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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문학기행]소년 임금 비운에 애끓고 방랑 시인 쫓는 여정

청령포‧장릉‧자규루… 문학 속 영월을 거닐다

2019-09-24 15:33

글 : 이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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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문학에 사로잡힌 이라면 때로 이야기 속 풍광에 매료돼 여행자가 되기도 한다. 글로 묘사된 장소를 찾아 눈에 담고 걷는 여정에는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나 동행하고 애틋하고 기구한, 혹은 아름답고 절절한 서정(抒情)이 더해진 풍광은 전에 없던 정취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가을의 초입, 소설 속 영월로 떠난 문학 기행.
영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의 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 유배돼 17세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 그 비운의 일대기는 여러 작가에게 영감을 줬고 이야기로 엮어져 독자를 만났다. 소설가 이광수가 1928~1929년 21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단종애사』가 대표적이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또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비에 젖고 볕에 그을어 7월 초승달 빛에 두견성이 슬피 들릴 때에 하늘에 사무치는 한을 품은 노산군은 마침내 영월부 청령포 적소에 도착하였다. 청령포는 영월부의 서쪽 서강 가에 있는 조그마한 동리다. 남, 서, 북이 모두 산이요, 동으로는 서강을 건너 영월부중이 바라보였다. 삼면 산에는 수목이 울창하여 항상 구름이 머물고 앞으로 흐르는 서강 물소리는 밤새도록 끊일 줄을 몰랐다.” -이광수 『단종애사』 5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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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청령포. 유배지였던 이곳은 현재 영월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청령포(淸泠浦)는 노산군으로 신분이 강등된 단종이 유배된 곳이다. 지금이야 강줄기와 어우러진 풍광과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장관인 관광 명소가 됐지만 당시엔 사방이 막힌 천연 감옥으로 한 많은 생이 스러져가는 암울한 곳이었다. 소설가 김별아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의 입을 빌려 청령포를 이렇게 묘사했다.
 
“당신이 유배되신 영월의 청령포는 천혜의 유배지라 하였습니다. 등 뒤로 칼날 같은 산들이 얼키설키 쌓였고 나머지 삼면은 깊고 푸른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니, 밤새 비명처럼 들끓는 거친 물소리에 당신은 얼마나 외롭고 무서우셨을는지요.”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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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의 소나무 숲. 2004년 산림청이 주관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했다.
 
배를 타고 청령포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소나무 숲을 만난다.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한 그루, 국내에서 가장 큰 소나무라는 ‘영월 청령포 관음송’을 볼 수 있다. 30여 미터 높이, 수령 600년가량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어른 가슴 높이쯤부터 두 갈래로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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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됐다.

단종은 종종 이 갈라진 소나무 가지 틈새에 걸터앉아 쉬곤 했다고 전해진다. 관음송이란 이름은 이 소나무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觀, 볼 관), 슬픈 음성과 탄식을 들었다(音, 소리 음)고 해서 붙여졌다.
 
“당신이 잠시 기거하셨던 청령포의 노송은 당신의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지요. 언제 조정의 사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화급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은 천진스레 그 갈라진 줄기 사이에서 노니셨다 하던가요.”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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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어소.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이 생활했던 곳으로 내부에는 밀랍인형으로 당시 생활상을 표현해놨다.
 
청령포에서 단종이 머물며 생활했던 단조어소(端宗御所)도 볼 수 있다. 실제 단종어소는 소실됐고,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새로 지은 곳인데 작가가 묘사한 거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내부에는 밀랍인형으로 단종을 비롯해 당시 그를 모셨던 시종들의 모습을 재현해뒀다.
 
“노산군이 있는 집은 나뭇조각으로 지붕을 인 침침한 집이었다. 뒤꼍은 바로 산에 연하여 밤에는 밤새, 낮에는 낮새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부엌에 연한 두 칸 방 가운데에 장지가 있어 새를 막고 아랫방에 노산군이 머물고 윗방 하나에 궁녀 여섯이 살았다.” -이광수 『단종애사』 5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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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탑. 단종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청령포 전망대에 오르는 길에 보이는 돌무더기는 단종이 떠나온 한양 땅과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望鄕塔)’이다. 실제 단종이 쌓은 것인지, 그가 쌓았다한들 지금 남아있는 돌무더기가 그 때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서린 망향을 짐작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그런가 하면 뒤쪽 산에는 지금도 돌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당신이 나를 그리워하며 동대문 쪽을 향하여 쌓은 탑이라 하더이다. 그 소나무 가지와 탑이 기울어진 모양이 내가 당신을 바라보며 섰던 숭인동의 동망봉과 꼭 들어맞는다 하니, 참으로 향기롭고 아름다워 더욱 슬픈 전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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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재. 청령포로 향하던 단종이 이곳을 넘을 때 하늘도 슬퍼 비를 뿌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한양을 떠나 영월 청령포로 이어지는 단종의 유배 여정 또한 숱한 이야기를 낳았다. 청령포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해발 320미터 높이의 고개, ‘소나기재’도 그중 하나다. 단종이 고개를 넘을 때 하늘도 슬퍼 소나기를 내렸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선돌을 지나 오르는 고개는 청령포로 떠나시는 당신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하늘도 서러워 울음을 터뜨렸다는 소나기재라 하더이다.”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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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6호다.
 
소나기재 인근에는 청령포와 함께 영월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선돌이 있다. 오랜 세월 거대한 바위의 갈라진 틈을 따라 암석이 부서져 내리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양 옆으로 우뚝 선 70미터 높이 기암괴석 사이로 보이는 서강 물줄기가 환상적인 풍광을 빚어낸다. 유배지로 향하던 단종은 선돌의 풍광을 즐길 여유 따위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수려한 경관에 먹먹함이 더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된 지 두어 달 만에 큰 홍수를 만나 물에 잠긴다. 이때부터 단종은 관아 건물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이곳에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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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풍헌. 지방 수령들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현재 관풍헌은 보수 공사 중으로 관람할 수 없다. 10월 중에 공사를 끝내고 다시 개방할 예정이다. 관풍헌 동쪽 옆으로 누각 하나가 있다. 원래 매죽루(梅竹樓)였으나 관풍헌에 머물던 단종이 올라 자규(두견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시를 지었다고 해 훗날 자규루(子規樓)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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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규루. 관풍헌에 유배 중인 단종이 종종 올라 쉬었다고 전해진다.
 
“마음이 자못 산란하여 진정키 어려운 때에는 퉁소 부는 늙은이 하나를 데리고 관풍매죽루에 올라 봄달을 바라보며 퉁소를 불었다.” -이광수 『단종애사』 522p
 
이광수는 『단종애사』에서 단종이 봄밤 매죽루에 올라 달구경을 하고 퉁소 소리를 들었다고 적고 있지만 사실 단종은 여름에 영월에 도착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는 그저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 김별아 작가는 소설 『영영 이별 영이별』을 통해 이러한 점을 잘 짚어 놨다. 전해지는 이야기 중 상당수는, 아마도 단종의 슬픈 사연에 감응한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애도와 위로가 아닐까.
 
“여름에 갔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떠난 당신이 춘삼월 자규새를 보았을 리 없는 것처럼 …… (중략) …… 당신은 때로 이 누각에 올라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셨겠지요. 소문에서처럼 그때 당신의 심정을 위로하는 피리 소리 한 줄기나마 있었다면, 나로서야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262~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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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 동강과 함께 건너편으로 보이는 계족산, 태화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명당에 세워진 정자다. 문화재자료 제24호.
 
동강변 금강정(錦江亭) 또한 관풍헌에 머물던 단종이 종종 올라 쉬었던 곳으로 알려졌다.(※금강은 현재 동강의 옛 이름이다.) 가끔 단종을 모시던 충신들이 신분을 감춘 채 찾아오면 먼발치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눈물지었다는 애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차차 날이 더워 여름이 되면 노산군은 금강정에도 가끔 올랐다. 금강정은 금강 가에 있어 누에 앉았으면 물소리가 구슬피 들렸다. 이것을 노산군은 심히 사랑해서, 더구나 달 밝은 밤이면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여울여울 울어 가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이광수 『단종애사』 524p
 
금강정에서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보면 낙화암(落花巖)이라 적힌 비석을 볼 수 있다. 단종의 시체가 강에 버려지자, 단종을 모시던 궁녀 등이 임금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곳이다. 절벽 아래에서도 낙화암이란 글자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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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절벽이 단종을 모시던 이들이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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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아래 벽면에 ‘낙화암’이란 글자(빨간 동그라미 표시 부분)가 새겨져있다.

“노산군의 시체가 물에 들어가 둥둥 떠서 흐르지 않고 하얀 열 손가락이 떴다 잠겼다 하는 것을 보고는 시녀들과 종자들은 모두 통곡하며 사랑하는 임금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들었다.” -이광수 『단종애사』 550p   
 
단종의 시체는 깊은 밤 호장 김흥도가 몰래 수습해 묻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서슬 퍼런 어명이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충신 엄흥도가 있었기에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莊陵) 또한 존재할 수 있었다. 주군을 따라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시종들과 몰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 모두가 영월을 ‘충절의 고장’이라 불리게 만든 요인이다.
 
“밤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체를 건져 어머니 위하여 짜두었던 관에 넣어 부중에서 북으로 5리 되는 곳에 평토장을 하고 돌을 얹어 표하여 두었다.” -이광수 『단종애사』 5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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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사적 제196호인 단종의 능으로 조선 왕릉이 대부분 서울, 경기 지역에 있는 것과 달리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에 조성됐다.
 
지금이야 번듯한 왕릉의 모양새를 갖췄지만 곡절 끝에 겨우 한 몸 뉘일 곳을 찾은 당시 단종의 형편엔 초라한 무덤이라도 감지덕지였을까. 혼백이 된 정순왕후는 어린나이에 생이별한 남편의 초라한 마지막 안식처를 두고 이렇게 회상한다.
 
“군에서 북쪽으로 오 리쯤 지나 자리한 동을지산에 동쪽으로 향한 고분이 노산군의 산소인데, 그 묘가 길가에 위치한지라 무너지고 깎여서 겨우 두 자쯤 된다 하옵니다. 읍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그것을 임금의 산소라 전하여 어린 아이들이라도 모두 알아낸다는데, 옆으로 열 지어 있는 여러 무덤은 모두 돌을 늘어놓은 반면 이 묘만은 그것이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78p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묻은 과정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엄흥도가 아들들과 번갈아 지게를 지고 한동안 숲길을 해쳐 가다가, 이쯤이면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라 하여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쉬어갈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때 언덕배기 소나무 밑에 숨어 있던 노루 한 마리가 불청객들에 놀라 잔망스레 후다닥 달아나기에 그 자리를 살펴보니, 짐승이 머물렀던 곳만 오롯이 눈이 녹아 꽤나 포근하게 보였습니다. 엄흥도는 당신을 모신 관을 그곳에 내려놓고 흐른 땀을 닦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는데, 다시 몸을 일으켜 관을 얹은 지게를 메고 일어서려니 그만 그것이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더 깊은 골짜기로 당신을 모실 작심이었으나, 현명한 엄흥도는 금세 하늘의 계시와 혼령의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아! 상감께선 여기에 머무르고파 하시는구나! 이곳이 바로 명당이로구나!
그는 더 나아갈 생각을 버리고 그곳에 땅을 파 관을 묻고 몰래 장사를 지냈답니다.” -김별아 『영영 이별 영이별』 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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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말 입구 길가에 세워진 조형물.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묻을 당시 겪었다는 신비한 일화를 표현했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전설은 지금껏 이어져 한 마을의 상징이 됐다. 장릉이 있는 동네는 ‘능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 ‘능말’이라 불리는데, 마을 초입 길가에는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묻으며 겪은 전설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돼있어 눈길을 끈다.
 
충신 엄흥도가 묻힌 곳 또한 이곳 영월이다. 주군이 묻힌 장릉에서 약 5㎞ 떨어진 영월읍 팔괴리에서 그의 무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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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의 묘.
 
서부시장 근처, 영월초등학교 옆으로 난 골목은 1960~1980년대 석탄 산업이 성황을 이뤘던 시기부터 여러 음식점이 몰려있던 곳으로 ‘요리골목’이라고 불린다. 2006년 영월군은 이곳을 벽화와 조각상 등으로 장식하고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꾸렸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관리가 소홀해져 작품 일부는 색이 바래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몇몇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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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요리골목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벽’. 이태준 단편소설 「영월영감」이 적혀있다.
 
요리골목 벽면에 붙은 패널은 ‘소설의 벽’이라 이름 붙인 설치 작품으로 이태준 단편소설 「영월영감」이 적혀있다.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사실 「영월영감」은 제목을 제외하면 영월과는 별 관계가 없는 소설이다. 굳이 짐작해보자면, 작가는 ‘충절의 고장’이라 불리는 영월의 이미지에서 강단 있고 우직한 영월영감이란 인물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젊어 영월 군수를 지내어 영월댁이라, 영월 영감이라, 영월 아저씨, 영월 할아버지로 불리어지는 인데, 키가 훤칠하고, 이글이글 타는 눈방울이 늘 술 취한 사람처럼 화기 띈 얼굴에서 번뜩일 뿐 아니라 음성이 행길에서 듣더라도 쩌렁쩌렁 울리는 데가 있는 어른이어서, 영월 할아버지 오신다 하면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었다.” -이태준 「영월영감」 중
 
유명한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새겨 넣은 시비도 볼 수 있다. 원래 요리골목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리를 옮겨 영월초등학교 담장 아래에 있다. 동강 방면 담장으로 지하보도에 마련된 일종의 공공 미술관인 ‘외씨버선갤러리’ 바로 앞이다. 시는 시인의 실제 필체로 새겨져있고 시비 아래 연탄 모양 조형물을 둬 재미를 더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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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를 새겨 넣은 시비. 영월초등학교 담장에 걸려있다.
 
영월과 문학을 관련지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방랑 시인’이라 불린 김삿갓(본명 김병연)이다. 조선 후기 양반 신분을 버리고 방랑 생활을 택한 난고 김병연은 영월에서 나고 자랐으며 방랑 끝에 전남 화순군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이후 그의 아들이 영월로 묘를 이장해 현재의 김삿갓면에 묻혔다. 김병연은 방랑 생활 중에 삿갓이란 의미의 ‘립(笠)’을 이름으로 썼고 사람들은 그가 늘 쓰고 다니는 삿갓을 보고는 그를 김삿갓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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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삿갓문학관. 2003년 개관했고 2017년 1년여 간의 새 단장 작업을 거쳐 작년 말 재개관했다.
 
김삿갓의 묘와 거주지가 있는 지역은 원래 하동면이었으나 영월군이 2009년 김삿갓면으로 명칭을 바꿨다. 김삿갓문학관을 비롯해 마대산 등산로 초입에 조성된 김삿갓 문학공원과 김삿갓 묘역,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만나는 김삿갓 주거지 등이 모여 ‘김삿갓 유적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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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삿갓문학관 내 전시실. 김삿갓의 삶과 여정, 주요 작품, 관련 사료 등을 볼 수 있다.

김삿갓은 봉건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 고단한 민중의 삶을 목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한 시에 담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김삿갓의 시에 담긴 해학과 풍자. 세도가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은 올곧은 시대정신과 높은 예술혼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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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삿갓문학관에서 볼 수 있는 김삿갓 관련 소설과 시집. 정비석 소설 『소설 김삿갓』, 이문열 소설 『시인』 등이 눈에 띈다.
 
한편 영월군은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예술혼을 추모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김삿갓 문화제’를 매년 개최해왔다. 22회를 맞는 올해 행사는 오는 9월 27~29일 3일간 김삿갓 문학관을 비롯한 김삿갓면 일대와 장릉, 영월문화예술회관 등 영월읍 일대 등에서 개최된다. 백일장과 학술 심포지엄 등 문학 관련 행사 외에도 음악회, 코스프레 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조선시대 영월 과거대전(27일 오전 10시~오후 2시 장릉), 전국 김삿갓 백일장(27일 오전 10시~오후 1시 김삿갓묘역 행사장), 영월빅백드와 민혜경의 가을 음악회(27일 오후 5시 20분~6시 20분, 김삿갓묘역 행사장), 코스프레 경연대회(28일 오후 1~2시 영월문화예술회관), 김삿갓 방랑 거리축제 퍼레이드(28일 오후 3~4시, 오후 5~6시 영월읍 및 김삿갓면 일대), 김삿갓 갓 탤런트(9월 29일 오후 2~4시, 김삿갓묘역 행사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행사 기간 중에는 시화전, 수석전, 서예전, 서각전 등 다양한 전시가 펼쳐지며 인절미 떡메치기, 짚풀 공예, 향토음식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될 예정이다.
 
성큼 다가온 독서의 계절, 문학 작품 속으로 떠나는 영월 가을 여행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시와 소설에 담뿍 빠져든 뒤 책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정취와 신나는 축제는 덤이다. 
 
▶소개된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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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이광수 저, 이정서 편저, 새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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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이별 영이별』 김별아 저, 해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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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영감」 이태준 저, 이태준중단편전집2 『해방 전후』 수록, 애플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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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저,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수록,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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