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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리얼 체험기 2> 하정우처럼 4만보 걷기

2019-02-08 16:28

취재 : 장가현 기자  |  사진(제공) : 셔터스톡, 박세나  |  도움말 : 김테라 발레 더 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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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오죽하면 걷는 걸로 영화도 만들고 예능도 만들고, 책도 쓰겠나. 그런데 2만 보, 3만 보도 아니고 4만 보라고? 궁금했다. 평범한 30대 체력이라 믿고 싶은 내가 하루 4만 보를 걸을 수 있을까? 그래서 걸어봤다. 하정우처럼.
그리 오래 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셀프로 소개하는 곳은 소개팅 자리다. 이름, 전화번호만 알고 만나니 그만큼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예의이기도 하고. 대충 ‘호구조사’를 하고 나면 “취미가 뭐예요?”라고 묻는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걷기예요.”

그렇다. 나는 자타공인 ‘걷기 왕’이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엄청 나게 걷는다. 그걸 알다 보니 친구들은 “걷자”는 말만 들어도 다들 기겁을 한다. 흔히 생각하는 정도의 걷기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걷지 않겠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만나주는 친구도 있다, 치사하게.

얼마나 걷기에 그러냐고? 한참 걸을 때는 3시간 정도 걸었다. 이태원에 살 때는 한남동 부촌으로 가는 언덕을 지나 남산을 넘고 충무로, 명동을 거쳐 청계천까지 향하는 코스를 자주 걸었다.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얼마 전 배우 하정우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걷기를 주제로 쓴 책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걷길래 책까지 내나 싶어서 읽어봤다. 하루 3만 보, 가끔 10만 보도 걷는단다. 10만 보는 무리여도 3만 보 정도는 나도 걷겠다 싶었다. 책장을 넘기는데 하와이로 여행을 가면 4만 보를 걷는단다. 4만 보 정도면 걸을 만하겠지 싶었다.

‘그래, 하정우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걷기 준비를 시작했다. 4만 보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조금씩 걷는 훈련을 했다. 동네를 걷거나 걸어서 퇴근하는 정도였다. 자타공인 걷기 왕이지만 최근 들어 마음껏 걸은 적이 없다. 핑계는 많다. 일이 많았고, 날씨가 추웠고, 날이 좋은 날은 미세먼지가 많았다. 휴대폰 어플에 기록된 걸 보니 하루에 적으면 8000보, 많으면 1만 보쯤 걸었다. 수치를 눈으로 확인하자 자신이 없어졌다. 많이 걸은 날의 4배는 걸어야 하니까.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무리 없이 걸으려면 자세부터 바르게 잡아야 했다. 바르게 걷는 자세, 걷기 전에 하면 좋은 스트레칭을 배우러 발레 스튜디오를 찾았다. 발레는 다이어트나 자세 교정에 좋다. 가냘프고 날씬한 몸매로 유명한 최지우, 박신혜, 강소라 같은 연예인이 선택한 운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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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전에 스트레칭은 필수

김테라 발레 더 테라 대표에게 걷기에 좋은 스트레칭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 대표가 어깨를 잡았다.

“어깨에 라운드가 있어요. 등을 앞으로 미는 느낌으로 어깨를 바로 하셔야 해요.”

스트레칭 전에 바르게 서기 연습부터 했다. 턱은 살짝 들고 어깨를 펴고. 숨은 코로 들이쉬고 갈비뼈를 조이는 느낌으로 내쉬면 코어근육을 기르는 데 좋단다. 그다음 하체를 교정했다.

하체는 승마살이 있는 쪽 허벅지를 안으로 만다는 느낌으로 서면 된다. 무게중심은 엄지발가락에 둬야 한다.

“무게중심이 새끼발가락으로 가는 순간 골반이 틀어지고 신체 불균형이 와요. 그래서 평소에 무게중심을 엄지발가락에 두고 걷는 연습을 하면 좋아요.”

여기서 고비가 왔다. 팔자걸음으로 걷는 버릇 때문에 무게중심이 자꾸 새끼발가락으로 갔다. 엄지에 힘을 주고 걷는데 누가 보면 밥도 못 먹은 사람처럼 휘청댔다. 무게중심을 옮겨 걷는 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걷는 연습을 제대로 해야 자세가 발라지고 몸을 예쁘게 만들 수 있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걷는 연습을 하다가 본격적으로 걷기에 좋은 스트레칭을 배웠다.

“걸을 때는 골반이랑 다리를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하체 근육을 충분히 풀어주는 동작을 하는 게 좋아요. 골반을 유연하게 풀어줘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거든요. 또 다리 뒷면을 늘려주는 동작으로 근육을 풀어주면 뭉치지도 않고요.”

처음 했던 동작은 한쪽 다리를 바에 올리고 올린 다리 반대쪽 손을 들어 옆구리를 늘리는 ‘캄블레’ 동작이다. 캄블레는 다리 뒷면 햄스트링, 종아리 근육을 늘리고 옆구리까지 풀어주는 동작이다. 근육이 충분히 풀릴 때까지 15초 동안 양쪽을 번갈아가며 세 번씩 하면 된다.

다음은 마찬가지로 바 위에 다리를 뻗고 바닥에 닿은 쪽 무릎을 인-아웃으로 번갈아가며 구부리는 동작이다. 무릎이 굽는 방향에 따라 골반을 누르면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관절을 풀어준다.

세 번째 동작은 한쪽 다리를 반대쪽 허벅지에 올려서 무릎을 굽히는 ‘를르베’ 동작이다. 수시로 하면 좋다. 골반도 풀어주고 허벅지 근육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키는 동작도 좋다. 바를 잡고 서서 뒤꿈치를 최대한 높게 올리는 동작이다. 종아리 근육을 단련시키면 걸을 때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종아리 근육을 예쁘게 잡아줘서 아름다운 다리 라인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제 신발을 고를 차례다. 걸을 때 좋은 신발은 단연 운동화다. 워킹용 운동화는 가볍고 쿠션감이 있는 제품을 고르는 게 좋다. 무거운 운동화를 신고 걸으면 발목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쿠션이 충분한 운동화를 신어야 걸을 때 무릎과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요즘은 걷기, 러닝, 트레킹, 등산 등 기능별 신발이 다양하게 나와 있어 용도에 따라 신발을 고르면 된다. 다만 낡은 운동화는 안 신는 것만 못하다. 평발인 사람은 운동하기 전에 평발을 교정하는 운동화나 깔창을 구입해서 준비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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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많은 날은 꼭 마스크 착용

모든 준비가 끝났다. 본격적으로 걸을 차례다. 걸으려고 하는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어떤 날은 춥고 어떤 날은 미세먼지가 많고. 선택을 해야 했다. 답은 추운 날이었지만 한동안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추운 날을 만나기 힘들었다. 다시 책을 폈다. 하정우는 미세먼지 많은 날도 걸었나?

그 역시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걷기로 영화도 찍고 책도 낸 사람답게 굴하지 않고 걸었다.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낀 채로 말이다. 나도 미세먼지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걷기로 했다.

디데이는 1월 14일로 잡았다. 집에서 가장 멀리 가는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양재역에서 집 근처 홍대입구역까지 걸었을 때 걸리는 시간을 지도 앱으로 측정해봤다. 약 15㎞에 3시간 56분 걸린다고 나왔다. 내 걸음으로 1시간에 4.4㎞를 걸으면 1만 보쯤 되므로 3시간 56분은 3만5000보쯤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날은 양재역, 고속버스터미널역 인근에 일정이 있어 양재역에서 걸어서 집까지 가기로 했다.

디데이 아침이 왔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배운 대로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스트레칭을 하니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닥쳐올 참사가 끔찍했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꾹꾹 눌렀다.

양재역까지 걸었는데 4만 보가 안 될 경우를 대비해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40~50분 걸었다. 그러자 7000보 정도 됐다. 점심을 먹자마자 양재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자마자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구간은 양재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역까지다. 길은 카카오지도 앱으로 찾았다.

그날은 미세먼지가 매우 심했다. 미세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미세미세 앱에 하루 종일 까만 해골이 뜰 정도였다. KF94짜리 마스크를 쓰고 걷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세먼지가 마스크를 뚫고 코와 입으로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걷다가는 서울에 있는 미세먼지를 혼자 흡입할 것 같아 근처 약국을 찾았다. 마스크를 갈고 다시 길을 떠났다.

돌이켜보니 작정하고 걷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공기가 상쾌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강남 한복판을 걷는데 복잡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곳마저 새롭게 보였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학원으로 향하거나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마스크 없이 다니는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미세먼지 문제는 언제 해결될까’ 투덜거리면서 다시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40~50분 지나자 반포 자이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너편에 고속버스터미널이 보인다. 고속버스터미널역 지하에는 우리 모두가 아는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참새가 방앗간 근처에서 참기름 냄새를 맡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눈요기라도 하자 싶어서 지하도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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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가 많으면 걷는 즐거움도 높아진다

밖에서 보는 고층 아파트와 빌딩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생필품, 꽃, 의류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지하상가는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걷기 체험 중이었지만 쇼핑을 온 기분이었다. 중간에 지름신을 부르는 옷을 몇 가지 발견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2만 보 정도 걸은 상태였다.

‘이런 페이스라면 4만 보도 어렵지 않겠는데?’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었다. 한 시간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다. 길에는 인적도 드물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아 두려웠다. 음악을 끄고 이어폰을 뺀 채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그즈음 슬슬 통증이 느껴졌다. 주로 왼쪽 엉덩이와 골반이 아팠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섰다. 그리고 를르베 동작을 했다. 발레 스튜디오에 있는 바를 대신해 다리를 올릴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10분 정도 더 쉬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걷기 시작하자 다시 골반이 쑤셨다. 스트레칭으로는 무리인듯 싶었다. 걷는 자세에 집중했다. 김 대표의 말을 떠올렸다. ‘허리를 세우고 등을 앞으로 밀어서 어깨를 편다. 그다음은 승마살을 안으로 만다고 생각하고 엄지발가락에 무게를 싣는다.’

이 모든 걸 한꺼번에 하려니 버벅거렸다. 일단 엄지발가락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느낌으로 걸었다. 걸으면서 신경을 쓰자 허리가 길어지고 몸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를 폈다. 허리에 힘을 주는 것도 쉽지 않다. 걸을수록 허리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앱을 켜서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봤다. 에걔, 겨우 3만2000보? 앞으로 8000보는 더 걸어야하는데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자 지난날이 후회됐다. ‘작작 먹을 걸. 연말이라고 너무 놓고 지냈어.’

몸이 힘들어지자 걷는다는 의미는 사라지고 4만 보라는 숫자를 채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앱에 올라가는 숫자만 세고 있었다. 지루했다. 헬스클럽 트레드밀을 뛰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었다. 이래선 의미가 없다.

왜 걷기를 좋아하는지 다시 생각했다. 주변 경치를 볼 수 있고,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고. 그래, 그래서 나는 걷기를 좋아했다. 앱을 끄고 다시 걷기에 집중했다. 지루하지 않도록 다시 음악을 틀었다. 다행히 번화가로 들어서자 반포대교를 지날 때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보도로 걷는 게 지겨워지면 공원으로 걸었다. 아파트 단지 안을 가로질러 걷기도 했다. 길을 바꿔가며 걸으니 다시 재미가 붙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연트럴파크, 경의선 숲길에 이르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앱을 켜니 4만725보를 걸었다. 해냈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이 밀려왔다. 발바닥에는 물집이 생겼다. 다리도 아프고 골반도, 허리도 아팠다. 하지만 성취감이 주는 희열이 아픔을 눌렀다.

걷기체험을 하고 난 다음 날 한 선배가 물었다.

“아무리 걷기를 좋아해도 죽을 것 같지? 힘들지?”

물론 힘들다. 힘들어서 도중에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는 게 걷기다. 누가 또 걷자고 하면 주저 없이 그러겠다고 답할 것이다. 단, 평균 체력을 가진 일반인에게 4만 보는 무리다. 하정우 따라 걷다가 병원에 입원하는 ‘웃픈’ 엔딩의 주인공이 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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