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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에서 커뮤디렉터로, 박선경 씨

10년차 주부들의 반란_2

2016-06-10 10:04

글 :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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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0년 이상 아내이자 엄마로만 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꿈틀’하며 도전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글을 쓰고 싶었고,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었고, 비누공예를 하고 싶었다.
도전했고, 이뤘다.10년 차 주부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01.jpg


10년 차 주부들의 반란 ②
전업주부에서 ‘커뮤디렉터’로, 박선경 씨
마흔 이후, 비로소 천직을 찾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에너지가 충만한 데다 끼도 넘쳤다. 도회적인 외모의 꽃다운 20대,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한 여인은 그러나 ‘꿈’보다 ‘현실’을 좇아 결혼했다. 사업가인 남편은 아내가 내조에 집중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주기를 바랐다. 1980년대 기혼 여성 대부분이 그러했듯 여인도 박선경(52)이라는 이름보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불리며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를 15년. 주부로 살면서도 그의 가슴 속 한구석에는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일찍 결혼한 탓에 이렇다 할 직장경력은 없었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조건 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정이 박 대표에게 있었다.
“전업주부일 때도 그 ‘때’를 위해 늘 준비했어요. 주부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기웃거리면서 여러 정보를 모았죠. 두 아들을 중3, 중1 때 해외로 유학 보내면서 생각보다 일찍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내 인생에 열정을 가지고 투자를 할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제 나이 마흔이었어요.”
그는 비용이 드는 창업 대신 뜨거운 가슴과 두 다리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카페나 할까’, ‘꽃집이나 해볼까’ 하는 식의 막연한 생각은 애초에 배제했다. 남편의 공부를 위해 온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동네 교육기관에서 배워놓았던 푸드스타일링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무척 생소했다. 요리 실력과 스타일링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에서 정식으로 교육과정을 밟고 프리랜스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속 상차림, 잡지 화보 촬영용 요리, 케이터링 등 활동을 하다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모닝와이드>에 요리전문가로 출연했고, 이를 계기로 요리강사에서 이미지 메이킹,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등을 주제로 관공서와 기업체 및 학교, 병원과 호텔 등에서 강의를 하는 전문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 CS강의를 갔던 한 병원에서 컨설턴트로 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만 3년간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에서 직원교육과 고객상담을 담당하는 업무총괄이사를 역임했다. 성과가 좋아 몸값도 껑충 뛰었다. 어느덧 그의 나이 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흔에 시작… 컨설턴트, 강사, 쇼호스트 게스트로 종횡무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영역을 찾던 중 미국생활 시절 홈쇼핑에서 재봉틀을 팔던 호호할머니 쇼호스트를 떠올려 쇼호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낮에는 병원에서 상담업무를 하고, 밤에는 쇼호스트 아카데미를 다니며 20대, 30대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다. 비록 홈쇼핑사 공채의 문을 뚫지는 못했지만, 전문 게스트 콘셉트로 GS홈쇼핑과 홈앤쇼핑 등에 200회 이상 출연했다. 주부 9단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주방가전, 식품, 가구 등 수십 가지 상품을 판매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경력을 십분 활용해 홈쇼핑 상품 기획사인 다호커뮤니케이션의 대표를 맡았다.
“집 밖의 세상엔 상처도 많았죠. 특히 방송일은 텃세도 심하고 한 신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린 날도 부지기수였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예요. 저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거기까지 진출했다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힘겨웠지만 첫발을 떼었기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고 또 저만의 스토리가 생겼죠. 홈쇼핑 상품 기획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서 활동하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박선경 대표는 불혹의 나이에 일을 시작해 비교적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사람’을 꼽았다. 실제로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고자 노력했다. 한편, 가족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도 힘이 된다. 과거 내조를 바랐던 남편은 이제 박 대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남편이 미국에 MBA를 따러 갔을 때 실은 저도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매일 새 반찬을 만드는 똑 소리 나는 살림꾼으로 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일을 하는 지금이 무척 당당해요. 내가 번 돈으로 아이들과 부모님께 용돈을 주는 요즘 정말 행복해요.”

경력단절 주부들의 길라잡이 되고파
박 대표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2년 전, 50대 초반에 주변 사람들이 만류하던 언론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지금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뿐인가, 원우회장, 연극부 활동까지 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했다.
젊은 시절 단편소설 신춘문예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그는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20년 뒤를 은퇴 시점으로 잡고 퍼스널 이미지 메이킹, 브랜드 PR 등을 접목해 책도 쓰고 강의도 하는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되는 게 꿈이다. 더불어 사회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경력단절 주부들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그는 경력단절여성들에게 멈칫거리지 말고 일단 저지른 뒤 스스로 테스트해보라고 말한다.
“주부로 20년 가까이 살다 보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에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80만원, 100만원 버는 것을 우습게 안다는 거예요. 그 돈 받고 일하느니 집에 있는 게 낫다는 거죠. 저는 그게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경력이 쌓이면 100만원이 150만원이 되고 거기서 역량을 발휘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값은 더 올라가는 거니까요. 저도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여성들의 길라잡이가 될 자격은 있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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