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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 만한 세상 가을처럼 선선한 미담

2018-09-05 15:45

취재 : 박지현 기자  |  사진(제공) :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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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피곤한 여름이었다. 기록적인 폭염 때문만은 아니다. 자극적인 각종 사건사고에 정신적 피로까지 더해져서다. 더위도 한풀 꺾였겠다, 이제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자.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다.
그간 놓치고 살았던 ‘한 뼘’의 미담들.
# 요금 안 받고, 되레 돈 건넨 택시기사

‘임신부 감동 준 택시기사님’. 지난 8월 중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한 임신부가 택시에 탔는데,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택시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순산을 기원합니다’란 글귀가 적힌 흰 봉투를 건넸다는 사연이다. 봉투에는 현금 1만원이 들어 있었다.

미담의 주인공은 부산 영도구에 거주하는 김영신(75) 씨. 김씨는 이런 봉투를 매일 10장씩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김 씨는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저출산 시대, 임신부를 만나면 반갑다. 택시에 타는 임신부들만이라도 부담 없이 목적지에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에 택시비를 받지 않고 봉투를 건넨다”며 쑥스러워했다. 김씨가 이 같은 선행을 베푼 건 택시를 시작한 5년 전부터라고. 김 씨는 “한 달에 내 택시를 타는 임신부들은 3∼4명 정도”라면서 “인구 절벽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 처음엔 무료운임 서비스에다 ‘순산을 기원합니다’라고 쓴 봉투에 5000원을 담아 임신부에게 건넸다가 지난해부터 1만원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예기치 않은 호의에 손사래를 치며 택시비를 내겠다는 임신부도 많지만, 볼펜으로 직접 쓴 격려 봉투를 보고는 이웃 어르신이 주는 선물로 치고 기꺼이 받는 경우도 있단다. 김 씨는 “대중교통의 임신부석이 늘어나고, 택시비 지원 등 혜택이 생겨 몸이 무거운 임신부들이 마음 편히 이동할 수 있길 바란다”면서 “매년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에는 임신부를 위한 할인 행사나 작은 선물이라도 주어지면 기념일이 더 뜻깊어질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 70대 승객 보이스피싱 막은 택시기사

그런가 하면 자신이 태운 승객이 보이스피싱으로 5000만원을 뜯길 뻔한 걸 알고, 설득 끝에 피해를 막은 택시기사도 있다. 택시기사 김기태(67) 씨는 지난 8월 6일 오후 4시 50분께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에서 쇼핑백을 든 여성 A씨(70)를 태웠다. 이 여성은 탑승 후 경기도 시흥으로 가는 내내 통화를 계속했다. 40여 분이 지나 휴대전화가 배터리 방전으로 꺼지면서 통화는 중단됐다. 통화 내용을 이상하게 여긴 김 씨는 A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A씨는 “보증금을 안 갚으면 아들을 냉장고에 가두고 해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고. 보이스피싱이라 판단한 김 씨는 “요즘 세상에 보증금을 안 갚는다고 납치하는 게 어디 있느냐”며 경찰서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A씨는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A씨는 “‘엄마 살려줘’라는 아들의 비명을 전화통화에서 들었다”며 “빨리 가지 않으면 아들이 죽는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A씨의 쇼핑백에는 5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오랜 설득 끝에 경찰서로 향하던 중 김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A씨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통화 시도 끝에 아들이 전화를 받자 A씨는 대성통곡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김 씨는 사당역으로 차를 돌려 오후 6시께 A씨를 아들에게 데려다줬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금감원에서는 지난 8월 13일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며 김 씨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김 씨는 “누구라도 그 통화 내용을 들었다면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 마포대교 투신 여성 구한 시민들

지난 8월 18일 오전 10시 47분. 119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울 마포대교 남단에서 한 여성이 투신하려고 한다는 신고였다. 신고를 접수한 소방 당국은 여의도수난구조대가 현장으로 출동하는 동시에 경찰에도 즉각 협조를 요청했다. 구조대가 다리 밑에 도착했을 때 A(24)씨는 다리 난간 바깥에서 떨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이때 마포대교를 건너던 30대 중반 한국인 남성 2명과 30대 외국인 남성 1명이 A씨를 붙잡고 시간을 끌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에게 A씨를 인계한 뒤 곧바로 현장을 떠났다. 경찰은 A씨를 지구대로 데려가 조사한 뒤 보호자에게 인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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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빠진 아이 구한 20대 ‘천사 커플’ 

유난히 덥던 지난여름. 7월 25일 제주 함덕 해수욕장에서는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튜브를 탄 채 물놀이를 즐기던 6세 여아가 바람에 휩쓸려 물속으로 고꾸라진 것. 당시 아이가 있던 곳은 수심이 깊어 물놀이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때문에 안전요원은 물론 구조장비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그때 근처에서 카약을 타고 지나가던 20대 커플이 이를 목격했다. 이들은 재빨리 노를 저어 다가가 물속에서 아이를 건져냈다. 곧바로 카약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서너 차례 흉부압박을 하자 새파랗게 질려 있던 아이가 물을 토해내며 의식을 되찾았다. 커플은 아이를 무사히 육지에 데려다주고 조용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이들은 각각 대학교 4학년 학생과 자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이었다고 한다. 이 커플은 당시 상황에 대해 “아이를 구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쏟아졌고 펑펑 울면서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착실하게 사는 청년들이었다는 게 알려지며 세간에 한동안 ‘천사 커플’로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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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의 독지가, 구청에 1억원 쾌척

익명으로 1억원을 쾌척한 독지가 얘기도 들려왔다. 지난 8월 13일 부산진구청에 따르면 독지가 A씨는 무작정 구청을 찾아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면서 이웃돕기 성금 1억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1000만원 자기앞수표 10장을 가져온 이 독지가는 자신의 신분을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부산진구는 “소액기부운동인 ‘천원의 사랑! 만인의 행복’ 사업에 독지가의 성금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내년에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저소득층에 교복을 지원하는 ‘꿈나무 지원 사업’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진구의 경우 롯데그룹이 장학금으로 두 차례에 걸쳐 10억원을 전달한 바 있으나 개인 독지가가 억대 성금을 한 번에 기탁한 것은 처음이다.
 

# 버스 성추행범, 시민들에게 붙잡혀

특히 여유가 없는 출근길. 시민들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 성추행범을 잡는 데 힘을 보탠 소식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 17일 오전 8시 30분께 지하철 서대문역 근처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한 여성의 몸에 자신의 신체를 수차례 밀착하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버스 안에서 A씨를 붙잡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만원 승객들 때문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A씨는 재빨리 하차했다. 혼자 내린 A씨는 왕복 8차로인 서대문역 도로에서 무단횡단까지 일삼으면서 달아났다. 이에 피해자가 A씨를 가리키며 “성추행범이다, 잡아달라”고 외쳤고, 몇몇 시민이 나서 골목길로 달아나는 A씨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조사를 마치는 대로 A씨에 대한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 커뮤니티 회원들, 익명의 힘으로 폐업 매장 살려

지난 8월 11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글 하나가 올려왔다. 아동복 업체를 운영한다고 소개한 A씨는 “매장을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A씨는 “매장 월세도 2개월이나 밀렸고, 매장 내 에어컨이 망가져 현재 매장 운영도 일주일째 문 닫고 있다”며 “이 와중에 배송사고까지 터져 가게 운영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또 “곧 가을 신상이 들어오니까 매출 조금 늘 거라고 힘내자고 말한 게 어제였는데, 눈물짓는 와이프 얼굴을 보니 맘이 아프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A씨는 “혹 키즈 옷 필요하신 분 오시면 일부 그냥 드리겠다”며 “먼 곳에 사시더라도 택배비만 준다면 아동복은 그냥 드리겠다”면서 사연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안타까운 상황을 접한 네티즌들이 합심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한 것. 하나 둘씩 구입 의사를 남기며 해당 아동복 매장의 옷을 구입하기에 나선 것. 실제로 사연 이후 이 아동복 매장에서 옷을 구매한 한 네티즌들이 ‘인증샷’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도움의 손길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작은 공조사무실을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현재 가지고 있는 중고 냉난방기기가 두 대 있다”면서 “연락 주면 일정 조율 후 설치해주고 싶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며칠 뒤 원 글 작성자 A씨는 “덕분에 매장 폐업 위기를 넘겼다”면서 감사의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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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온 소녀 신발 사주고 밥 먹인 대학생

백석문화대학교 학생의 선행이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8월 4일 ‘백석대 대신 전해드립니다(백석대·백석문화대 관련 페북 페이지)’에는 “자신의 딸에게 선행을 베푼 학생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딸을 키우는 A씨는 “지난 7월 23일 저에게 혼난 딸이 밤 11시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집을 나갔다”며 “그때 딸에게 운동화와 밥을 사주고 집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학생을 찾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백석대에 다니는 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꼭 답례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글에는 4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그 결과 선행을 베푼 학생에게도 도달됐다.

화제의 주인공인 대학생 정 씨는 댓글을 통해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맨발로 돌아다니고 있었다”며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물어봤고 ‘집을 나왔다’길래 나도 한때 그런 적 있었던 생각이 났다”고 했다. 이어 “문을 아직 닫지 않은 신발가게에서 신발을 하나 사주면서 집에 꼭 들어가기로 약속했고, 아이도 밥을 아직 못 먹었다길래 햄버거를 같이 먹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씨는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집에 잘 들어가서 더 고맙다. 보답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다”며 답례를 정중히 사양했다.
 

# 택배기사님 물 드시고 가세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 아파트 입주민을 위해 때맞춰 배송하시느라 노고가 크십니다. 생수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마음 편히 필요하실 때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평소 택배기사님들의 어려운 사정에 마음 쓰시는 입주민께서 익명으로 기사님 드리라고 생수를 기부하셨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글이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 4월 25일부터 현재까지 택배기사들에게 생수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폭염이 지속된 이번 여름, 아파트 주민들의 선행으로 택배기사들은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 따르면, 이는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관리사무소 측은 “익명의 기부자가 처음 생수를 200병 기부했는데 떨어지면 계속 채워준다고 했다”며 “해당 기부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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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고 내린 3억원 주인 되찾아준 택시기사

승객이 택시에 두고 내린 현금을 찾아준 택시기사도 있다. 가방 안에는 5만원 권 6000장, 무려 현금 3억원이 들어 있었다. 지난 7월 1일 대구에 사는 택시기사 이태원 씨(71)는 동대구역에서 태운 중년 남자가 대구 시지의 한 아파트에 내리면서 뒷트렁크에 여행가방을 두고 내린 것을 발견했다. 가방을 열어본 이 씨는 거액의 현금을 보고 깜짝 놀라고 겁이 났다고. 하지만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이 씨는 경찰 측에 “(나는) 돈 욕심도 없고 그저 이 돈의 주인을 어떻게 찾아줘야 하나 싶었다”면서 “연락처가 있을까 싶어 찾았는데 없어서 고민하다 경찰서에 신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가방 주인의 신원과 거액의 현금을 소지한 경위 등을 확인한 뒤 주인에게 가방을 돌려줬다. 3억원을 잃어버린 승객은 부모에게 되돌려줄 돈이었다면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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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모차 살린 택배기사 ‘감동’

지난 4월, 맘 카페를 뜨겁게 달군 글이 있었다. 바로 ‘유모차 살린 택배기사’라는 제목의 글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는 택배 차량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택배 차량은 좌회전을 하던 중 횡단보도 중간에 정차한다. 그때 화면 오른쪽에서 도로를 향해 유모차가 굴러왔고, 유모차는 택배 차량의 바퀴 부분에 살짝 부딪히고 멈춰 섰다. 한 여성이 급하게 달려와 유모차를 인도로 끌어가고, 택배 차량은 유유히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이후 이 택배기사는 한 언론을 통해 “답십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느라 그쪽을 살피며 가고 있었다. 그때 인도에서 차도 쪽으로 유모차가 점점 빠르게 굴러오는 걸 발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씨는 유모차 속 아이 얼굴을 봤고, 너무 놀라 차에서 내려 유모차를 잡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차로 막으려 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자신의 뒤로 다른 차량들이 오고 있어 유모차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본 후에 이동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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