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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마> ‘무엇이든 열심’, 자기계발 나선 엄마들

2019-03-04 10:01

취재 : 이근하 기자  |  사진(제공) : 조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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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딱 두 글자인데 무게감은 가히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다. 엄마의 존재란 그래왔다. 크고 든든하며, 쉽게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 같았다. ‘슬픈 사람’일 때도 있었다. 다른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당신 자신은 챙기지 못하곤 했다. 우리는 그것을 ‘엄마의 희생’이라 했고, 당연시했다. 이런 인식이 달라진 지 오래다. 엄마 역할이 집안일에 한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조건 당신의 희생 위에 가족을 세우려 하지도 않는다.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 나선, 달라진 요즘 엄마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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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 엄마’ 박지현 씨
엄마를 어떻게 생각할진 아이들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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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 하!”

익숙한 듯 삼 남매를 한꺼번에 부른다. 흔한 엄마다. 아침밥을 챙겨 먹이고 등교시키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저녁밥을 먹이고 뒷정리한다. 그런데 조금 깊숙이 들여다보니 흔한 엄마는 아니다. 무려 5만3000여 명이 지켜보는 인플루언서(influencer) 엄마다. 소셜미디어상에서 ‘쪼냐(joniya)’라고 통하는 박지현 씨다.

인플루언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하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소셜미디어 유명인’을 가리킨다. 박 씨는 ‘엄마 일상’을 콘텐츠로 하는 인플루언서다.

“큰애를 가지면서 일을 그만뒀어요. 10살, 8살, 6살 세 아이를 키우면서 출근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근데 애들이 나가면 저는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잠자고 자꾸 처지는 거예요. 뭔가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막막하고. 아는 동생이 인스타그램을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있더라고요.”

이것저것 보여주고 나누고 이야기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또렷해지는 세상이었다. 일상, 육아, 살림을 보여주기로 했다.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도 여럿이 공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사진을 찍어 올리면 그만일 줄 알았건만 웬걸,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시물 하나 만드느라 반나절이 흐른 적도 있다. 결혼 전 디자인 관련 일을 했던 터라 그 영향도 있었다.

“보시는 분은 모를 수 있지만 저는 사진 속 몇 ㎜조차 고민하고 또 고민해요. 살짝 틀면 더 나아 보이지 않을까, 저쪽으로 밀면 더 잘 나오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이요. 하나를 만들어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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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어가 늘고 DM(Direct Message), 협찬 의뢰가 잦아지면서 더 몰두하게 됐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일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현실은 불가능했다. 인플루언서이기 전에 엄마였다.

“네다섯 시면 애들이 와요. 저녁 준비할 시간이죠.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씻기고 재우면 밤 9시 반쯤 돼요. 그럼 저는 다시 인플루언서로 출근하는 거예요. 틈날 때마다 출근하는 기분이랄까요.(웃음) 어떨 땐 잘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빠요. 근데 저 진짜 행복해요!”

그가 말하는 행복감은 남편과 아이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초반엔 애들이 ‘우리 엄마가 일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엄마가 아빠처럼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일한다니까…. 저더러 왜 자꾸 휴대전화 들고 있냐고. 지금은 엄마도 일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요. 제가 만든 콘텐츠를 보여주면 되게 좋아하고요. 무엇보다 남편이 ‘너 잘하고 있다’고 자주 말하는데 들을 때마다 기쁘고 뿌듯해요.”

남편의 주말 외조도 그가 인플루언서가 되는 데 한몫했다. 주말이면 아이들 식사도 챙기고, 아내가 사진 촬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인플루언서 활동명인 ‘쪼냐’도 평소 남편이 부르는 애칭이란다.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변화를 맞은 건 그만이 아니었다. 세 남매의 시선 속 엄마도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을 왜 안 해봤겠어요. 오롯이 애들만 챙기는 엄마? 바쁘고 잘나가는 엄마? 둘 다 장단점이 있겠더라고요. 분명한 건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이들 몫이니 맡겨야죠.”

떠올려보면 ‘내 엄마’는 많은 사람을 이끌고 포용하는 멋진 동네 대장이었다. 엄마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건 그래서였다. 다만 닮고 싶지 않았던 건 한 가지. 엄마 자신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릴 때 요플레를 되게 좋아했는데 애들 생기고 나서 거의 안 먹어요. 저보다 애들이 더 많이 먹었으면 해서… 애들이 한자리에서 2개씩만 먹어도 6개잖아요. ‘애들은 크면서 맛있고 좋은 것 많이 먹을 테니까 내 것 챙겨야지’ 하면서도 결국 아이들이 우선이 돼요. 친정엄마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는 요즘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매일 보던 텔레비전을 켤 여유조차 없다. 주변 엄마들이 “언니, 얼굴 보기 힘들어~”라고 할 정도다.

“바빠요. 정말 바빠요. 그래도 잊을 수 없는 건 제가 엄마라는 행복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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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엄마’ 최재희 씨
엄마 됐다고 ‘나’를 잊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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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 8시. 대다수 가정이 저녁식사에 한창일 시간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함께 밥을 먹거나 소매를 말아 올리고 설거지를 할 즈음이겠다. 땡! 아니란다. 화방에서 그림 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이 여성도 엄마이니 말이다.

최재희 씨는 열다섯 살 딸을 둔 전업주부다. 자기계발에 푹 빠진 엄마다. 주에 한 번 화실에 들러 그림을 그리는데 저녁시간을 다 쓴다.

“낮에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일부러 저녁에 해요. 저녁에 돌아다니는 건 젊은 친구들, 퇴근한 직장인이나 할 수 있다고 많이 생각하잖아요. 주부는 저녁이면 남편, 애들 챙겨야 할 것 같고… 그걸 깨고 싶었어요. 유흥가를 가는 것도 아니고 그림 그리러 가겠다는데 뭐 어때요. 저도 밤 냄새가 좋단 말예요.”(웃음)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남편과 한 약속이었다.

“어휴, 그땐 사랑에 눈이 멀어서 오케이 했던 거죠.”

일을 하고자 해도 아이가 천식을 앓아 가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소중한 내 아이를 돌보는 게 그땐 우선이었다. 아이는 건강해졌고, 학교생활도 무리 없이 해냈다. 어느 날 문득, 서글퍼졌다. 아이에게 모든 걸 쏟아내느라 ‘나’를 잊고 살았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저도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이 세상에 저는 없더라고요. 대체 나는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죠. 우울증과 갱년기가 겹쳤던 것 같아요. 애한테 괜히 화내고 짜증내고….”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우연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그날 밤이 최고조였다.

“<K팝스타>를 보니까 요즘 애들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본인 꿈을 찾겠다고 애쓰는 거예요. 춤, 노래 연습하는 것도 힘들 텐데 남는 시간 쪼개서 생활비를 벌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펑펑 울었어요. 아이들도 저렇게 달리는데, 나는 주부임을 핑계로 안일하게 살고 있었구나…. 제 자신을 향한 실망감이 한없이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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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그를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딸도 행복해. 당신 하고 싶은 것 했으면 좋겠어.”

도자기공예를 전공한 터라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그걸 아는 지인이 그림을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림을 시작한 계기였다. 재밌는 건 자기계발을 시작하고서 주부 역할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엄마로서 충실하면서도 스스로에게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인 걸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분명히 자기계발을 하려고 외출하는 건데 아이는 엄마가 놀러 가는 줄 알아요. 너무 신나게 인사하면서 집을 나서나 봐요. 하하.”

최근 들어 딸아이가 엄마의 그림 활동을 부쩍 반기는 눈치라고 했다. 얼마 전엔 그림을 보고 한참 놀리는 것 같더니 넌지시 “보기 좋다”고 하더란다.

모녀 관계도 한층 나아졌다. 늘 집에만 있던 시절엔 딸아이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면, 각자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더 이해하게 된 덕분이다.

화실을 오고가며 좋은 인연들도 생겼다. 때로는 엄마 입장에서, 때로는 그림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공동 전시회를 네 차례나 열었다.

“처음에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별칭을 만들었어요. 앤, 나나, 베티. 원더. 아! 제가 원더예요.”

그는 과거 자신처럼 ‘내 존재’를 잊고 사는 엄마가 있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혹, 비용 문제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덧붙였다.

“엄마들끼리 모이면 밥 값, 커피 값 1만~2만원은 금방 사라지죠? 그 돈으로 물감 사시길 권할게요. 특히 물감은 한번 사면 몇 달씩 쓰거든요. 자기계발용 통장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에요. 아이, 남편에게 쓰는 돈에서 조금만 떼서 모아보세요. 은근히 큰돈 모아요.”

자기계발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느냐고 묻자 그가 씩 웃었다.

“환갑 때 개인전 여는 거요! 와서 축하해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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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엄마, 밤엔 DJ 이민선 씨
디제잉도, 육아도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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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올 때까지 디제잉을 했다. 덕분에(?) 뱃속 아이는 EDM(Electronic Dance Music)으로 태교했다. 누가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얘기다. 뭐 어떤가. 이런 엄마도 저런 엄마도 있으니, 디제잉하는 엄마도 있는 거지. 연년생 남매 엄마 이민선 씨의 또 다른 이름은 ‘DJ KANDE’다.

학창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터라 일찍이 클럽문화를 접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다고 DJ가 될 줄은 몰랐다.

“동생이 DJ학원에 같이 가보자는 거예요. 처음 간 자리에서 ‘이거다!’ 했어요. 배우는 게 한창 재밌어질 때쯤 임신 사실을 알았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배웠어요. 만삭 직전까지였던 것 같아요.”

정작 그를 학원에 데려간 동생은 MBA 공부를 시작했고, 따라간 그는 정식 DJ가 됐다. 주부를 한가한 사람으로 보는 일부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하냐는 시선도 있었다.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 디제잉을 할 때다.

노란빛 머리에 화려한 액세서리. ‘엄마 패션’이라고 규정된 건 없다지만 여느 엄마들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그다.

“저를 처음 본 학부모들 반응이 다 비슷해요.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궁금해하세요. 친한 학부모가 저랑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다른 학부모들이 곧장 묻더래요. 그 엄마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고. 어떤 택시기사가 ‘학생, 다 왔어!’라고 한 적도 있어요. 하하.”

그의 머리색을 가장 좋아하는 건 유치원생 남매다.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과 머리 색깔이 같으니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다른 색 머리를 하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아이들 입장에선 특별할 게 없는 엄마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이 ‘아줌마는 머리가 왜 노란색이에요? 미국 사람이에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때 문득, 우리 애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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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모두 하원하면 오후 4시다. 그전까지 작업을 하고 아이들을 맞는다. 그때부터 아이들이 잠들 때까진 온전히 엄마가 된다. 늦은 밤이면 다시 DJ다. 주말 밤에만 공연한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집중하려 한다.

“좋아하는 일도, 육아도 잘해내고 싶어요. 육아도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거든요. 실패하기 싫어요. 둘 다 하려고 잠을 줄이고 텔레비전도 안 봐요.”

DJ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엔 남편의 역할도 컸다. 남편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튀게 입을수록 좋아한단다. DJ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 공연장에 찾아와 관람도 했다.

“새벽 3~4시에 공연할 때가 많아요. 남편이 워낙 일찍 자는 사람이라 이제 새벽 공연은 도저히 못 보겠대요.”

시어머니의 반응도 제법 쿨하다.

“야야, 니 염색했나. 대구에선 니만치 세련된 색깔을 내는 아를 못 봤데이.”

그는 스스로 ‘다른 엄마’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오늘날 엄마 모습이 다양해지고 있고, 자신은 그중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시대가 변했어요. 저희 엄마 세대에 제 모습은 쇼킹할 일이지만 달라졌고 더 달라질 거예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해외 라이프스타일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새로운 엄마 이미지도 볼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는데 둘째 아이가 돌아왔다. 집 안에 울리는 EDM이 익숙하다는 듯 DJ박스 옆을 거닐었다.

“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중에 코코몽이라고 있어요. 코코몽이 디제잉 몸짓 비슷하게 춤을 췄던가 봐요. 그걸 보더니 ‘우와, 저거 엄마 꺼다’ 하던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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