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 동영상
  • 카드뉴스
  • 조선뉴스프레스멤버십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RE:CREATION
  1. HOME
  2. RE:CREATION
  3. mental

신년 계획이요? 올핸 ‘대충’ 살아요 part2 대충사는 사람들

2019-01-03 09:45

취재 : 박지현 기자  |  글 : 이창희 프리랜서  |  사진(제공) : 이종수

  • 메일보내기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새해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달릴 준비를 한다. 물리적 변화부터 감행해본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세신 서비스를 받거나, 집 구조를 바꾸거나. 그리고 나서 ‘다짐’이라는 걸 한다. 단골 메뉴인 금주, 금연, 다이어트를 비롯해 승진, 합격, 결혼 등 사정은 다양하겠다. 다이어리를 사고, 첫머리에 한 해의 결심을 아로새긴다. 고삐를 바투 잡는다. 새 마음, 새 뜻과 함께 단단히 긴장하면서 길면, 몇 달을 보낸다. 그러다 연말에 가까워지면 ‘올해도 별 소득 없이 지나갔다’며 허무해한다. 다시 이듬해,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우리는 모두 안다. 매년 겪는 일이다. 목표치를 달성하기엔 한 해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는 것. 왜? 그냥 살던 대로 살아도 이미 충분히 치열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충살기’가 인기다. 치열하게 살아도 별것 없다는 자조일 수도, 뜨겁게 살아본 자들만 누리는 여유일 수도 있다. 대충 살면서 비로소 나를 찾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힘을 뺐더니 훨씬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더불어 ‘대충살기’ 열풍을 주부들은 어떻게 보는지 살펴봤다. 대다수 주부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대충 살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그렇게 생긴 여유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퇴근길 책 한 잔’ 김종현
“그러든가 말든가”

세상 어디에나 특이한 사람은 곳곳에 존재한다. 아니 많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철학도 없이 세상을 비웃으며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 거다. ‘대충’ 그리고 ‘되는 대로’ 사는 삶의 방식을 통해 고루함 투성이인 세상에 맞서 실체 없는 정체성을 고수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인근에 가면 이상한 책방이 하나 있다. 분명 문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이 공지돼 있음에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운 좋게 책방에 발을 들였더라도 주인장 얼굴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잠시 머물러 있다 보면 더욱 가관이다. 얌전히 앉아 책을 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떠들거나 술을 마신다.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갑자기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제안에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태반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여러 주제를 놓고 밤새워 떠들고, 술잔을 부딪치며 울고 웃기도 한다. 이 대체 무슨 마성의 공간이란 말인가.

“저기, 혹시 주인장이신가요?”
“아뇨, 지난주에 여행 갔어요. 어디로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지는 모르고요.”
“그럼 누구세요?”
“저는 그냥 알바입니다. 무보수 알바.”

책방을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통과의례처럼 겪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놀고 싶어 퇴사하다

책방은 지난 2015년 4월 문을 열었다. 이 책방의 주인장 김종현 씨는 올해 서른여섯의 미혼이자 비혼주의자 청년이다. 책방을 열기 전까진 그저 평범한 한국 남성의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회사를 다녔다. 그 뒤론 작은 사업을 벌여 제법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놀고’ 싶어서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놨다. 여기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간부터 마련했다. 그리 넓지 않지만 조촐히 모여 떠들고 놀기 좋은 정도는 됐다. 용도를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나 둘씩 갖다 놓기 시작했다. 책, 악기, 그림, 술 등. 공간을 꾸미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필 책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책방이 됐고, 그는 책방 주인이 됐다.

“애초에 구상한 건 전혀 아닙니다. 책 읽고 술 마시고 같이 떠들고, 때로는 공연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대로 공간을 꾸미다 보니 어느새 지금처럼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 잠깐 생각한 가게 이름은 연구소였어요.(웃음)”
 

돈은 안 버나?

그런데 궁금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술이 동나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책방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것은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뿐이다. 임대료도, 세금도 내야 할 테고 본인 수익도 있어야 할 터인데, 돈은 어떻게 버는 걸까.

의외로 돌아오는 답은 심플했다. 많이는 못 벌어도 굶어 죽진 않는다는 것.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동년배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이지만 그는 별로 부럽지 않다. 이미 다 해본 것들이기도 하고, 이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여유와 자유가 있기 때문에.

가치 기준을 사회에서 자신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꽤나 시큰둥하다.

“전적으로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무조건 용기 있는 것은 아니고, 저 같은 사람과 다르게 떠나지 않음으로써 얻는 가치가 분명 있으니까요. 동경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현재를 떠나기 원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친구들은 현재 그 가치가 더 높은 것일 뿐입니다.”
 

뭐든 스스로 했던 유년시절

이 같은 그의 성향은 어릴 적부터 형성됐다. 함께 사는 부모로부터 강요란 것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 명절 모임부터 가족 여행, 진학 문제까지 모든 것을 그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세상 모든 가정의 아이들은 본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을 정도니까.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다. 남성 문화의 그릇된 점을 답습할 수 있는 군대를 일반 부대가 아닌 미군 카투사를 다녀옴으로써 피해갈 수 있었고, 대학 시절 유럽에서 교환학생 경험도 그의 시각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기제가 됐다.

물론 그가 자유로운 영혼을 갖게 된 것이 온전히 주변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 스스로 “타고나서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현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질서에 무조건적으로 반발하고 대척점에 서는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은 경계한다. 단지 원하는 걸 하는 것이 자유로울 뿐, 자신이 사회의 보편성과 일부 맞는 부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서기 위해 공부하거나 애쓴 경험은 없어요. 하기 싫은 것들 대신 하고 싶은 것들에 전적으로 집중했고, 그게 대단하진 않아도 자유로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습니다.”
 
 

 
본문이미지

최재형 씨 부부
“섬에 집 짓고 살 건데, 계획대로 안 돼도 괜찮아요.”

“지금은 아침 여덟 시입니다. 직장에서 나올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일 겁니다. 태양은 오늘 당신을 위해 빛나지 않을 겁니다. 일에 미쳐 사는 삶에서 깨어나라고 경고하는 책 <일하지 않을 권리>는 이 같은 구절로 시작하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사회생활 15년 차인 재형 씨(43)는 지난 2015년, 늦은 나이에 아내 아람 씨와 결혼해 현재 4살 아들을 두고 있다. 혼자 살 때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도록 애썼는데, 가벼운 통장 잔액과 과로로 인한 각종 질병뿐이었다. 외로운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덤이었다”고 했다. 그의 삶은 결혼 이후 조금씩 바뀌었다. 부부는 결혼 후 일본 오키나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오키나와의 느린 삶의 방식에 푹 빠져 근 2년간 약 10번을 다녀왔다고 한다. 틈만 나면 다녀온 셈. 그러면서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제가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 했는데 아직까지 서울에 집이 없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오키나와 부동산 시세를 알아봤는데, 시내를 조금 벗어난 곳은 20평대 단독주택이 2억 안팎이더라고요. 이후 그곳에 집을 장만하겠다는, 여기가 ‘우리 집이 생길 곳’이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더니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물론 상상으로 시작한 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재형 씨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집이 생기면 좋은 거고, 아니라도 상관없다”면서 “가족들과 이 같은 상상, 희망을 공유하면서 함께한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충 산다’는 건 기존 기성세대가 세워놓은 ‘치열함’의 기준에서 벗어난 삶이겠죠. 그것이 결코 문자 그대로 ‘대충’은 아니라고 봅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며 정말 태양 한 번 못 보고 사는 삶이 아니라 아이 재롱 한 번 더 보는 이 삶이 ‘대충’이라고 한다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대충 살고 싶네요,”
 
 
본문이미지

주니 차 씨
“명문대 나와서 전업주부 하면 안 되나요?”

그의 인생에는 ‘속박’이라는 게 없다. ‘주니 차’라는 이름이 다소 생경하다 싶었는데, 이 또한 예명이라고 한다. 그는 한때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최근 6살배기 아들과 함께 긴 여행을 다녀왔다. 주로 여행과 음식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재밌다.

“회사에서 연말 건강검진을 받았어요. 여러 군데 문제가 많더군요. 그때 제 나이 불과 30대 초반이었어요. 돈 번다고 건강을 잃다니요. 무엇을 위해서? 그만두고 바로 통영으로 갔어요. 왜 통영이었냐고요? 그냥요.(웃음)”

여기까지 들으면 흔한 ‘자유로운 영혼’ 같지만, 의외의 이력(?)도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연구소에 취직했다. 한땐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주니 씨는 “그렇게 사는 것 외에 다른 삶을 몰랐다”고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숨을 돌리자 인생의 변환점이 찾아왔다고 했다. 가끔 주변에서 ‘서울대 나와서 전업주부를?’ 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그는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각자 기준인 거고, 분명 지금 나는 더 행복하다”고 했다.

“20년 지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역시 너는 애도 고시 공부하듯이 키운다고요.(웃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요. 연구원에 계속 있었으면 놓쳤을 시간들이잖아요.”

그는 ‘대충살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하. 그거 너무 재밌네요. 대충살기. 외려 자신의 삶에 떳떳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은데요? 치열하게 살았던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요. 그들만이 이 말을 ‘농담’ ‘여유’로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으니까요. 자기 인생에 책임감 없이 산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할 거고요. 그런 차원에서 저는 대충 잘살고 있습니다.(웃음)”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글쓴이 :      비밀번호 :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