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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돈벌이 하는 여자들

김예분 정희숙 백정림

2016-06-28 10:04

글 : 박지현 기자  |  글 : 신정민  |  글 :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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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그게 돈벌이가 됐다. 평소 요리하는 걸 즐겼던 김예분 씨. 방송인으로 활약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케이크디자이너로 거듭났다. 그는 이제야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깔끔한 성격이라 남들보다 집 안 정리를 잘했던 정희숙 씨.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정리컨설턴트로 새 삶을 살고 있다. ‘남의 집’ 정리에 조언을 해줬더니, 많게는 하루 매출이 5백만원을 찍기도 한단다. 앤티크한 게 좋아 자금자금한 소품들을 수집해온 백정림 씨. 쌓여가는 골동품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져 별다른 재테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란다. 살림하느라 팍팍한 일상 중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즐길 수 있는 일, 그게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결코 사치가 아니다. 큰 가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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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좋아 케이크디자이너 된 김예분
미스코리아의 케이크는 달랐다

과연, 예뻤다. 미스코리아 출신이 빚은 케이크라 그런가. 제과엔 문외한이지만 보기에 좋았다. 수준급이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쳤다. 일산의 작은 가게. 이곳에 둥지를 튼 지 1년이 된 김예분은 “아직 전문가라 할 수 없다”며 웃었다. 양손으로 감쌀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아이보리 색 크림이 부드럽게 발렸고, 그 위엔 파스텔 톤 버터크림으로 짜낸 장미꽃 몇 송이가 얹혔다. 맛나 보였다. 이 정도 케이크면 얼마냐고 했더니, 웬걸. 안 판단다.

찾는 사람에게만 만든다
5평 남짓한 공간. 이곳이 김예분의 작업실이다.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는다. 여기서 케이크 모양을 구상하고, 빚어내기도 한다. 만들었다고 다 팔지는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만들어 판다. 그런데 희한했다. 가게에는 이렇다 할 전화번호나 상호명 같은 게 없었다.
“홍보에 따로 열을 올리지 않고 있어서 그런데, 케이크 브랜드가 있긴 해요.(웃음) 알아서 전화 주시는 분들에게만 판매하고 있어요. 저 스스로 컨디션이 괜찮을 때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요. 시간에 쫓겨서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쉽게 말해, 팔고 싶을 때 판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지인들과만 거래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그는 “아는 사람에겐 돈 받기 뭣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고 주문한 사람들과 ‘쿵짝’이 맞았을 때,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한다. 장 보기부터 배달까지 직접 나선다.
“케이크는 먹기 직전에 만들어야 제일 맛있거든요. 배달 같은 경우 포장을 잘하면 택배로 해도 되는데요, 웬만하면 제가 직접 가요. 언젠가 부산에서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도 손수 들고 갔어요.”
이러니 받아 든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예쁘다, 예술이다, 먹기 아깝다, 여러 칭찬 중 아무래도 맛있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 그는 “솔직히 내가 먹어도 진짜 맛있다”고 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쓰기 때문에 깊은 맛이 있어요. 그리고 진짜 부드럽고요. 디자인 또한 시중에서 보기 힘든 독특함이 있어요.”

마흔 무렵 찾은 흥미
알다시피 김예분의 본업은 방송이었다. 1994년 미스코리아로 데뷔해, 한동안 MC로 활약했다. <달려라 코바>, , <김예분의 영스트리트> 등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던 1998년 돌연 은퇴. 미국을 다녀왔고 회사에 입사, 직장인이 됐다. 그러다 결혼했고 가정을 이뤘다.
방송과는 먼 삶을 살았다. 그렇게 십몇 년이 지나 서른아홉 살이 되던 해. 남은 인생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더란다.
“방송 쪽에는 이미 너무 잘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 싶었어요. 저는 제가 한 요리를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줄 때 그렇게 좋더라고요. 요리를 해보자 싶었던 거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에는 용기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능력이 뒷받침돼야 추진력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식품조리학을 다시 공부하게 된 거예요.”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보면, 그는 천생 여자다.
“결혼한 후에도 아침, 점심, 저녁은 무조건 아내가 차려야 한다는 주의였어요. 메뉴도 대충 빵 같은 게 아니라 국 혹은 찌개와 반찬이 있어야 했죠. 아침에 곰국을 준비했다면 점심은 파스타, 저녁은 스테이크 이런 식으로요. 근데 저희 남편은 아침을 안 먹는 스타일이더라고요.”(웃음)
흥미는 물론 소질도 있었다. 식품에 관련된 여러 자격증을 땄고, 상도 많이 탔다. 최근에만 해도 초콜릿마스터 자격증과 케이크디자이너 자격증을 딴 데 이어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7월부터는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에도 돌입할 계획이다.

내 삶의 결정권은 내가
그는 당분간 이렇게 ‘조용히’ 케이크를 만들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알리려 해도 일일이 제 손을 거쳐야 하는 성격상 대량 주문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케이크 작업 이외에도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전통음식을 배우러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와인 공부에 노래, 골프, 필라테스도 배우고 있죠. 중국어와 영어도 꾸준히 배우고 있고 틈틈이 유기견 봉사활동도 한답니다.”
방송을 하던 지난 삶과 비교한다면? 그는 삶의 ‘결정권’을 가지게 된 점에서 크게 다르다고 했다.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을 산다는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남들이 만들어가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이 기대하는 삶, 방송을 할 때는 또 대중들의 눈을 신경 썼고요. 지금은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내 삶의 결정권을 제가 쥐고 있어요. 지난날, 누군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구태여 지키려고 했던 게, 돌이켜 보면 큰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마흔을 훌쩍 넘기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이것저것 손만 많이 댄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한 걸 긍정적으로 봐요.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했고 시야도 넓어졌고요. 올해 제가 마흔넷인데요, 쉰네 살이 된 제가 10년 전을 돌이켜 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하면 답이 나와요. 그때 한창 젊었는데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 할 거잖아요? 지금 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전하고 나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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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가 좋아 정리컨설턴트 된 정희숙
“내일을 꿈꾸지 않으면
내 일은 없습니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자녀교육 때문에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둔 주부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경력단절여성, ‘경단녀’가 그것. 주부로서의 생활에 관성이 생길 무렵 재취업에 도전하지만,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대다수 주부는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 경단녀라는 꼬리표를 떼어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간절히 원해 직업을 얻었지만, 막상 집에 두고 온 자녀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죠. ‘내가 집에 없어도 괜찮을까?’, ‘밥은 제대로 먹는 걸까?’ 등등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집 걱정뿐인데 어떻게 일을 지속할 수 있겠어요?”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 정희숙 대표(45)는 주부들의 경력단절은 물리적 기간이 아니라 자존감 결여에서 온다고 말한다. 고학력에 외국어 능력까지 갖춘 경단녀들이 재취업에 소극적인 까닭, 과연 사회적 냉소와 편견뿐일까?
“문을 열기 전에는 동기가, 집 밖을 나서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문턱을 넘으면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중요해지고요. 재취업이라고 해서 어려울 것 없어요. 젊은이들과 스펙 경쟁을 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으면 됩니다.”
정 대표 역시 평범한 주부에서 정리컨설턴트가 되기까지 절대 쉽지 않은 관문을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와 경제, 연예 등 여러 분야 유명인사들이 집 안 정리정돈을 할 때 그녀를 영순위로 지목할 만큼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비결이 궁금하다. 미혼 시절엔 의류판매장 매니저로, 결혼 뒤에는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온 그녀의 행보를 더듬다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육아의 고통, 정리정돈으로 극복

평범한 주부가 한 회사의 대표가 되기까지 시행착오도 무수히 겪었을 터. 그녀는 내일을 보지 않고 오늘에 묶여 허둥지둥 사는 자신의 현실이 암담했다고 회고한다.
“세 살 터울의 형제를 키우는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이사 관련 사업을 하는 남편은 일을 핑계로 육아에 무관심했죠. 시댁이나 친정에 도움을 요청할 형편도 못 되고…. 어느 날엔가는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추면 편하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고충을 토로하고 전문 상담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우울감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단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을 견딜 수 없던 그때, 그녀가 선택한 건 집 안 정리정돈이었다. 거실에 있던 콘솔을 현관 입구로 옮기거나 꽃무늬 벽지에 하얗게 페인트칠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매일 쓸고 닦고 정리정돈을 하다 보니 우리 집에 더는 손볼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웃의 오래된 싱크대를 시트지로 수선해주고 살림 솜씨가 어설픈 새댁의 냉장고를 청소해주는 등 원정 정리정돈에 나섰죠.”
정리정돈을 하는 시간만큼은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는 정 대표. 무엇보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엔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이웃들의 찬사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그녀 나이 마흔 무렵, 정리정돈 전문가라는 직업과 만나게 된 역사적 순간이다.

취미가 운명을 바꾸고 평생의 업을 선사
정리컨설턴트로 일한 지 4년째, 1천여 개의 집이 그녀의 손을 거쳐 비로소 안락한 쉼터가 됐으니 그동안 쉴 틈 없이 전력질주를 했을 게 분명하다.
“일요일을 제외하곤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한데 신기해요.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 아마도 정리가 제 운명인 듯싶습니다.”
정리정돈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다녔다는 정 대표. 온종일 일하고도 돈 한 푼 못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단다. 전문가들을 보조하며 방송출연을 할 때면, 옷을 사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받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애써 모은 적금까지 해약했지만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돈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좇은 덕분일까. 정리컨설턴트 분야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자신의 사업체를 세울 수 있었다. 그녀를 돕는 정직원만도 15명. 3~4곳의 컨설팅을 다닐 때는 하루 매출이 5백만원에서 6백만원이 넘을 정도다. 정 대표는 “소득수준 증가에 따라 여가와 쇼핑 욕구가 높아질수록 정리정돈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녀를 찾는 고객 대부분이 100만원 이상의 비용을 기꺼이 투자하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얼마 전 그간의 정리정돈 노하우를 담은 <정희숙의 똑똑한 정리법>이란 책을 출간한 정 대표. 올해 말까지 그녀의 이름을 건 정리정돈연구소도 개원할 계획이다.
“사람들이 취미가 뭐냐고 물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게 취미잖아요. 저는 정리정돈이라고 서슴없이 답합니다. 취미가 운명을 바꾸고 평생의 업까지 안겨줬으니 저 이만하면 성공한 거죠? 내일을 꿈꾸지 않으면 내 일은 없습니다. 자신부터 들여다보세요.”
지금 주부로 사는 삶이 무료하다면 일단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떠올려보면 어떨까. 누가 아는가? 취미가 당신의 운명을 바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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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티크한 게 좋아 갤러리 차린 백정림
“천 년 지나도 변치 않을 가치 수집해요”

학창시절, 엄마의 한국 앤티크를 탐닉한 것이 시작이었다. 앤티크의 기품에 매료된 백정림 이고 갤러리 대표가 한 점 두 점 사서 모아온 세월이 무려 20년. 테이블웨어부터 미술품까지, 좋아서 모으다 보니 어느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커다란 가치가 됐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의 호젓한 별장촌 꼭대기에 위치한 이고 갤러리. 천 년도 더 지난 동서양의 앤티크를 모아온 백정림 씨가 자신의 컬렉션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4년 전 마련한 공간이다.
“저만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죠.(웃음)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앤티크 컬렉션들이 있고, 멋스러운 전원주택의 자연경관은 머릿속 모든 상념을 사라지게 해요. 여기에 오는 자체로 힐링이에요.”
이고 갤러리는 입구에서 이미 앤티크의 향연이 펼쳐진다. 수려하게 정돈된 나무와 돌, 들꽃 사이에 놓인 석등과 떡메 등 통일신라시대의 골동품이 정원을 한층 고풍스럽게 만든다. 하우스갤러리 거실 안으로 들어서니 계절감이 묻어나는 푸른빛의 청량한 테이블 세팅이 한눈에 들어온다.
“테이블매트는 1890년대 프랑스 아르누보 시대 제품이고요, 가장 아래의 디너 접시는 미국 빈티지, 그 위는 1800년도 마이센의 디너 접시예요. 코발트 빛 잔은 프랑스 빈티지죠. 탁자는 조선시대 교자상이고, 카펫은 장인에게 의뢰해 수작업으로 만든 충무누빔이에요. 출생지도 나이도 국적도 서로 다르지만 이토록 멋스럽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죠. 정말 멋지지 않나요?”
백 관장은 앤티크의 매력을 이야기하며 기자에게 앉을 자리를 권했다. 1800년대 프랑스 셰비 스타일의 앤티크 의자였다.

친정엄마에게 물려받은 ‘컬렉터’ 안목
백정림 관장이 동서양 앤티크에 관심을 가진 건 대학생 때다. 백 씨의 친정어머니는 취미로 우아한 한국 골동품을 수집했다. 서양의 티 문화에 일찍 눈을 떠 집에 손님이 오면 늘 빈티지 티포트에 정성껏 우려낸 홍차를 대접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백 관장은 30대 중반 한국 목가구와 장신구 등을 컬렉션하다가,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커트러리 수집을 시작했다. 젊어서 남편과 함께했던 학원 사업이 잘돼 한창 재산이 불어나던 시기이기도 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딜러를 통해 손에 넣기도 하고, 한국 앤티크는 저보다 먼저 컬렉션을 했던 선배님들에게 구매하기도 해요. 50년, 100년, 200년 된 앤티크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죠. 저는 모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그것들이 제 역할을 다 하도록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이고 갤러리의 주방, 거실, 부부 침실, 다락방, 한실, 다실 등 곳곳에서 앤티크 오브제들이 빛을 발한다. 2층 한실과 아들의 공부방 사이 그 작은 공간에도 한국 앤티크들이 정성스레 놓여 있다. 고급스러운 보석함에는 대삼작놀이개, 투호삼작놀이개, 매화장비녀, 투각옥비녀 등 조선 후기 명문가 아녀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보석이 담겨 있다.
그가 수집한 컬렉션은 1800년대의 르네 랄리크, 바카라, 티파니 등의 테이블웨어를 비롯해 조선시대 반다지, 떡시루, 이우환과 이동엽 등 현대미술 작가의 그림 작품까지 무려 1만여 점에 달한다. 아르누보, 아르데코, 아트앤크래프트, 빅토리안 시대의 생활용품은 희소가치도 어마어마하다.
“오리지널 앤티크인 경우 10년 전에 비해 가격이 1.3배에서 1.5배 정도 올랐어요. 특히 은 제품이 급등했죠. 좋은 물건은 세월이 흐를수록 수량이 줄어들고 가치가 높아지니 가격이 점점 올라요. 그림 같은 경우도 <호랑이와 까치>라는 민화를 10년 전에 1백만원도 안 주고 샀는데 지금은 6백만원을 줘도 못 사죠. 그럼에도 컬렉션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려면 답이 안 나와요. 내가 좋아서 사용하고 간직하다가 값이 오르면 좋은 거죠.”
티파니의 커트러리는 백 관장이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다. 뛰어난 조형미와 명품의 오라가 있기 때문. 티파니 제품은 시작부터 백화점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메이드 인 티파니라면 믿고 사도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앤티크는 히스토리가 중요한 만큼, 그동안 어떤 컬렉터가 사용했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이 써야 좋은 앤티크가 된다.

온 가족이 행복한 홈 문화 전파하고파

백정림 관장은 이고 갤러리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오픈하우스로 만들었다가 지금은 앤티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처럼 운영 중이다. 동호인들과 앤티크가 가진 히스토리를 공부하고 정찬을 나눠 먹으며 홈 문화를 전파하는 행사를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한다. 빅토리안 시대에 대해 공부한 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고 티 파티를 하는 식이다. 가끔 주말엔 플리마켓을 열어 자신의 물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도 한다.
10여 년째 컬렉션을 하면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고급 앤티크를 수집하는 데 있어 그것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목적 등을 알기 위해서다. 그는 주로 외국 고서적과 논문을 많이 읽는다. 지난해부터는 국내 한 호텔에서 한국 앤티크 인문학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그가 컬렉션에 그치지 않고 저변을 확대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품격 있는 홈(Home) 문화 전도사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홈 문화를 전파하고 싶어요. 가정에서, 특히 주방에서의 경영인은 주부이자 아내예요. 주부가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갖고 주방을 경영하느냐에 따라 남편과 자식의 품격이 달라지죠. 물 한 잔을 내도 그냥 플라스틱 컵에 담아 건네는 것과 크리스털 잔을 잔 받침에 받쳐 내는 것은 다르니까요. 어쩌면 저는 앤티크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고귀한 정신을 컬렉션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하우스 갤러리를 통해 품격 있는 홈 문화가 널리 퍼져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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