 법한 ‘보편적인 비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쓰라린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점심나절이면 졸음부터 쏟아지는 계절입니다. 책과 함께 간편한 시간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떠실는지요. 차부터 한잔하시고요.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