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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전유 직업은 없다

성별 선입견 깨는 여성들

2018-05-10 14:20

취재 : 황혜진 기자  |  사진(제공) : 안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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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 남자아이들의 꿈은 소방관, 여자아이는 간호사가 많았다. 하지만 남자만 할 수 있는 직업, 여자만 할 수 있는 직업이 따로 있을까. 남성 전유 직업으로 여겨지는 분야에서 성별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있는 여성들을 만났다.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다는 말 들을 때 뿌듯해요”
 
국내 첫 A380 여성 기장 황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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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 친구분의 남편이 공군 조종사였어요. 벽에 걸려 있는 유니폼과 일명 ‘마후라’(머플러), 모자가 참 멋있었죠. 고등학교 1학년 때 공군사관학교 모집 요강을 보고 지원하려 했는데 여자는 안 뽑는다더라고요. 대학 4학년 겨울에 신문에서 조종훈련생 모집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어 지원했죠. 그렇게 대한항공의 첫 여성 조종사가 됐습니다.”

황연정(45) 기장은 대한항공에 단 4명 있는 여성 기장 중 1명이자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가장 큰 항공기인 A380을 조종하는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여성 기장이다. 남성 전유 직업으로 여겨지는 파일럿으로 22년 차 베테랑이 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궁금했다, 뉴욕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황 기장을 대한항공 본사에서 만났다.
 
 
여성 기장으로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언제인가요? 기내 방송을 하면 승객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장이 여자냐’고 묻는대요.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고요. 이스라엘에서 사업하는 한 여자분이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여권 뒤에 사인해달라는 분도 있었고요. 7살짜리 여자아이가 색종이를 접어서 선물해준 것, 엽서를 써주신 분도 있는데, 잘 간직하고 있죠. 뿌듯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비행기에서 여성 기장 목소리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요. 대한항공에 기장이 3000명 정도 되는데 그중 여성 기장이 단 4명이에요. 부기장과 훈련생까지 합치면 26명이고요. 이것도 많아진 거예요. 세계적으로도 여성 기장 수가 남성 기장에 비해 턱없이 적어요. 예전에는 교신할 때 여자 목소리가 전혀 안 들렸는데,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 인도 여성 기장들의 목소리가 들려요.

여성 기장이 적은 이유는 뭘까요? ‘캡틴’이라는 단어도 배의 선장에서 왔잖아요. 항공도 군에서 온 거고요. 배나 군대나 남성 문화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해보니까 오히려 여성이 하면 좋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우선 회사에서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기장 업무는 모니터와 주파수, 객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체크해야 하는데 여성이 멀티에 능하잖아요. 여자라서 못하거나 뒤처질 이유가 없죠.

여성이어서 힘든 점은 없나요? 대한항공에서 처음 여자 조종사를 뽑았을 때 입사했어요. 처음이니까 당연히 여자들이 모든 과정을 잘 통과해낼 수 있을까 의심의 눈초리로 볼 때 힘들었죠. 여자는 기장이 몇 명 안 되기 때문에 중간 이상을 수행해야 중간 정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후배들에게도 이야기해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요. 늘 남자 기장과 비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조종석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답다죠. 여느 사람들은 쉽게 보지 못하는 풍경이잖아요. 오로라를 볼 때도 있고, 유성이 떨어지는 걸 볼 때도 있어요. 해가 뜰 때보다는 해가 지면서 조금씩 어두워지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죠. 아이들한테도 이야기해요. 엄마가 유성 떨어질 때 소원 빌었다고요. 20년 가까이 보다 보니 하늘 모습이 마음에 담겨 있어요.

장거리 비행으로 집을 비우는 때가 많아 육아 고충이 있겠어요. 중2 쌍둥이 남매를 두고 있는데요.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어서인지 아이들이 적응되어 있어요. 제가 없어도 자기들이 할 일을 잘 챙기죠. 아이들이 서너 살 때는 힘들기도 했어요. 옷자락을 붙잡고 “엄마 안 가면 안 돼?” 할 때는 마음이 아팠죠. 그런데 이제는 스케줄이 몰리거나 몰아서 쉴 때 집에 오래 있으면 “엄마 언제 나가냐”고 물어요.(웃음)

남매는 여자 직업, 남자 직업을 구분하지 않겠어요. 자신이 부족한 점이나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 남자라서 못한다, 여자라서 못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남녀 구분이 점점 없어지고 있잖아요. 남자만 할 수 있는 일,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죠. 대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그런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별에 관계없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바라는 점이나 목표가 있다면? 여자 후배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잘하는 만큼 많이 뽑을 거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해왔고, 실제 후배들이 늘어나는 걸 보며 뿌듯해요. 여자도 기장을 할 수 있다는 걸 많이 알리고 싶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정년까지 건강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체력을 잘 관리하고 싶고요. 올해부터는 1년에 한 가지씩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어요.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세운 목표예요. 나를 위한 선물이죠. 페루 마추픽추 여행을 앞두고 있어요.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즐겁습니다.
 
 

“누가 억지로 시켰다면 못했을 거예요”

대한민국 첫 여성 용접기능장 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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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력 약 20년에 강의 경력 약 15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용접기능장이자 여성 최초의 용접부문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인 박은혜(45) 교수를 만나기 위해 경기 안양에 위치한 한 금속 제품 제조회사를 찾았다. 기계음과 불꽃이 가득한 공장 한편에서 잔뼈 굵은 남성 기술자들과 어우러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지난 시간과 노력을 쉽게 가늠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용접 일을 하게 되었나요? 진짜 배고파서 했어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거든요. 경리로 시작했는데 일이 재미없어서 대표님께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죠. 다행히 좋은 분이셔서 기회를 주셨어요. 제가 버틸 수 있는지 보느라 3~4년 동안 시쳇말로 많이 굴리셨죠. 그런데 제가 의외로 잘 버티는 거예요. 전산부, 설계부, 자재과 거치면서 상가, 아파트 건설 현장에 나갔고, 배관과 용접을 배웠어요. 두 가지 일은 떼놓을 수 없는 분야거든요.

현장에서 소금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고요. 설계장이라고 왔는데 24살 25살 어린 여자니까 그 바닥에서 몇 십 년을 일해오신 분들은 가소로울 수 있잖아요. 한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서 소금을 허리춤에 차고 한두 개씩 먹곤 했는데 그걸 뿌리셨어요. 일은 재밌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특히 기술력도 생기고 아저씨들과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현장에서 즐길 줄 알 무렵 정말 재밌었죠. 하고 싶고 즐거우니까 했지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힘든 점도 많았죠? 그럼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쁘게 봐주는 사람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갖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여자가 없으니까 저는 물만 마셔도 눈에 띄잖아요. 이 길을 먼저 개척한 사람이 없으니까 힘들 때 물어보거나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현장에는 남자뿐인가요? 그렇죠. 우선 용접을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제가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로 언론에 나오면서 처음 알려진 거나 마찬가지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즐거움과 자부심이 있어요. 이렇게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하러 와주시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잘 견뎠다’ ‘그것만으로 대단하다’고 상을 주시는 것처럼 느껴져요.

여자라서 오히려 장점인 면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장일도 하지만 가르치는 일을 많이 하거든요. 우선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어떤 게 잘 안 되는지, 어떤 점이 힘든지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 엄마 마음이라는 거예요. 북한 여학생을 가르친 적도 있는데 나이, 성별을 떠나서 내 딸이다 아들이다, 내 남편이다 아버지다 생각하니 저절로 관심이 가고, 취업까지 책임져줄 수밖에 없었어요. 집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보살피지 못한 마음이 현장에서 후배를 가르치는 마음으로 간 것 같아요. 이 분야는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스스로 자랑스러운 건 제가 가르친 학생은 한 명도 중도 탈락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결혼과 출산 이후 더 본격적으로 일했다고요. 딸아이가 20살, 아들이 19살 연년생이에요. 아이들 키우는 동안 정말 정신없었어요. 빨리 일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둘째가 걸음마를 뗐을 때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경제적으로 빨리 같이 벌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결혼 전에 현장에서 재밌었기 때문에 일하고 싶었죠. 이 분야는 자기 노력 없이는 안 되는 곳이에요. ‘봐준다’ 그런 거 없어요. 감사한 건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는 거예요.

용접일을 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에도 들어갔다고요. 낮에는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퇴근한 남편과 배턴 터치하고 야간 시간을 이용해 폴리텍대학에 다녔어요. 다른 학생들은 수업 끝나고 오후 9시에 집에 돌아가는데 저 혼자 남아 소등시간까지 공부했죠. 지도교수님이 밤 12시 넘었다고 집에 가라면서 간식을 사들고 오시곤 했어요. 여자 제자를 키워보신 적이 없으니 반신반의하셨을 텐데 제가 최선을 다하는 동안 기다려주셨죠. 며칠 전에 뵀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잘 커줘서 고맙다고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용접 부문에서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가 됐고, 여성 최초로 용접기능장이 됐어요.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뭔가요?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집에도 기능장이 되는 조건으로 공부하겠다고 했고요. 어릴 때는 공부하는 걸 싫어했는데 오히려 결혼한 후에 석사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잘못된 부분을 알고 새로운 걸 배우면 재미있잖아요. 워낙 모자란 부분이 많아 노력을 많이 했어요. 누가 억지로 시켰다면 못 했을 거예요. 딸한테도 계속 권했는데 싫대요.(웃음) 무슨 일이든 본인이 즐거우면 하게끔 돼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목표는 뭔가요? 작년에 준명장인 우수숙련기술자로 선정됐어요. 명장에도 도전해야죠. 특허도 내야 하고, 책도 써야 해요. 봉사도 꾸준히 해나갈 거고요. 초심을 잃지 않고 한 획을 긋는 박은혜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길로 오고 싶다면 누구든,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거든요.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자라는 한계가 오히려 길을 찾게 해줘요”

7년 차 여성 목수 유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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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핫한 가게들에 가면 소목장세미의 유혜미(31) 대표가 만든 가구들을 만날 수 있다. 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유혜미 대표는 가옥의 창과 문을 짜는 일에서부터 실내 가구, 기물을 만드는 ‘소목장(小木匠)’처럼 진짜 장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장인 장(匠)’ 대신 ‘장소 장(場)’자를 써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7년 차 여성 목수다.

클라이언트를 제외하고는 일을 하며 여성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거래처를 뚫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 덕에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가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름은 혜미인데 브랜드 이름은 소목장세미예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부르던 이름이 세미였어요. 부모님이 이름을 바꿔주신 건데 제 이름 같지 않았어요. 브랜드 이름을 만들 때 원래 이름을 가져왔죠.

조소를 전공했는데 가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막막했어요. 미술은 등단해서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라 40~50대까지 열심히 작업을 하면서 인정받아야 해요. 졸업하고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할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기본적으로 공구는 다룰 줄 알았으니까요. 내가 쓰기 쉽고 편하게 설계해서 직접 가구를 만들어보니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2층 침대도 만들었고, 제가 만든 가구를 보고 지인들이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여자를 받아주는 목공소가 별로 없었다고요. 목공을 더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어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데 다시 학교에 갈 수는 없고, 가구학교는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나라에서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쳐서 안 되고요. 목공소에 들어가 일을 배우면서 돈도 벌어야겠다 생각했는데 “무거운 거 들 수 있어요?” 질문만 하지 여자라고 안 써주더라고요. 그러다 한 공방에서 연락이 와서 8개월 정도 일하고 제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실제로 해보니 어떤가요? 몸이 힘든 건 있죠. 한번은 자정에 작업할 일이 있었어요. 그 시간에 같이 일해줄 사람이 없더라고요. 혼자 다 해체하고 트럭에 실어서 작업실에 갖다놔야 하는데 1톤 용달 트럭이 꽉 차도록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내 일인데 ‘그만할래요’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을 넘어가니까 몸에서 엔도르핀이 솟는 게 느껴졌어요. 운동이나 등산을 할 때 너무 힘들다가도 어느 시점을 지나면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게요. 이걸 한 번 겪고는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요령도 생기고, 마냥 힘든 일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얻었죠. 이제 익숙해요.

가구 만드는 일은 어떤 점이 매력인가요? 클라이언트한테 의뢰를 받고 만들어놓으면 항상 제가 갖고 싶어요.(웃음) ‘내가 쓰면 진짜 좋겠다’ 싶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예요.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가구인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으니까요. 저희 집 가구도 다 제가 만든 거예요. 자식 같은 마음이 있죠.

일하면서 여자라서 겪은 일이 있었나요? 좋은 분도 많지만 불쾌한 경험도 많았어요. 용달차 기사님들 중에는 “왜 아가씨가 이런 걸 하고 있어” “결혼은 했어?” “남자친구 데려와야지” 하는 분도 있었고요. 을지로에 재료를 사러 가면 저를 작업자가 아닌 귀찮은 학생으로 보고 대답도 제대로 안 해주시곤 했어요. 그런데 한번 거래를 하고 주문이 계속되니 이제 잘해주시죠.(웃음)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은 거래처와 일해서 괜찮아요.

남자들 직업이라 여겨지는 분야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자는 남자 일을 하고 여자는 여자 일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반대여도 잘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이 일이 남자만 하는 일이라는 걸 부정하면서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 게 어딨어?’ 하는 마음으로요. 무거운 나무를 다룰 때는 남성에 비해 힘이 세지 않다는 자각도 했죠. 하지만 그걸 극복할 만한 저만의 방법을 찾았거든요.

어떤 방법인가요? 하나씩 나를 수 있게 미리 가재단을 해서 작업실로 가지고 와요. 혼자 살면서 가구를 옮겨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견고함은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조립과 분리가 가능한 가구를 만들었죠. 이런 식으로 계속 머리를 썼어요. 일하면서 남자 목수인데도 저보다 못하는 분들 많이 봤어요. 제가 설계도 더 잘하고 일처리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찾았고요. 여자라서 갖는 장점이 분명 있어요.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하면 분명 길이 있더라고요. 성별과 상관없는 자유로운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 짜맞춤법이 매력적이어서 목공을 시작할 때 배웠어요. 옛날 방식 그대로 보전되고 있을 뿐 현대식으로 젊고 다르게 해석하는 친구는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시장 가격이 안 맞거든요. 조금 더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으면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짜맞춤법을 활용한 새로운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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