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중앙회 여성조선 공동 주최
정기구독 이벤트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인터파크
RE:CREATION
  1. HOME
  2. RE:CREATION
  3. travel

[여행작가 이신화의 유럽 인문 여행21]모스크바 근교 도시, ‘클린’ 첫 날의 해프닝

2020-04-28 11:34

글·사진 : 이신화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세르게이 예세닌을 만난 행복감과 여운을 안고 다음 장소로 몸을 움직인다. 차이콥스키가 말년에 여정을 보냈다는 ‘클린(Klin)이 목적지다. 낯선 도시,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에 설 때마다 불안감과 기대감이 함께 따라붙는다. 랴잔에서 클린으로 가려면 다시 모스크바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또 하루의 여정이 빈 노트에 글자로 새겨진다.

모스크바 레닌그라역.jpg

모스크바 레닌그라역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역
랴잔에서 다음 여정은 차이콥스키가 말년에 살았다는 ‘클린(Klin)’이 목적지다. 랴잔에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의 쿠르스크 역에 도착한다. 늘 말했듯이 러시아의 철도는 ‘모스크바’로 통한다. 러시아의 기차역들 이름은 모스크바에서 도착지를 기준 한다. 모스크바에서 ‘클린’을 가려면 레닌그라드 라인에 들어서야 한다. 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은 했지만 걱정은 안한다. 모스크바에는 많은 관광 안내소가 있으니 말이다.

모스크바에서 클린기차표.JPG

모스크바에서 클린기차표.

 

다행이 쿠르스크 역에서 레닌그라드 역까지는 큰 대로를 건너면 된다. 그런데 상트 페트르부르크로 가는 레닌그라드 라인을 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클린은 또다른 라인이다.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한 외곽도시여서 철로가 다른 듯하다. 그곳에서는 친절한 남자 대학생이 살갑게 도와준다. 빨리 가려고 고속철도 권을 원한다 했더니 표를 구입해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플랫폼 번호도 없고. 좌석도 없다. 그저 그 남학생이 알려준 시간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고속철도권이라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완행표를 구입할 걸”라고 생각했지만 표를 바꾸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게 낫다.


철로를 바라볼 수 있는 커피 숍에 들어가 요기를 한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 한 여인이 앉는다. 그녀의 얼굴은 한국인과 똑같은 고려인. 매우 활달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휴가를 즐기러 ‘토르조크(그 당시에는 그저 무심하게 흘려 듣고 말았는데 후에 그 도시를 찾았다)’로 간다고 한다. 강에서 수영도 하고 전통 사우나도 즐기러 간단다. 수영하기에는 날씨가 차가웠으니 별로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지만 붙임성이 많은 그녀가 번역기를 돌리면서 자꾸 말을 걸어오니 몇 마디 더 수다를 떨게 된다. 42살인 그녀는 재혼을 했단다. 전 남편(황씨)도, 현재도 고려인(정씨)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손자도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러시아 스타일로 결혼을 일찍 한 듯하다. ‘왜 재혼했느냐’고 물으니 ‘인생이 다 그런거야’라며 번역기가 알려준다. 번역기도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제대로 받아들여 해석해 준 듯하다. 난 기계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으니 말이다. 아주 잠시의 인연을 맺고 그녀는 먼저 기차를 타러 떠났다. 분명히 긴 사연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 얼굴을 하면서 외국인처럼 살아야 하는 긴 이야기가 있으리라. 그녀는 본능으로 똑같은 염색체를 가진 한국인이 남달랐을 것이다. 

카페에서 만난 고려인.jpg

카페에서 만난 고려인

 

*클린 가는 교외선에서 작은 해프닝
기차 시간보다 훨씬 일찍 플랫폼으로 다가선다. 플랫폼에는 교외선(Suburban)이라고 쓰여 있다. 그때 표를 살 때 도와주겠다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 러시안이지만 유창하게 영어를 잘한다. 그녀는 국제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부모 따라 러시아를 떠나 영국에서 살았고 두바이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며 한국의 젊은 여성과 함께 일한 적 있단다. 그녀는 클린보다 한정거장 뒤인 ‘트베리’에 내린다하면서 내게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안한다.


기차 안은 손님으로 꽉 차 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자 손님들의 시선이 쏠린다. 충분히 충전시킨 핸드폰으로, 말 안되는 번역이지만, 어쨌든 번역기의 러시아 말은 기차 안을 울리고 있다. 그 중 뒷자리에 앉은 한 남자가 유난히 관심을 많이 갖는다. 선글라스를 쓰고 한껏 멋을 낸 할머니와는 모자지간인 듯. 그 남자는 필자가 ‘해외 여행을 할 정도로 돈이 많은가?’가 몹시 궁금한 듯하다.


클린까지는 1시간이 채 안 걸릴 정도로 가까웠다. 하차할 즈음 영국에서 살다왔다는 여성이 내게 설명을 한다. 뒷자리 남자가 예약한 숙소까지 택시로 바라다 주겠다는 것이다. 그 남자의 집이 같은 방향이란다. 그런데 그 남자 ‘호기’는 기차에서 하차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택시기사가 부르는 가격은 1000루블(2만원 선)(얀덱스 택시를 이용하면 300루블(6천원 선)). 택시기사의 바가지 요금에 질린 ‘모자’는 내게 말 한마디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설명 안해도, 러시아 언어 몰라도, 몸짓으로 그 상황이 읽힌다. 물론 그는 필자가 예약한 숙소보다 더 멀리 떨어진 마을이라고 했으니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터. 언어 소통이 가능했다면 택시 어플을 이용하자고 권했을 것이고 필자의 숙소까지는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작은 해프닝이지만 ‘돈’이란 사람을 바보를 만들거나 어리섞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숙소 외관.JPG

숙소 외관

 

*정적이 감도는 시골 마을의 호텔
터미널 근처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얀덱스 택시를 부른다. 택시는 클린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달려간다. 예상과는 완전히 비껴나는 첫 여행 출발이다. 택시가 도착한 곳은 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골마을(클린에서 서쪽으로 7km  떨어진 마을 Selinskoe 114)의 호텔(Hotel Vdohnovenie)이다. 난감한 상황은 항상 일어난다.

숙소 도미토리 단층침대.JPG
수줍은 미소를 가진 어여쁜 할머니가 맞이한다. 펜션 같은 호텔은 비수기 손님을 맞으려고 3층에 6인용 도미토리 룸을 만들어 놓았다. 도미토리 베드를 이용하는 사람은 필자 혼자다. 할머니 말고도 중년 여성이 함께 근무 중인데 영어 소통은 아예 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클린의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을 전화로 연결해 준다. 가장 급선무는 이 숙소에서 클린 시내로 나가는 대중교통 편이다. 그런데 여행 안내소 스테프는 ‘그 숙소에서는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할 수 없으니 카 렌트’를 하란다. 난감하다(나중에 손짓발짓으로 시내로 나가는 버스 편을 알아내긴 했다. 숙소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클린의 첫 인상은 섬에 갇힌 듯 고립무원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일단 이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시내에 숙박지를 찾아 예약을 한다.

숙소의 아주머니.JPG

숙소의 아주머니

 

어쨌든 남은 시간은 이 집에서 머물러야 한다. 식당도 없다. 다행히 근처에 작은 마켓이 있어서 달걀을 산다. 그리고 날씨가 좋았기에 빨랫감을 맡긴다. ‘빨래가 몇 개냐’고 묻는다. 개수가 왜 중요할까 했는데 나중에 정리된 빨래를 보면서 일일이 다림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운 러시아는 빨래 감을 세탁기에만 돌리고 빨랫줄에 걸어 말리는 게 아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가정 주부들이 다림질을 하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러시아의 가정집에서는 다리미가 필수였다.

숙소의 부엌.JPG

숙소의 부엌

 

어느 덧 낯 햇살이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운다. 요기는 해야 하니 달걀을 삶아야 한다. 도미토리 룸 게스트는 주방을 이용할 수 없었는데 인심이 그리 야박하진 않다. 2층의 식당을 이용하라고 한다. 계란을 삶고 오징어포(러시아에서는 오징어 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취기가 몰려올수록 러시아 언어가 빙글빙글 귓전을 맴돈다. 그럴수록 1층 자판기를 찾아 체코 맥주를 사려고 들락거리게 된다. 민가도 몇 채 없는 시골 마을이라서 그랬을까? 지독하게 조용해서 귀가 먹먹할 정도. 숙소에 손님들이 없으니 더욱 행복한 정적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런 조용한 곳에서 며칠 간 푹 쉬면서 글을 쓰면서 보내도 좋았을 듯했다. 그러나 여행자는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숙소에서 먹은 달걀.jpg

숙소에서 먹은 달걀

 

 

숙소의 조식.JPG

숙소의 조식

 

 *수줍은 미소와 어여쁜 할머니 스테프
아침. 클린 시내로 가서 원하는 차이콥스키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전날 필자를 맞이했던 수줍은 미소가 참 고운 할머니가 차려준 조식을 먹는다. 우유에 초컬릿 볼을 넣어, 해장국 대용으로 먹는다. 딸기잼을 빵에 발라 꾸역꾸역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은 이제 어색하지 않을 만큼 되었다. 난 숙소의 할머니가 참 마음에 들었다. 자본주의의 색깔을 가진 필자는 당연히 그 할머니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그저 파트 타임을 열심히 수행하는 노동자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참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몸짓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 세상 어디를 가나 ‘인상’은 맞는가보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젊은 시절의 어여쁜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클린의 첫 밤을 보낸 그 시골 마을을 벗어나려고 작은 버스에 오른다. 몇 정거장 안가니 전날 처음 섰던 버스 터미널이다. 그곳에서 다시 택시 어플을 이용해 숙소로 향한다. 또 다른 클린의 하루가 열린다.(계속)

버스 정류장.JPG

Data
대중교통:클린은 모스크바의 북서쪽 86km에 위치.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스키 역에서 교외 열차 이용. 모스크바에서는 1시간 소요. 대부분은 트베리로 이어진다(R150, 45분에서 1시간). 버스는 보드니 스타디온(Vodny Stadion)에서 출발한다.
여행포인트:차이콥스키 박물관은 클린 시내에 있으니 숙박지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하며 시내로 나오는 대중교통편이 많이 불편해서 기동성이 전혀 없으니 유의하자.

 
Copyright ⓒ woman.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 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 메인으로
  2. 기사목록
  3. 맨 위로
신협중앙회 여성조선 공동 주최
댓글달기
글쓴이    비밀번호 (숫자 4자리를 입력해주세요)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이번호 커버이미지
이번호
서점 이벤트
  • 예스24
  • 교보문고
  • 인터파크
  • 알라딘
  • 이달의 목차
  • 지난호보기
  • 정기구독