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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38번 서울 시내 로또 명당 가보니

2019-08-23 17:06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장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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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통장에 수십억원을 넣어두고 사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전세보증금 맞추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단돈 5,000원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 로또 1등 당첨이다.
언젠가 어떤 선배가 가방에서 영수증만큼 얇은 종이를 몇 개 꺼냈다. 지금은 동행복권으로 이름이 바뀐 로또 번호가 적힌 종이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선배다.

“나 어제 돼지꿈 꿨거든. 바로 로또 명당이라고 소문난 데 가서 다섯 장 샀지.”

좋은 꿈을 꿨다기에 냉큼 하나를 빼앗았다. 토요일 오전 당첨번호를 확인했다. 결과는 꽝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로또 1등 당첨이 절실해진 날이 있었다. 이사는 가야겠고 전세금은 비싸고 손 벌릴 데는 없었다. 그래서 전에 선배가 로또를 샀던 그 명당을 찾아가봤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S편의점’이다. 가기 전에 지도 앱으로 미리 살펴보니 아파트단지 내 상가에 있었다. 이런 데가 로또 명당이라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일단 길을 떠났다.

금요일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동네는 한산했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 하교하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이 집이구나’ 싶었다. 조용한 동네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줄을 선 사람들이 인도에서 도로 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줄이 더 길어질까 싶어 얼른 마지막 자리에 섰다. 줄을 서자마자 기자 뒤쪽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로또는 당첨자 발표가 나기 전 금요일에 가장 잘 팔린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오후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햇볕이 따가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이었는데도 벌써 줄이 길었다. 손부채질을 하면서 줄을 선 사람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이다. 가끔씩 30대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도 왔다.
 

로또 명당에서 한 장만 사는 사람은 없다

S편의점 안에 입성할 때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이곳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기계가 무작위로 추첨하는 ‘자동’으로 뽑는데도 오래 걸렸다.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어서 뭔가 싶었는데 전날 미리 뽑아둔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화요일 거 하나, 수요일 거 세 개 주세요” 하면 그날 뽑아놓은 로또를 파는 식이다.

앞에 선 50대 아저씨에게 “여기 자주 오세요?” 하고 말을 걸었다. 화곡동에서 왔다는 김용직(가명) 씨는 여기까지 로또를 사러 한 달에 한 번은 온다고 했다.

“월급쟁이가 만지는 돈이 뻔하지. 거기다 마누라한테 용돈을 타서 쓰는데 얼마나 눈치가 보이는지 몰라. 하루는 용돈 더 달라고 했다가 둘이 싸웠어요. 그때 로또를 처음 샀어. 내가 1등 당첨되면 10원 한 장 주나 봐라 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매주 사게 됐어요. 이제 한 주라도 거르면 허전해요.”

김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덧 가게 안에 입성했다. S편의점은 말만 편의점이지 먹을 것이라곤 제일 구석 벽 쪽에 있는 음료수용 냉장고 외에는 없었다. 가게 전체가 로또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가게 오른쪽에는 수동으로 번호를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펜을 들고 신중하게 번호를 색칠하는 모습이 흡사 수능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줄을 서기 시작한 지 20분쯤 됐을 때 드디어 포스기 라인까지 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이 다 현금을 꺼내고 있었다. 다급히 지갑을 찾아서 보니 지폐가 하나도 없었다.

“몇 장 드릴까요?” 하는 점원에게 “카드는 안 돼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별 희한한 사람 다 본다는 듯이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로또는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가게 옆 ATM기에서 현금을 2만원 찾았다. 다시 줄을 서려는데 좀 전에 진지한 얼굴로 수동 로또를 구입한 40대 주부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인천에 사는 이선희(가명) 씨다.

“간밤에 엄청 귀한 꿈을 꿔서 왔어요. 꿈은 자세히 말 못 해요. 복 날아가면 어떡해. 그냥 돼지꿈이라는 것만 말할게요. 여기가 유명한 로또 명당이라고 해서 왔어요. 오늘 한 10만원어치 샀나? 반은 수동으로 하고 반은 자동으로 했어요. 여기 오기 전에 좋은 번호를 몇 개 뽑아놨거든요.”

이 씨는 로또를 자주 사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좋은 꿈을 꾸거나 기분이 내킬 때면 한 번씩 산다. 그런데 오늘처럼 로또 명당이라고 소문난 곳에 와서 대량구매를 한 것은 처음이란다. 로또 명당이라는데 남다른 기운이라도 느껴지는지 물었다.

“기운은 모르겠어요. 여기서 하루에 로또만 몇 만장씩 팔리니까 그래서 1등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 내가 되면 생큐죠!”

다시 줄을 서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이곳에 온 사람들 중에 한 장만 사서 가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못해도 다섯 장씩은 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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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성수기 하루 평균 4만~5만 명 방문

정신없이 일하는 점원들 가운데 S편의점 김현길 사장이 있었다. 하루 평균 4만~5만 명이 찾는단다.

“오늘은 줄이 짧은 편이에요. 사람이 많을 때는 근처 마들역까지 줄이 한 2㎞는 된 적도 있어요. 그때 한 3시간은 기다려야 했는데도 짜증을 내는 손님이 별로 없었죠.”

로또가게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기다리기 힘드니까 찾는 사람이 적지 않을까 싶었다. 김 사장은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이 늘 사람이 많다”고 했다. 27년간 한자리에서 로또 명당으로 있으면서 이런 손님, 저런 손님을 다 봤다며 한 노부부 이야기를 꺼냈다.

“참 운이 없는 손님이었어요. 로또 초창기에 매일 오던 노부부가 있었는데 한 번도 자동으로 산 적이 없어요. 그래도 당첨운은 좋았죠. 2등 당첨도 됐으니까. 그분들이 우리 가게에 온 지 6개월 만에 수동으로 52억원을 받는 1등 당첨자가 나왔어요. 우리 판매점 첫 1등이죠. 당연히 그 부부가 당첨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지난주에 우리 가게에서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하니까 사색이 되면서 점집에 전화하는 걸 봤죠. 그 점집에서 ‘이제 그 집에서는 1등 안 나온다’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들을 못 봤지.”

김 사장에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이 자리가 정말 명당인지 물었다.

“풍수지리 전문가들이 여기가 개발 전에 저수지 자리여서 터가 좋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명당자리를 믿지 않아요. 로또 판매점이 쉬워 보이지만 아니에요. 나는 마케팅을 열심히 해서 이만큼 잘된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홍보해서 판매액이 많아진 덕분에 1등이 많아진 것 같아요.”

김 사장과 대화를 마치고 나자 손에 로또 네 장이 들려 있었다. 좀 전에 만났던 이선희 씨처럼 돼지꿈을 꾸진 않았지만 혹시 당첨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날 토요일 오후 8시 45분 로또 당첨번호 추첨시간이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 앱의 큐알코드를 찍었다. 짧은 순간 ‘당첨되면 어떡하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당첨금 수령하러 가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확인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당연히 ‘꽝’이었다. S편의점 준비물인 돼지꿈을 못 꿔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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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또1등당첨  ( 2019-08-24 )  수정 삭제    답글 찬성 :3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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